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인공눈물까지…상비약 확대 조짐에 약사들 발칵
27일 찾은 서울 동대문구의 한 24시간 편의점 계산대 옆 안전상비의약품(상비약) 코너에는 인근 아파트 단지에 산다는 30대 주부 이모씨가 서 있었다. 이씨는 “며칠 전 밤 9시쯤 세 살 난 아들이 열이 나 이 편의점에서 해열제를 샀는데 오늘 아이스크림을 사러 왔다가 비상용으로 해열제를 좀 더 사려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정진(45)씨도 “얼마 전 일요일에 체했는데 가까운 약국이 모두 문을 닫아 편의점에서 소화제를 구입했다”며 “복약지도가 꼭 필요하지 않은 약은 편의점에서도 팔면 좋겠다”고 말했다.

편의점 상비약 제도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현재 13개인 판매 품목이 연말에 최대 20개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면서다.
이날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오는 12월 편의점 상비약 지정·고시 개정이 추진될 예정이다. 지난 16일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대통령 주재 업무보고에서 24시간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상비약을 올 하반기 중 최대 20개 품목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약국과 24시간 편의점이 모두 없는 지역에선 24시간 운영하지 않는 편의점도 상비약을 판매할 수 있도록 기준도 완화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민 수요 분석과 전문가 의견을 듣는 과정을 거쳐 오는 12월 개정을 추진한다”고 말했다.
2012년 개정된 약사법은 복지부 장관이 성분·부작용·편의성 등을 고려해 편의점 상비약을 20개 품목 이내에서 정할 수 있다. 하지만 제도 도입 이후 14년째 13종에 머물러 있고 이 중 2종은 현재 생산이 중단됐다. 현재 편의점에선 해열·진통제 3종, 소화제 4종, 감기약 2종, 파스 2종 등 총 11종만 판매 중이다. 추가 지정 후보군으론 지사제·화상 연고·인공눈물 등이 거론되고 있다.
소비자와 편의점 업계는 품목 확대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소비자공익네트워크가 2023년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2.1%가 “편의점 상비약 품목 확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국민 안전과 건강권, 소비자 선택권과 직결된 사안”이라며 품목 확대에 찬성했다. 실제 편의점 상비약 매출의 57%는 약국이 문을 닫는 시간대(오후 6시~익일 오전 6시)에 발생한다(GS25).

약국 밖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의약품을 더 늘려야 한단 주장도 있다. 의사 출신인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소셜미디어(SNS)에 “(소매점에서 판매 중인 의약품이) 미국은 30만개, 영국 1500개, 일본 930개인데 우리는 왜 20개인가”라고 지적했다.
반면 약사단체는 잇따라 반대 성명을 내고 있다. 대한약사회는 “의약품 복용 시 약사의 상담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며 “보건의료 취약 문제는 공공심야약국 확충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지역 약사회도 의약품 오남용 우려 등을 이유로 “편의점 상비약 품목 확대를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2018년에도 편의점 상비약 품목 확대를 추진했지만, 대한약사회의 반발에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의약품 오남용을 예방할 수 있는 안전장치도 함께 마련한다면 편의점 상비약 품목 확대는 소비자의 의약품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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