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급락 때 오른 정유주…더 오를까
국내 증시 변동성이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정유주 강세가 두드러진다. 곳곳에서 지정학적 충돌이 장기화하면서다. 전쟁으로 파괴된 정제설비와 석유제품 운송망이 정상화되지 못한 탓에 정제마진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평가이익 기대까지 더해지며 정유사 실적 눈높이가 높아졌다.
다만 단기간에 주가가 급등한 점은 부담이다. 증권가에서는 공격적인 추격 매수보다 조정 시 분할 매수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정유사 실적 추정치 일제히 ‘상향’
7월 코스피는 연일 출렁이며 8000대에서 6000대로 주저앉았다. 7월을 8400선으로 출발한 코스피는 7월 22일 6797로 장을 마감하며 20% 낙폭을 보였다. 이 기간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업종이 부진한 주가 흐름을 보였지만 정유주는 달랐다. 국내 주요 정유·화학 기업을 담은 KRX 에너지화학지수는 같은 기간 4% 하락으로 충격을 최소화했다. 정유 업종 대표주는 오히려 강세를 나타냈다. 7월 1~22일 S-Oil이 33% 올랐고, SK이노베이션은 25% 상승했다. GS 역시 27% 반등했다.
최근 정유주 급등 배경에는 석유제품 공급 부족에 따른 정제마진 확대가 있다. 정제마진은 휘발유·경유·항공유 등 석유제품 판매 가격에서 원유 구입비와 운송비 등을 뺀 금액이다. 원유 가격보다 석유제품 가격이 더 강하게 오르면 정유사 수익성이 개선된다. 최근 산유국 증산으로 원유 공급이 늘어난 반면, 원유를 휘발유·경유로 바꾸는 정제설비 복구가 늦어지며 정제마진이 확대됐다. 중동에서 전쟁으로 정제설비와 항만이 피해를 입은 데다, 선박 운항과 보험을 비롯한 물류망 정상화가 더딘 상태다.
석유제품 주요 수출국인 러시아 정유시설 가동 차질도 공급 부족을 부추긴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최근 러시아 10대 정유공장 가운데 9곳을 공격한 여파로, 러시아 원유 정제 가동률은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주요 산유국인 미국도 상황이 빠듯하다. 미국 휘발유 재고는 지난 6월 초 기준 1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감소했다. 등·경유 재고 역시 5월 말 기준 23년 만에 가장 적었다. 이충재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세계 정유 설비 10~15%가 가동에 문제가 생긴 건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복구에 몇 년이 걸릴지 모르고 신규 가동할 대체 설비도 없다”고 분석했다.
국내 정유사는 원재료 가격 측면에서도 유리한 환경을 맞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8월 아시아 판매분 원유의 공식판매가격(OSP) 프리미엄을 전월보다 배럴당 11달러 낮춘 마이너스(-) 1.5달러로 결정했다. 아시아 정유사에 기준 가격보다 배럴당 1.5달러 싸게 원유를 판매한다는 뜻이다. 미국·브라질·베네수엘라 등 비중동 산유국의 증산이 이어지자, 사우디아라비아가 아시아 시장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할인 판매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국내 정유사 입장에서는 원유 조달 비용이 낮아진다는 이점이 있다.
이진명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정유주 강세는 정유제품 공급 부족과 정제마진 확대를 반영한 흐름”이라며 “원유 공급은 일부 회복된 반면 중동 정제설비와 제품 수출, 선박·보험 등 물류망 정상화가 지연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최근에는 미국의 이란 해상 봉쇄 재개와 호르무즈 통행 우려까지 다시 확대됐다”며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평가이익과 정제마진 강세 기대가 주가에 동시에 반영되는 흐름”이라고 덧붙였다.

단기 급등에 분할 매수 대응
이 같은 업황 개선 기대로 국내 정유사 실적 눈높이가 올라가는 추세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7월 22일 기준 증권가에서 추정한 S-Oil 올해 영업이익은 3조5905억원이다. 3개월 전(2조5042억원)보다 약 43% 높아졌다. 같은 기간 SK이노베이션 영업이익 전망치는 4조3079억원에서 5조4602억원으로 27%, GS는 3조3175억원에서 4조1296억원으로 24% 상향 조정됐다.
가장 수혜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으로는 S-Oil이 꼽힌다. 국내 정유사 중 정유와 윤활기유 이익 기여도가 가장 높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제품 공급 부족과 고마진 환경의 수혜를 가장 직접적으로 누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대규모 석유화학 설비를 건설하는 샤힌 프로젝트도 중장기 관전 포인트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대규모 자본 지출이 정점을 통과해 현금흐름과 배당 여력이 개선될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는 S-Oil에 40%가량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고 내다본다. 하나증권은 지난 7월 20일 S-Oil 목표주가를 20만원으로 제시했다. 전일 종가 대비 38% 높은 수준이다. 윤재성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윤활기유 판가 급등으로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대폭 개선될 전망”이라며 “정제마진 강세와 8월 OSP 마이너스 전환에 따른 원가 절감 효과로 연간 호실적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도 호평을 받는다. 지난 7월 20일 하나증권은 SK이노베이션 목표주가 역시 20만원으로 제시했다. 전일 종가보다 65% 높다. 상승 여력만 보면 S-Oil보다 낫다는 전망이다. 윤재성 애널리스트는 SK이노베이션을 차선호주로 꼽으며 “올해 영업이익은 사상 최대치로 추정되고, 최근 S-Oil과 시가총액 차이가 좁혀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절대적인 주가 저평가 구간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단, 최근 주가가 급등했다는 점은 정유주 투자자 입장에서 부담이다. 지정학적 긴장이 완화되거나 중동과 러시아 정제시설이 예상보다 빠르게 복구되면 정제마진이 축소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종전 기대가 커질 때마다 정유주가 단기 조정을 받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쟁이 지금보다 격화되는 상황 역시 무조건 호재로 볼 수 없다.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 운송로가 막혀 국제유가가 지나치게 오르면 소비와 산업 활동이 위축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증권은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배럴당 90~100달러를 웃돌 경우, 정유주 상승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내다본다.
이런 이유로 공격적인 추격 매수보다는 주가가 내려갈 때마다 조금씩 사 모으는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신규 투자자는 국제유가 급등세가 진정되거나 지정학적 긴장 완화로 주가가 조정받을 때 분할 매수하고, 기존 투자자는 정제마진과 실적 전망치가 하향 전환되기 전까지 보유하는 전략이 유효하다는 조언이다.
이진명 애널리스트는 “정제설비 재가동과 재고 재축적에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제마진이 단기간에 과거 평균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면서도 “최근 주가 급등으로 지정학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단기 변동성은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유가 등락보다 경유 마진, 중동과 러시아의 정제설비 복구, 제품 수출 회복 여부가 더 중요한 판단 지표”라며 “실적 전망치가 추가 상향된다면 주가 상승 여력이 다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유가 하락만을 이유로 매도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문지민 기자 moon.ji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70호(2026.07.29~08.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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