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트럼프 두 번 꺼낸 ‘군함 10척’…정부, 협의채널 제안 검토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미 군함 10척’ 건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별도의 한·미 정부 간 협의 채널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 당초 이달 이어갈 예정이던 2차 한·미 안보 분야 협상이 공전하고 쿠팡·정보통신망법 등 양국 간 뇌관이 겹친 가운데, 미 측의 핵심 관심사인 군함 협력을 다른 현안을 풀 지렛대로 삼겠단 구상이다.
28일 복수의 여권 소식통에 따르면 정부는 국방부·외교부 등 관계부처를 중심으로 미 군함 건조 협력안을 마련한 뒤 미국 측에도 전담팀 구성을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업이 바로 협상에 나서기보다 양국 정부가 먼저 건조 방식과 법적 선결 조건 등을 정리한 뒤 조선사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단 취지다. 이르면 다음 달 협의 테이블을 띄우는 방안을 내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는 지난달 16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미국 군함 10척을 신속히 건조할 수 있느냐”고 물은 데 이어 지난 7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만찬에서도 다시 만나 이 문제를 재차 언급했다. 이어 15일(현지시간) 미 육군전쟁대에서 열린 국방혁신서밋에서 한국 기업과 조선 협력을 거론하며 “미국 밖에서 건조된 일부 선박도 구매할 것”이라고 밝혀 해외 건조 군함 도입 가능성까지 공개적으로 시사했다. 청와대도 다음날인 16일 “조선 분야의 호혜적 협력에 대한 양국 정상의 공감대가 있다”며 “구체적인 협력 방안은 실무협의 등을 통해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여권 관계자는 “미국은 군함이 ‘지금 당장’ 필요하다고 할 만큼 일정이 촉박하다”며 “트럼프가 수차례 직접 챙긴 사안인 만큼 미 수뇌부도 주시하고 있고, 우리도 의제가 살아 있을 때 곧바로 협의에 붙어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또 “미 측이 아직 전담팀이 없지만 우리가 먼저 협의 채널을 제안해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란 말도 덧붙였다.

실제 미국 측은 국내 조선업의 군함 건조 역량을 확인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미 국방부와 해군은 최근 HD현대와한화오션 등에 전투함·급유함 관련 정보요청서(RFI)를 보내 설계·건조 능력을 타진했고, 지난 10~11일엔 미 하원 세출위원회 국방소위 관계자들이 국내 조선 3사를 직접 찾아 이지스 구축함·호위함·잠수함·군수지원함 생산 현장을 살폈다. 실무 차원의 검토와 함께 조선 협력을 부각하는 정치·외교적 메시지도 이어졌다. 미셸 스틸 주한 미국대사는 지난 23일 부임 직전 미 해군부 장관대행 등과 한·미조선 협력센터 개소식에 참석했고, 주한미국대사관도 27일 미셸 스틸 대사의 “한·미동맹이 조선업을 비롯한 미국 산업 활성화라는 새롭고 매우 중요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협력 의지를 재확인했다.
군함 10척 협의는 기존 대미 조선 투자 패키지인 ‘마스가(MASGA)’와 맞닿아 있지만 초점은 다르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물인 조인트 팩트시트(공동설명자료)에 담긴 마스가는 1500억 달러 투자를 토대로 미국 내 조선소 현대화와 유지·보수·정비(MRO), 인력 양성, 공급망 확충 등 현지 조선 산업기반을 강화하는 데 무게가 실려 있다. 반면 이번 사안은 미 해군 함정을 한국 등 미국 밖에서 직접 건조해 구매하는 문제다. 정부 안에선 우선 별도 전담 채널에서 논의한 뒤 향후 마스가와의 연계 여부를 협상 과정에서 정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별도 협의 채널이 꾸려지면 우선 한국이 맡을 건조 범위와 최종 인도 방식을 구체화해야 한다. 가장 먼저 풀어야 할 제약은 미군 함정과 선체·상부구조 주요 부분의 해외 건조를 제한하는 번스-톨레프슨법이다. 한국에서 완성함을 건조해 미국에 인도할지, 선체나 블록만 제작한 뒤 미국에서 최종 조립·무장할지에 따라 필요한 예외 적용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대통령이 국가안보상 필요성을 인정해 예외를 적용하거나 의회가 별도 예외를 신설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정부가 군함 협력에 속도를 내려는 데는 최근 한·미 관계의 불편한 기류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쿠팡·정보통신망법 등을 둘러싼 갈등은 미 의회 입법 움직임으로도 번졌다. 마이클 바움가트너 공화당 하원의원은 27일 미국 기업을 차별한 외국 공직자의 입국을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고 밝히며 한국 정부의 쿠팡 조사와 과징금 부과를 직접 사례로 들었다. 통과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미 조야의 불만이 입법 형태로 표출됐다는 점에서 정부도 상황을 가볍게 보지 않는 분위기다. 한·미는 지난달 서울에서 첫 안보 분야 협상을 연 뒤 이달 워싱턴에서 후속 협상을 열 계획이었지만, 아직 일정을 확정하지 못해 2차 협상은 사실상 다음 달로 미뤄졌다.
익명을 원한 소식통은 “미국이 절실히 원하는 사안에 선제적으로 호응해 양국이 함께 성과를 낼 수 있는 협력 의제를 만들면 한·미 안보협상과 쿠팡 등 다른 현안을 풀어가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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