이 장면, 이란 ‘반미감정’ 더 키웠다
1979년 이란혁명, 그리고 미국의 오판
스콧 앤더슨 지음, 이재황 옮김
책과함께, 682쪽, 4만3000원

끝 모를 수렁 속에 빠져 있는 미국과 이란 전쟁의 근원에는 1979년 팔라비 왕조의 독재를 무너뜨리고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이란이슬람공화국을 탄생시킨 이란 혁명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의 중동 지역 핵심 동맹국이었던 이란은 이후 미국에 ‘불량 국가’가 됐고, 다시 미국은 이란에 ‘대악마’일 뿐이었다.
40년 가까이 세계의 분쟁지역을 누벼온 베테랑 종군기자인 저자는 도저히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이란 팔라비 왕조의 몰락 과정을 입체적 서사로 파헤친다. 그 속에는 오만과 망상, 그리고 오판이 얽혀 있다. 역시 핵심 인물은 모하메드 레자 팔라비 국왕과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다.
팔라비 국왕은 집권 이후 서구식 근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위로부터의 백색 혁명’을 추진했다. 그의 치세 동안 1인당 국민소득은 20배 증가했고, 이란인의 평균 수명은 27세에서 56세로 2배 이상 늘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그는 고대 페르시아의 영광으로 이끄는 ‘계몽된 군주’라고 믿었고, ‘샤한샤’(왕중의 왕)라는 호칭을 당연한 듯 받아들였다. 심각한 빈부 격차와 만연한 부패에 대한 대중의 불만은 현대화 축복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함으로 치부했고, 비밀경찰 등을 동원한 폭압에 의한 대중의 침묵은 자신에 대한 사랑과 존경으로 오독했다.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기 불과 4개월 전인 1977년 11월, 팔라비 국왕은 미국을 방문한다. 카터 대통령은 당시 “샤(국왕)의 위대한 지도력 덕분에 이란은 불안정한 지역들 사이에서 안정의 섬”이라고 치켜세웠다. 단지 말뿐이 아니라 실제 그렇게 믿고 있었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당시 비밀보고서는 “가까운 장래에 이란의 정치 행태에는 어떠한 급진적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적고 있다.

저자는 이란과 미국의 지도자들이 극소수의 측근에게 의존하고, 보고 싶은 정보만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고 지적한다. 이란 궁정에서는 실업률 상승이나 물가 급등 같은 불편한 경제 지표가 국왕에게 듣기 좋은 수치로 조작되기 일쑤였다. 미국 정부 안에서도 이란의 위기를 경고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란에 대한 ‘공식적인’ 낙관적 서사에서 벗어난 경고들은 무시됐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정보는 “의도적으로 생겨난 무지”가 돼 있었다. 이란에서 활동했던 미국인 선교사 조지 브래스웰의 증언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60년대 말 테헤란에서 망명 상태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란 국민들에 민중 봉기를 촉구하는 오디오 테이프 설교를 들었던 브래스웰은 “CIA와 미국 대사관에서는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호메이니는 1970년대 말까지 미국 관료들에게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란 혁명 후 미국은 실수를 반복한다. 팔라비 국왕의 암 치료를 위해 뉴욕 입국을 허용하면서 이란의 반미 감정에 기름을 부었고, 결국 444일간의 ‘미 대사관 인질 사건’이 발생한다. 양국이 단교를 넘어 지금까지 이어지는 뿌리 깊은 불신의 벽을 완성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저자는 이란 혁명이 모든 테러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는 종교 근본주의 출발점이 됐다고 강조한다. “현대에 세계적 규모의 변화를 촉발하고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의 틀을 바꿔버린 혁명을 꼽으라면 미국 혁명,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에 더해 이란 혁명을 추가해도 될 것”이라고 한 이유다.
책은 실존 인물들의 인터뷰와 기밀 해제 문서를 교차 배치하며 단 14개월 만에 이란 정권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재구성한다. 역사책이라기보다 마치 정치 스릴러 소설을 읽는 듯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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