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읽고 '장난 아니겠다' 싶어... 내 경험치 믿지 말자 다짐"

이선필 2026. 7. 26.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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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면, 이 사람] 영화 <눈동자> ② 이태윤 촬영감독, 그가 현장에 한두시간 먼저 도착하는 이유

영화의 모든 장면은 협업의 결과물입니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감독의 얘기를 듣고, 그 장면 뒤 숨은 주인공을 만나봅니다. <기자말>

[이선필 기자]

 영화 <눈동자> 촬영현장에서의 이태윤 촬영감독.
ⓒ 쏠레어파트너스
[그 장면, 이 사람] 영화 <눈동자> ①에서 이어집니다.

"(영화가)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은데."

지난 6월 24일 개봉한 영화 <눈동자>가 손익분기점(관객 180만 명)을 앞둔 가운데 그는 "제작사를 비롯해 홍보사에서도 애쓰고 계신다. 좀 더 관객이 들면 좋겠다"며 간절한 바람부터 드러냈다. 그는 이태윤 촬영감독이다. 영화 <아저씨>(2010),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변호인>(2013), <덕혜옹주>(2016) 등을 거친 베테랑인 그 또한 온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21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촬영감독은 "제안받았을 때 우선 스페인 원작 영화 <줄리아의 눈>부터 봤다"며 "(연출을 맡은) 염지호 감독님이 한국 정서를 감안해서 차별성 있게 각색했더라"고 참여 이유부터 전했다. 여기에 더해 그는 "제작사 드림캡쳐의 김미희 대표가 제 촬영감독 데뷔작이었던 <라듸오 데이즈>(2008)의 제작자기도 했다"며 오랜 인연 또한 밝혔다.

<눈동자>는 시력을 잃어가는 사진작가 서진이 스토킹 위협을 피하며 쌍둥이 동생 서인의 의문스러운 죽음을 파헤쳐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배우 신민아가 1인 2역으로 서진과 서인을 연기했고, 배우 김남희가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로 분해 긴장감을 더했다.

[관객의 장면] 범인의 정체 눈채 챈 서진... 반전의 실마리

개봉 이후 온라인 관람평에서는 범인의 정체를 추측하게 하는 단서와 반전 장면이 자주 언급됐다. 염 감독이 "정통 스릴러를 표방했다"고 말했듯, 관객들은 영화 곳곳에 배치된 단서를 토대로 범인을 추리했다. 특히 각막 이식 수술을 받은 서진이 지인의 집으로 피신한 뒤 붕대를 푸는 장면에 대한 반응이 눈에 띄었다. "붕대를 푼 뒤 범인의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이 짜릿했다", "그 집에서 붕대를 벗는 순간 나까지 떨렸다"는 식이다. 해당 장면은 아래와 같다.

지인의 집으로 피신한 서진은 수상한 낌새를 느끼고 눈을 가린 붕대를 푼다. 회전형 할로겐 난로의 불빛이 방 안을 훑는 순간, 죽은 동네 청년이 생전에 건넨 쪽지의 내용을 확인한다. 범인의 정체를 폭로하는 내용이다. 곧 자신을 피신시켜 준 지인이 방문 쪽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고, 서진은 황급히 다시 붕대를 감는다.

"그 장면이 등장하기 전까지 감독님과 얘길 많이 했다. 눈치 빠른 관객은 이미 영화 중반부터 범인을 알 거라 생각해서 조금씩 힌트를 줄지 아예 다 가리고 갈지 말이다. 너무 감춘 나머지 범인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관객의 실소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목소리라든가 뒷모습을 보여주며 추측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 회전형 할로겐 난로를 통해 인물에게 향했을 때 딱 얼굴이 드러나도록 콘티 단계 때부터 설계한 결과였다. 배우들에게도 연기할 때 빛이 오는 순간에 맞춰서 해달라고 부탁해놨고.

사실 그냥 영화를 보면 모르실 수 있는데 촬영에선 정말 어려운 주문이긴 하다. 배우가 감정을 끌어올리는 와중에 특정 타이밍에 움직이도록 요구하는 것은 일종의 제약이 될 수 있거든. 신민아, 김남희 배우님이 흔쾌히 임해 주셔서 잘 진행됐다. 어둠 속에서 진행되는 장면이 많았는데 배우가 핸드폰을 떨어뜨릴 때도 액정이 아래로 향하게 해야 하는 등 세밀하게 주문해야 하는 현장이었다."

"이런 현장일수록 촬영감독은 더 긴장하고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게 이 촬영감독의 지론이었다. 염 감독의 전언처럼 그는 촬영 당일 누구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 콘티를 들여다보고, 주변 장소를 돌아다니며 탐색하곤 했다. 이 촬영감독은 "배우가 외부 요인 때문에 준비해 온 감정을 놓치는 상황만큼은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다"라며 말을 이었다.

"영화 일을 시작한 지는 30년 가까이 됐고, 촬영감독으로 데뷔한 지도 20년 가까이 됐지만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 익숙함에 몸과 마음이 게을러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제가 그렇게 출중한 사람이 아니라 경험치를 너무 믿지 말자고 의식하는 편이다. 그래서 시나리오나 콘티에 매번 빽빽하게 뭔가를 쓰게 되더라. 이번 현장은 염 감독님이 신인이니 그나마 경험 있는 제가 좀 더 준비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 더 먼저 나간 것도 있다. 콜타임보다 한두 시간 정도 일찍 갔다.

