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법 찾아가는 고3 소녀들, 10년 후가 궁금하다
[김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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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양들> 스틸 |
| ⓒ ㈜시네마 달 |
인혜가 관심과 애착을 보이는 게 있기는 하다. 학교 내의 소동물 사육장에서 오리 '희선'을 비롯해 닭과 토끼를 돌본다. 친구들도 차츰 동물에 관심을 보인다. 그렇게 늘 구석을 맴돌던 넷은 가까운 사이가 된다. 하지만 조류 인플루엔자가 창궐하며 사육장이 폐쇄되고 동물들은 살처분 된다고 한다. 소녀들은 함께 힘을 모아 소동물 구출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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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양들> 스틸 |
| ⓒ ㈜시네마 달 |
우유부단한 인혜와 달리 서희는 '생존'에 철저히 몰두한다. 오만가지 캠핑과 서바이벌 기술을 익히고 훈련하는 데 열심이다. 자신과는 상극이지만, 서로 보완이 될 것 같긴 하다. 마침 인혜는 통학로 주변 야산에 들어섰다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의 화원'을 발견한다. 여기라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아지트를 꾸릴 수 있을 듯하다. '톰 소여의 모험'처럼 여기에서 땡땡이치며 재미있게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푼다. 비밀기지를 만들려면 머릿수가 더 필요하다.
다음은 뭐든 '좋아'하는 정애가 일당에 끼워준다고 하니 덥석 가담한다. 하지만 비밀을 유지하려면 까탈스러운 수민까지 끌어들여야 한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지만, 용케 수락을 받아낸다. 이제 험한 절벽도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산양들'이 결성된다. 마침 돌보던 소동물 살처분이 예고되자 그녀들은 이곳에 동물을 옮겨 보살피기로 한다. 생전 안 해본 일투성이지만, 스스로 정한 목적에 따라 몸을 써가며 하는 일은 날마다 새롭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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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양들> 스틸 |
| ⓒ ㈜시네마 달 |
유재욱 감독은 공동 연출한 첫 장편 <라임크라임>에서 (본인의 청소년 시절을 반영해) 힙합 크루들의 현실적인 삶을 형상화한 바 있다. 국내에서 접하지 못한 재현도 덕분에 이제야 한국에서 진정한 힙합 성장 영화가 탄생했구나 하면서도 이 감독이 과연 자전적 소재를 벗어나 어떤 내공을 보여줄까 궁금하기도 했다. 두 번째이자 단독 장편은, 개인적으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다가온 셈이다. 전작과 딴판인 고3 여학생들의 모험 역시 흥미진진한 결과를 냈으니.
'산양들' 구성원은 각기 '결여'를 안은 존재다. 인혜는 아빠에게 휘둘리며 목소릴 내지 못하는 엄마에게서 고스란히 대물림 되듯 남자친구에게 조종 당하는 신세였다. 주눅 든 채 뭐든 주도해본 적 없던 공기 같은 존재. 서희의 집엔 엄마가 부재 하다. 방목 되듯 성장한 소녀는 엉뚱해도 자력 갱생 태도를 몸에 익혔다. 하지만 어디 잘 끼지 못하는 신세는 매한가지. 수민은 어릴 적 많이 아팠던 터라 엄마의 과보호를 받았다.
정애는 엄마가 둘이다. 지금은 농사짓는 아빠, 만삭인 새엄마와 함께 지내지만, 친엄마는 멀리 떠나 있어서 늘 그리워한다. 친모와 계모 모두 외국 출신이다. 넷 다 또래 친구들과 잘 섞이기 힘든 비밀 혹은 과거를 안고 살던 참이다. 그래서인지 다들 주변에서 표류 한다. 그렇게 부유하던 넷이 처음 만나는 자유와 어설프게나마 조금씩 협동하는 태도를 익힌다. 무해한 자신을 보호하고자 절벽을 활보할 수 있게 진화한 산양의 자세 그대로다.
'산양들'은 자신들처럼 무해한 소동물들의 살처분을 막으려 한다. 하지만 그녀들의 힘으론 한계가 명확하다. 기껏해야 비밀기지로 직접 돌보던 몇 마리만 대피 시키는 게 한계다. 하지만 국가적 방역 감시 속에서 그게 어디까지 가능할까? 위험 부담을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까? 학생부 전형에 좌우되는 수시 준비반이라 잘못하면 진학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는 문제다. 그러나 이름까지 붙이며 돌보던, 누구도 해치지 않는 작은 존재들이 죽도록 방관할 순 없는 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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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양들> 스틸 |
| ⓒ ㈜시네마 달 |
물론 '산양들'의 모험은 장밋빛 성공담과 아득히 먼 결과로 귀결된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그저 내버려 두기만 하면 되련만, 어른들의 세계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아무리 작은 틈새라도 균열이 발생하면 계속 벌어지게 마련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예외는 허용될 수 없다. 체제 재생산을 위한 입시 제도와 공권력의 권위를 확보하기 위한 통제력 모두에 도전한 '산양들'의 봉기는 반드시 진압해야 한다.
