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AI 리그'도 전략패 할 것인가

2026. 7. 2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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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끝났다. 스페인의 점유축구가 스타플레이어 없이도 시스템적 담대한 플레이로 우승했다. 한국은 역대 최고의 선수진으로 32강에 들지 못하고 대회를 접었고, 일본은 조별 경기에서 4대 0의 스코어를 기록하는 등 '자신들이 하고 싶은 자족의 축구'를 시스템적으로 장착해 우리보다 한수 위의 기량을 선보이면서 북중미를 달궜다. 담대한 방식의 시스템적 제도의 안착이 없는 우리 축구는 결국 스타플레이어에 의존하면서, 우리가 만족하는 축구를 하지 못한 채 한숨만 쉬는 월드컵으로 막을 내렸다. 밤잠을 설치면서 시청한 국민들에게 육체적 피로는 물론 정신적인 허무함을 안긴 채 또 4년의 희망고문의 시간을 노정하며 우리 축구는 우리 관심에서 사라졌다.

현대 축구는 여러 국가에서 단순 스포츠를 넘어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쉽지 않은 준비의 치밀함과 쓰린 결과의 감내가 필요한 스포츠가 됐다. 한일전, 영국과 아르헨티나,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과 같이 국가 간의 매치에서 승리를 위한 준비는 전쟁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그러한 전쟁에서 담대한 준비와 치밀한 시스템 구현에 실패한 이후 명확한 원인과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가?

축구뿐만이 아니다. 인공지능(AI) 시대의 정치·사회·경제적 영향은 산업혁명에서의 그것들을 뛰어넘는다. 산업혁명 시기 생산을 늘리려면 공장을 짓고, 원자재를 확보하고, 노동자를 고용하는 등 물리의 법칙과 공급망의 자체 한계성을 가지고 있었다. AI 시대의 지능은 복제비용이 들지 않는 즉, 한계비용 제로의 무한 확장 가능성으로 하룻밤 사이에 전 세계로 퍼져 전지구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스스로 진화하면서 고차원적 인지노동이 자동화되는 AI 시대에는 신약이나 신소재의 발견, 기초과학 및 공학의 혁신 속도 자체가 수백배씩 빨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속도의 시대에 그나마 우리 정부가 일부 정책에서 속도에 압도되지 않고 반도체, AI를 비롯한 제반 과학기술 분야의 준비는 나름 시의적절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정부 부서를 아우르는 각종 정치·경제·사회 영역 등(이것을 정부 부처별로 살펴봐도 좋다)에서의 큰 그림을 담대히 그리고, 그에 맞춰 시스템적으로 접근해 해법의 도출을 노정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도 다소 미진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산업통상부,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중소벤처기업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과 같이 재화와 서비스의 창출에 직접 기여하는 부서는 물론이고,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조건과 제도의 정리에 관여하는 모든 부서가 유기적으로 연계되면서 담대하게 총론과 각론을 제시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미래를 담대하게 준비하자는 뜻이다. 이제는 따라할 나라도 없고 상황도 다르다. 기술패권 전쟁 중이고 공급망의 재편과 보호무역주의는 세상의 셈법을 바꾸고 있다. 국제 축구 무대에서 드러난 한일 간의 격차는 단순한 스포츠 결과를 넘어 국가 전략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은 '2050년 월드컵 우승'이라는 장기 목표 아래 J리그 경쟁력 강화, 유소년 시스템 투자,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축구 철학을 일관되게 구축해 왔다. 즉, 자신이 하고 싶은 축구를 정의하고 시스템을 담대하게 만든 것이다. 반면 한국은 감독 교체와 단기 성과 중심의 대응을 반복하며 구조적 효과의 축적에 실패했다.