<변호인>처럼 콘티대로 가는 현장도 있지만 언제든 당일 바뀔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둔다. <눈동자>는 샷별로 계획을 잘 짜고 구상해야 했다. 제가 미술을 전공했기에 그림을 그려서 감독님에게 보여드리는 편이다. 배우의 연기 스타일, 장르의 특징에 따라 글을 첨부한다든가 그림을 그려놓고 설명하는 스타일이다."

[이태윤 촬영감독의 장면] 오토플래시 액션... "지금까지 작품 중 난도 상당히 높아"
 영화 <눈동자> 콘티북의 일부. 이태윤 촬영감독은 "매번 촬영 전마다 주요 아이디어를 메모하곤 한다"고 전했다.
ⓒ 쏠레어파트너스
이번 현장에서도 그는 어김없이 그림을 그려가며 감독과 소통했다. "혹시나 나이 차 등을 이유로 염 감독님이 날 어려워한다거나 하지 않았으면 싶었다"던 그는 "어찌 됐건 촬영감독은 감독 편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현장에서 감독님이 좀 힘들었을 때도 있었겠지만, 제가 제안해도 최종 결정권은 감독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중 염 감독과 이 촬영감독이 함께 치열하게 고민한 장면은 카메라의 오토 플래시를 활용한 액션 장면이었다. 범인에게 시력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킨 서진이 집 안의 모든 불이 꺼진 상태에서 카메라 플래시를 활용해 일격을 가하는 순간이다. 원작 영화에도 있던 설정인데, <눈동자>에선 플래시가 터질 때마다 인물의 움직임과 액션을 달리해서 보다 긴장감을 높이려 한 게 특징이다.

"밝은 장면과 어두운 장면을 편집으로 끊어서 사운드효과를 넣을 수도 있었는데 염 감독님은 진짜 플래시 불빛 하나로만 표현되길 원했다. 범인이 카메라를 칼로 찌르고 두 사람이 바닥에 구르는 대목이 있는데 어떤 각도로 어떻게 빛을 비추는 게 좋을지를 콘티 단계 때부터 논의했다. 영화에 등장한 카메라는 목업(mock-up, 실물모형)이다. 3D 프린터로 모형을 만들고 플래시를 장착할 수 있도록 했다. 근데 실제 플래시만으로는 원하는 광량과 발광 지속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색온도를 맞춘 별도 조명을 플래시처럼 작동하게 하고 후반 작업에서 효과를 보완했다.

사실 그 장면은 제가 작업한 영화 가운데서도 난도가 상당히 높은 장면이었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도 '장난 아니겠다' 싶었다. 염 감독님은 어떤 간접 조명 없이 오로지 플래시만으로 하길 원했거든. 두 생각이 교차했다. '와 재밌겠다'는 기대와 '어떻게 찍어야 하지'하는 걱정이었다. 결과적으로 한 70% 정도 만족한다. 항상 100%는 없는 것 같다."

이처럼 이 촬영감독 선택에서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도전이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아저씨> 이후 쏟아졌던 액션영화 제안, <변호인> 이후 이어졌던 법정영화 제안을 거절한 것도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들어오는 거 안 가리고 한다(웃음). <아저씨> 이후로 뭔가 내 분야에서 최고가 돼보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비슷한 장르를 피하다 보니 제가 경력에 비해 작품 수가 많지 않다. 특정 장르에 특화된 촬영감독이란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일종의 반발심이랄까. 오히려 젊었을 때 꼰대 같았다. 제 주장이 현장에서 받아들여지고 영화도 잘되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근데 경력이 쌓이면서 그런 게 없어졌다.

그런 태도가 바뀐 계기는 실패였다. 나름 큰 도전이었던 <은밀한 유혹>이 잘 안됐고, 여러 감독님을 접하면서 내 재능의 너비와 깊이를 가늠하게 됐다. 일종의 자기 객관화였다. 송강호 선배님과 작업 때도 느꼈던 게 이 소름 돋는 연기와 감정을 어떻게 담아야 할까였다. 결론은 연출자의 의도와 떨어지지 않는 것이더라. 개인적으로 저는 촬영감독이 전면에 드러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한 <은밀한 유혹>과 허진호 감독의 <덕혜옹주>를 인생의 전환점이라 소개했다. "영화라는 게 절대 혼자 잘나서 잘 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고백도 덧붙였다.

"이젠 최고가 되기보단 길게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최근 정지우 감독님의 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을 통해 처음 드라마 작업을 경험했는데, 이 분야에도 매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뭔가 계속 시도하는 촬영감독이고 싶다. 물질적 가치에 휘둘리거나 관성에 젖지 않으면서 말이다. 돈 많이 벌어서 일찍 은퇴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연출 데뷔를 꿈꾸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제작사와 계약하고 시나리오를 쓰다가 여건이 맞지 않아 잠시 접어 뒀다"며 그는 "스승이었던 이모개 촬영감독님도 그렇고, 김병서 감독님도 연출로 잘해내고 있으니, 언젠가 다시 도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영화 <눈동자> 촬영현장에서의 이태윤 촬영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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