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침해 기준’ 엄격해진 인권위, 진정 사건 인용·권고 2년새 반토막
위원장 사퇴 촉구 내부 갈등 격화

국가인권위원회가 접수한 진정 사건의 인용·권고 결정이 최근 2년 새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 안팎에서는 2024년 9월 안창호 위원장 취임 이후 인권침해 인정 기준이 엄격해지면서 인권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인권위가 최근 발간한 ‘2025 국가인권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진정 사건 인용 결정은 286건으로 2023년 624건보다 54.1% 감소했다. 권고 결정도 같은 기간 552건에서 239건으로 56.7% 줄었다.
이는 전체 진정 사건 처리 건수의 감소폭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지난해 인권위가 처리한 진정 사건은 1만25건으로 2023년 1만2129건보다 17.3% 감소했다. 처리 건수가 20%가량 줄어드는 동안 인용·권고 결정은 절반 이하로 급감한 것이다. 지난해 인용 결정 건수는 2004년 이후, 권고 결정 건수는 2016년 이후 각각 가장 적었다.
인권위 내에서는 이런 변화가 안 위원장의 조직 운영 기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인권위 관계자는 29일 “2024년 9월 안 위원장 취임 이후 진정 사건에 대한 인정 기준이 이전보다 엄격해지면서 인용 범위가 좁아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원위원회 개최가 지연되고 안건 상정도 줄어드는 등 전반적으로 인권위 역할이 위축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재상정 안건을 제외한 전원위 의결 안건은 2024년과 지난해 연평균 25.5건으로, 2019~2023년 연평균 35.8건보다 28.8% 감소했다. 같은 기간 상임위원회 의결 안건도 연평균 35.5건에 그쳐 이전 5년 평균인 54.6건에 크게 못 미쳤다.
기존과 다른 판단도 나왔다. 인권위는 지난해 한 고교에서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일괄 수거하고 교내 사용을 제한한 행위가 통신의 자유 침해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진정을 기각했다. 2014년 이후 중고교의 휴대전화 강제 수거와 사용 제한을 학생 인권침해로 판단해온 기존 입장과 다른 결론을 낸 것이다.
인권위 운영 방향을 둘러싼 조직 내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과장급 간부 6명이 잇따라 보직 반납을 공개 선언했고, 이달 들어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방어권 보장 권고안을 폐기하는 안건 상정을 놓고 상임위가 파행했다. 사무처 30개 전 부서는 안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다만 현행법에 독립기관인 인권위의 위원장을 탄핵하거나 임기 중 강제로 해임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안 위원장은 내년 9월까지 임기를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이찬희 기자 becom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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