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읽는 성경 3] 애굽으로의 피난과 시험
성경은 단순한 옛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이루신 구원의 기록이다. 말씀이 기록된 땅과 사건의 현장을 따라가다 보면 성경은 더욱 선명하고 깊이 있게 다가온다. 제성경 목사와 이윤 장로가 쓴 ‘성경, 현장에서 다시 읽다’를 기반으로 10회 연재한다.

사진은 이집트 북동부 고센 지방의 핵심 도시였던 라암셋 유적의 모습이다. 드넓은 평지 위에 고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와 석조 유물들이 남아 있다. 오늘날에는 황량한 유적지처럼 보이지만, 고센 지방은 나일강 삼각주의 풍부한 수자원과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번성했던 곳이다. 훗날 야곱의 가족과 이스라엘 백성이 정착한 지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아브라함도 가나안 땅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극심한 기근을 만나 애굽으로 내려갔다.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창 12:10)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었지만 처음 맞닥뜨린 현실은 풍요가 아니라 결핍과 시련이었다. 애굽은 나일강을 중심으로 번성한 문명국이자 당시 중근동의 곡창지대였다. 기근이 들 때마다 주변 민족들이 식량을 찾아 내려가던 곳이었다.
아브라함의 선택은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을 묻기보다 눈앞의 상황을 먼저 판단했다. 약속의 땅에 머물기보다 풍요롭고 안전해 보이는 애굽으로 내려간 것이다.
애굽에 가까워지자 그는 또 다른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아내 사라의 아름다움 때문에 자신이 죽임을 당할 것을 염려해 사라를 누이라고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창 12:13)
결국 사라는 바로의 궁으로 들어갔고, 아브라함의 거짓말은 더 큰 위기를 불러왔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려 진실을 드러내셨다. 바로는 아브라함을 책망한 뒤 사라를 돌려보냈고, 아브라함은 부끄러움 속에서 애굽을 떠났다.
이 사건은 믿음의 사람에게도 두려움과 불신의 시험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도 기근 앞에서 흔들렸다. 믿음은 약속을 받을 때보다 그 약속과 반대되는 현실을 만났을 때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약속의 땅이 곧 안락한 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근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할 것인지 환경을 의지할 것인지를 드러내는 시험이 될 수 있다.
애굽은 풍요와 안전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하나님보다 세상을 의지하려는 인간의 마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계산은 잠시 문제를 피하게 할 수 있지만 또 다른 두려움과 타협을 낳는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버리지 않으셨다. 그의 거짓말 때문에 언약을 거두지 않으셨고, 실패 때문에 약속을 취소하지도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시고 다시 약속의 길로 돌아오게 하셨다. 하나님의 언약은 인간의 완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애굽 경험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도 연결된다. 예수께서도 헤롯의 위협을 피해 애굽으로 피난하셨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시 불러내셨다.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마 2:15)
오늘 우리에게도 각자의 애굽이 있다. 어려움이 닥칠 때 하나님보다 먼저 붙잡고 싶은 세상의 안전장치가 있다. 그러나 진정한 피난처는 애굽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다.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내려갔지만 결국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왔다. 그의 실패는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배우는 회복의 시작이었다.
고센 지방의 라암셋 유적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기근과 두려움이 찾아올 때, 당신은 눈앞의 현실을 의지하겠는가, 아니면 약속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겠는가.
정리=
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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