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다 페미들에게 유리한 거잖아요"... 이런 학생에게 필요한 경험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일고 학생들을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라고 외친 사실이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10대 학생들이 극우세력·일베발 '혐오'에 물들어가고 있다는 점이 새삼 확인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전현직 교사 시민기자들이 필자로 참여하는 <10대 극우화, 해법은 없나> 기획을 통해 '10대 극우화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고, 우리 사회와 학교의 변화 방향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정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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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생들은 학급회의를 통해 서로의 맥락을 이해하고, 다른 의견을 듣고, 갈등을 조정하는 연습을 한다. |
| ⓒ 챗GPT |
학교에서 이런 장면은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최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배재고 사건 역시 교실을 잠식한 혐오와 갈등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정치나 사회 이슈를 이야기할 때 유독 날카로워지는 반응, 특정 집단을 향한 냉소, "어차피 다 그런 거 아니냐"는 체념 섞인 단정. 학생들은 화면 너머에서 만들어진 서사를 그대로 들여온 채 교실에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서사가 겨냥하는 대상은, 대부분 학생들이 실제로 마주쳐본 적 없는 집단입니다.
역사적 사실과 논리를 토대로 설명하고 설득도 해봤지만 잘 안됐습니다. 오히려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정의롭다고 여기며 비판한 사람을 '적'으로 삼고, 같은 생각을 가진 '편'을 만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저는 일부 학생들을 '극우'라고 규정 짓고 싶지 않습니다. 이들은 아직 자라는 중이고, 지금 하는 말이 그 학생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원인을 분석하며, 교사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합니다.
'역사교육 강화'는 만능열쇠?
올해 초 교육부는 역사부정과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학교 역사교육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중학교 역사의 근현대사 분량과 시수를 확대하고, 고등학교에 역사 콘텐츠 관련 선택과목을 신설한다는 내용이 눈에 띕니다. 과거에도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한국사 필수 과목 지정,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수화, 교과서 체제 전환 등 다양한 방법이 제시됐습니다.
그러나 국가 차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대책은 학생들이 역사를 더 많이, 잘 배우면 된다는 전제에 서 있는데, 문제의 뿌리는 지식의 공백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습니다. 온라인 알고리즘은 자극적인 콘텐츠를 우선 노출해 특정 서사를 반복 주입하고, 청소년들은 그 서사를 검증할 기회 없이 그대로 흡수합니다. 여기에 입시 경쟁 속에서 쌓인 억울함과 불공정 감각이 더해지면, 역사적 사실 자체보다 "내가 차별 받고 있다"는 인식이 먼저 자리를 잡습니다.
이 지점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을 더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경험을 함께 할 것인가'입니다. 타인의 입장을 실제로 듣고, 자신의 생각이 도전 받고, 그 과정에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경험은 교과서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결국 10대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타인의 처지에서 생각해 볼 기회, 소속감을 갖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경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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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일 일본군 위안부 역사부정 대응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기 용인 처인고 학생 2명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해당 기사와 관련 없음) |
| ⓒ 윤근혁 |
저는 담임을 맡으면 학생들과 매일 아침마다 학급회의를 합니다. 교실은 혼자 공부하는 공간이 아니라, 하루 6시간 이상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그 안에서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출발점이 학급회의입니다.
안건은 자리 배치, 지각, 수업 태도, 학급비처럼 사소한 일상의 문제입니다. 학급회의의 목적은 처벌이 아니라 이해와 조율을 통한 '공감 능력 향상'입니다. 예를 들어, 지각을 반복하는 학생이 있어 이유를 묻자 학원 수업이 늦게 끝나 어쩔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학교보다 학원을 우선하는 태도를 비판했고, 당사자는 부모의 요구라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난상토론 끝에 담임교사가 보호자와 학원 시간을 조정해 보기로 했고,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함께 등교를 돕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모든 경우가 이렇게 원만하게 풀리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학생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학급회의는 잘못을 단죄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서로의 맥락을 이해하고, 다른 의견을 듣고, 갈등을 조정하는 연습의 장입니다.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매일 작은 규모의 '검증'과 '조율'을 경험합니다. 얼굴을 마주한 채 반박 당하고, 다시 이해 받는 경험입니다. 온라인에서는 좀처럼 얻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이러한 경험이 축적될 때 민주주의는 교과서에서 배우는 개념이 아니라 생활이 됩니다.
이러한 효과는 개인적 체감에 그치지 않습니다. 2016년, 저는 연구자와 함께 1년 동안 이 학급을 직접 관찰하고, 설문과 인터뷰를 통해 그 효과를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정태윤·윤종필, '민주주의 학급운영의 설계와 그 효과: 학급회의를 중심으로', <열린교육연구> 제26권, 2018). 연구 결과 학생들은 공적인 자리에서 자기 의견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를 길렀으며,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실제로 개선된 사례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말이 전부는 아니다
역사교육 강화가 만능열쇠가 아니듯, 학급회의만으로 지금 당장 모든 문제가 마법처럼 해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교실에서 아무리 좋은 소속감을 쌓아도, 하교 후 몇 시간 씩 소비되는 온라인 콘텐츠의 영향력을 상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교실 민주주의 공동체 경험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토론 중심 교육, 전문 상담 지원 활동, 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와 대응 등이 함께 가야 합니다.
저에게 "페미들에게 유리한 거잖아요"라고 말했던 학생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그 말은 그 학생이 스스로 만든 게 아니라, 어딘가에서 흘러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억지로 지우려 애쓰는 대신, 그 학생이 매일 아침 학급회의에서 자기 생각을 말하고, 반박 당하고, 이해 받는 경험을 쌓아가길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10대들이 쓰는 거친 언어는 단일한 원인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온라인 알고리즘, 입시 경쟁 구조, 세대 간 소통 단절이 뒤엉켜 있는 문제를 교실 하나가 전부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지금 어떤 말을 하는 학생이라도, 그 말은 그 학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교사가 어떤 경험과 관계를 만들어 주는가에 따라 그 말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배재고 사건이 남긴 숙제는 큽니다. 그러나 그 답을 학생에게 어떤 딱지를 붙이는 데서 찾을 수는 없습니다. 답의 일부는, 교실에서 매일 반복되는 작은 회의 시간 속에서 교사가 학생을 믿고 기다려주는 그 관계 안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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