오늘날 대한민국 제반 정책 전반의 축소판으로 보여진다. 장기 비전 없이 단기적 대응이 반복되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 있다. 부동산 정책은 가격 안정과 경기 대응 사이에서 방향성을 잃은 적이 자주 있었고, 지역균형발전은 산업·교육·인재 이동을 통합적으로 설계하지 못한 측면이 있고, 인구 감소와 산업재편에서의 구조적 변화를 감당할 혁신이 보이지 않기도 한다. 청년 고용위기는 AI로 극복할 수도 그러지 못할 수도 있으며, 교육 시스템에서의 초중고 교육과 대학 교육 간의 연속성 부재 및 재정 배분의 불균형 심화로 대학이 국가 혁신의 핵심 거점임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자율성과 투자 기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한 연구 경쟁력 약화와 인재 유출이 AI발 대학 위기를 발생시키고 있다. 대학을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닌 '국가 전략 산업의 플랫폼'으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대학의 자율성 제고와 국가 재원의 대학 투자를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너무나 많다.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는 AI는 스스로 해킹도 하는 도구로 발전하는 등 피해도 예상된다. AI는 이러한 다양한 분야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핵심 변수다. AI는 대학의 변화는 물론 생산성 향상을 넘어 노동시장 구조, 산업 경쟁력, 국방 체계, 행정 시스템을 동시에 재편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따라 대학과 연구기관은 전면적인 AX(인공지능 전환·AI Transformation)를 추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AI 기반 교육과정 전환, 연구 데이터 인프라 구축, 산학 협력의 실시간화, 행정 자동화 등이 포함된다. 이는 개별 기관 차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통합 전략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분기당 순익만 약 90조원에 이른다. 하이닉스와 함께 두 회사의 연간 순익이 1000조원을 넘는 시간도 그리 멀리 있지 않은 듯하다. 이에 발맞춰 국가의 재정 전략 역시 근본적으로 재설계돼야 한다.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 확대와 세수 증가는 단기적 재정 안정에 머물 것이 아니라, 미래 투자로 전환돼야 할 것이다. 대학 혁신을 위한 과감한 투자, 연구 중심 대학에 대한 대규모 블록 펀딩, 우리가 잘하는 특수분야 글로벌 연구 허브 구축, 외국 인재 유치 확대 등에는 과감하게 돈을 써야 한다. AI 인프라로서 국가 단위 데이터센터, 공공 데이터 개방, 산업별 AI 플랫폼 구축은 물론이고 반도체 인프라로서 전력 및 용수 계획, 생산·설계·물류를 통합하는 반도체 클러스터, 전용 물류망 및 항공 네트워크 구축 등도 필수적이다. '반도체 공항'이라 이름 지으면 어떤가? 이미 반도체 고속도로를 설계하고 구축하려 하지 않는가? 반도체 산업으로 인한 변화는 기존 인프라 개념 재정의를 필요로 하고 있다. 과거에는 사람과 상품의 이동 효율성이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고부가가치 기술과 데이터 흐름의 효율성이 중요하다. 반도체 생산과 수출을 최적화하기 위한 전용 물류망, 초고속 운송 체계, 전력 및 용수 인프라 통합설계는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요소인 만큼 담대하고 시스템적인 비전·설계·협조가 필요하다. 여러 부처 및 민관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국제 환경은 어쩌면 우리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중 전략 경쟁은 공급망 재편을 촉진하고 있으며, 한국은 반도체·배터리·방위산업 등에서 핵심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를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산업 정책, 외교 전략, 기술 투자 간의 정합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특히 기술과 결합한 외교의 수월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조업의 유지와 방위산업은 어쩌면 우리가 지금 AI 시점을 맞이한 대한민국의 운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산업구조 변화의 길목에서 만난 AI와 분단의 비극이 가져다준 레거시일지도 모른다. 추론이 보편화되고 AX가 필수적으로 등장해 피지컬 AI로 마무리될 현대판 산업혁명으로서의 AI 혁명은 밥상에 숟가락 젓가락을 놓지 아니한 우리의 산업구조에 희망으로 다가오는 듯하기도 하다.

다소 새로운 우리로 스스로를 바라보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직면한 과제는 개별 정책의 개선이 아니라 '국가 운영 체계의 재설계'다. 이는 재정, 산업, 교육, 국방, 교통·지역정책을 통합적으로 연결하는 담대한 시스템적 장기 전략을 의미한다. 기획예산처 중심의 예산 편성과 하달이 아닐 수 있고, 국방부와 과기부의 협력이 필수일 수 있고, AI를 위한 전력의 필요는 민원으로 어려운 철탑 대신 이동과 전력을 동시에 추구하는 도로 및 철도와 결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능의 보편화와 대학의 자율성으로 대치동 학원가도 달라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외부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이윤과 크레디트 배분의 재설계는 이런 변화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핵심 인프라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담대하면서 시스템적인 설계가 필요하다. 더 이상 추격형 모델에 의존할 수 없는 대한민국은 스스로 미래를 정의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와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AI 시대가 준 행운일 수도 있는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전환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점진적 개혁이 아니라, 자족의 비전하에 명확한 목표와 실행력을 갖춘 담대하면서도 시스템적인 용기와 전략이 필요한 때다.

최기주 아주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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