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자퇴한 외국인 유학생들…기밀 외장하드 들고 한국 떴다

대전의 한 대학교 연구실에 근무하던 중국인 유학생 A씨는 지난해 갑작스레 연구실을 그만둔 후 출국했다. 수상히 여긴 교수와 연구원들은 A씨가 연구실에서 공동 개발하던 프로그램의 소스 코드를 외장 하드에 담아 유출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교수는 “미지급된 연구비가 있는데 한국에 돌아와 정산을 받으라”고 설득했고, A씨가 한국에 오자 그를 고소했다. 현재 A씨는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의 한 대학원 연구실에서 전기차 배터리 기술을 연구하던 베트남 유학생 B씨는 2023년 돌연 학교를 자퇴했다. 대만으로 향한 그는 현지 연구소의 유사한 연구에 참여했다. 한국에 재입국한 B씨를 수사한 경찰은 그가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연구자료를 빼돌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B씨는 기술유출방지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외국인 유학생이 늘고 글로벌 연구 협력이 확대되는 가운데, 국내 대학·연구소의 연구 성과가 해외로 불법 유출되는 ‘연구 탈취’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반도체·배터리 등 국가 경쟁력과 관련된 핵심 기술이 주요 대상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대학의 허술한 연구보안이 국가 차원의 ‘연구 안보’를 위협한다며 정부에 표준 가이드라인의 제정, 관련 예산 지원을 촉구했다.
“보안서약서 한 장이 전부”…유출 적발도 어려워
국내 대학에서 연구 탈취가 잇따르는 배경에는 연구보안 프로토콜이 사실상 부재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인공지능(AI)·반도체 등을 연구하는 이공계 대학원은 대부분 랩(LAB) 단위로 운영된다. 구성원 모두가 소스코드, 각종 데이터를 공유하는 구조다.
하지만 연구 유출을 막는 제도적 장치는 대학원 입학, 연구실 입실 때 작성하는 보안서약서 정도가 고작이다. 연구성과물의 반출 통제, 퇴직 시 자료 회수, 접속 차단 등의 별도 보안 절차가 마련되지 않은 대학이 대다수다. 국립대 공대의 C교수는 “기업처럼 가상사설망(VPN)을 활용할 수 없어 대부분 접근이 쉬운 클라우드를 통해 자료를 공유한다”며 “때문에 유학생이나 공동 연구하던 해외 기관이 연구성과를 빼돌리는 사건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유출 사건의 적발과 신고 모두 제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서울의 한 사립대 D교수는 “정부 과제나 기업에서 수주한 연구에서 유출이 발생했거나, 담당 제자가 자료를 유출했을 때 교수나 학교가 불이익이나 책임 문제 등을 우려해 신고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기술유출 사건을 담당해온 경찰 관계자는 “연구진이 일정 비용을 받고 자문에 응했을 때는 연구 자료가 유출됐다 하더라도 이를 유출로 인식조차 못 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반면 국내 대학 연구소·연구실 연구에 참여하는 외국인 유학생은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국내의 외국인 유학생은 약 25만3000명에 이른다. 특히 대학원 유학생은 2016년 2만4160명에서 지난해 5만9040명으로 10년 새 2배 이상 늘어났다.
해외선 연구성과 유출 엄격히 제한
미국 등 연구 선진국은 연구 유출을 막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시행 중이다. 미국은 2021년 ‘국가안보대통령각서 33호(NSPM-33)’를 통해 연방 정부의 연구비 지원을 받는 기관에 연구안보 전담 인력 지정과 관련 교육, 해외 출장 시 보안상태 점검 및 모니터링을 의무화했다. 일본도 2022년부터 각 대학에 연구안보 자율준수 프로그램의 운영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올해에야 관련 지원에 착수했다.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 중인 연구안보 역량강화 사업의 지원 대상 대학은 8곳에 그친다. 국내 대학 중 이공계 석·박사과정이 활발한 연구중심대학은 50여 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연구안보센터가 설치된 대학은 KAIST·중앙대 2곳에 불과하다.
상당수 대학은 ‘보안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는 얘기다. 장항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대학의 연구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전체 대학 연구실에 공통으로 적용할 연구안보 표준 가이드라인, 그리고 범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이보람·이후연 기자 lee.boram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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