찰나의 발견과 보람에 이어 예정된 탄압과 좌절이 닥친다. 코믹한 영화 분위기 탓에 간과 되지만, 현실에서 '산양들'이 감수해야 할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평범한 고3 자녀를 둔 부모라면 기절초풍할 수준.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혼날 텐데도 '산양들'은 기꺼이 자신들 행동이 낳은 결과를 감당하며 한 점 후회하지 않는다. 한데 모이기 전까지는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다. 대학에 진학해야 '어른'이 된다는 기성세대 잣대에 맞선 대안적 성장기다.
남을 밟고 올라서야 좋은 대학에 합격해 미래를 보장 받는 적자생존 법칙이 지배하는 입시에서 비켜난 존재들은 경쟁자이거나 아예 접점이 없던 친구들과 교류하며 공감하기에 이른다. '산양들'은 종의 경계를 넘어 타자의 삶과 생명에 관한 존중과 연민으로 사고를 확장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과보호 받던 소녀는 신발 끈 묶는 법에서 시작해 '클로브히치' 매듭법을 익힌다. 비닐하우스를 설치하는 법도 배운다. 정말 재난이 와도 살아남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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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양들> 스틸 |
| ⓒ ㈜시네마 달 |
'산양들'은 닭과 오리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인간이 주는 사료와 우리에 안주해 살기에 그들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본능이다. 소동물들이 보여준 놀라운 면모에 감화된 소녀들은 자신을 짓누르던 어른들의 제약을 한 겹 두 겹 차례로 벗어던진다. 그야말로 대안적인 청소년 성장 서사가 그렇게 구현된다. 자신을 혐오하거나 파괴하지 않고도 가능한 변화다.
물론 그녀들의 성공과 보람은 여전히 학교와 부모의 잣대로는 하찮게만 보이거나 심지어 정신 못 차린다고 취급 받기 딱 좋다. 영화 끝날 시점까지도 '산양들'의 장래는 세속 기준으로는 보잘 게 없다. 그러나 눈빛이 바뀐 데다 고락을 나눈 친구가 생긴 '산양들'은 대학 4년 담보보다 더 장기적으로 써먹을 생존법을 배웠다. 10년 후, 20년 후 누가 더 행복하게 살아갈까?
<산양들>은 한국독립영화 지형에서 보기 드문 돌출을 선보인다. '모든 길은 입시로 통하는' 교육 체제 아래 극단적 현실을 압축한 자기 혐오적 풍경도, '괜찮아 잘 될 거야' 부류의 휘발성 치유와도 차별화한 결실이다. 이 기이한 작품은 <3학년 2학기>가 드물게 고3 청소년 중 3할이 넘는 수능 안 치는 실업계 학생을 가시화한 것처럼, 6등급들의 '4인 4색' 다양한 단면을 실체로 옮겨낸다. '산양들'의 풍부한 세부 묘사는 그녀들을 객체로 놔두길 거부한다.
영화는 네 명의 친구들에 시선을 집중한다. 산양들의 '안티 테제'로 여성을 착취하며 부모에 종속되고 세속적인 성공에 집착하는 지극히 '평범'한 남학생 찬영, 시스템의 대행자로 '산양들'을 전담하는 '아테' 선생님, 자식의 변화에 용기를 얻는 인혜의 엄마까지 그녀들의 변화 과정과 긴밀하게 조응 하는 존재로 몫을 소화할 따름이다. 워낙 문제 많은 세상일 다 끄집어내 일일이 맞서기엔 시간과 자원이 태부족하다는 현실 조건을 고려한 결과물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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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양들> 포스터 |
| ⓒ ㈜시네마 달 |
산양들
The Gorals
2025 한국 야생 우정 어드벤처
2026.07.29. 개봉 107분 12세 관람가
감독 유재욱
출연 박혜진, 이승연, 박효은, 최수인
제작 기린놀이터
배급 ㈜시네마 달
30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
51회 서울독립영화제 독립스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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