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도 분통 터졌다…제주도 '국비 반납' 비판 커지는 이유

윤철수 기자 2026. 7. 26. 17:4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데스크논단] '민생 추경' 가린 국비 반납 논란, 배경과 원인
집행잔액 일반세입 전용…정부 '페널티' 경고에 부랴부랴
사업 수요 예측부터 집행·정산까지 관리 부실…도민 신뢰 흔들
제주도청 전경

제주특별자치도가 추가경정예산안에 편성한 '국비 반납금'을 둘러싸고 도민사회의 비판이 커지고 있다. 애써 확보한 농업 관련 국비마저 반납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농민들도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민선 9기 위성곤 제주도지사가 취임 이후 처음으로 편성한 4615억원 증액 규모의 '민생 추경'은 이 논란에 가려 빛이 바랬다. 민생 회복을 내세운 대규모 추경이지만, 국비 반납 문제가 논란을 키우면서 도민들에게 허탈감을 안기고 있다.

이번 제주도의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은 기정예산보다 5.7% 늘어난 8조4747억원 규모로 편성됐다. 당초 증액 규모는 3000억원대로 예상됐지만, 민생경제 위기 극복과 지역경제 회복에 방점을 두면서 최종적으로 4615억원 규모의 '민생 추경'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도의회 심의 과정에서 전체 증액분의 12.4%에 해당하는 571억원이 국고보조금 반환액으로 편성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물론 국비 반납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사업이 취소되거나 집행 잔액이 발생하면 이 부분은 반납하는게 원칙이다. 실제 제주도는 2024년 710억원, 지난해에는 662억원의 국비를 반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반납 규모는 과거와 비교하면 큰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논란이 커지는 이유가 있다. 

이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단순한 '집행 잔액'의 문제가 아니라, 국비 확보 이후 부실한 사업 관리와 반복된 행정 미숙 등 고질적인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1차산업 분야 국비사업에서 반납 규모가 유난히 컸다. 전체 반납액의 절반 가까운 270억원이 농수축 분야 사업에서 발생했고, 이 가운데 184억원은 제주도청 농축산식품국 소관 사업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반납금을 사업별로 보면 FTA기금으로 추진되는 감귤 시설현대화 사업이 88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주목할 점은 이 금액이 전년도 집행잔액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2020~2024년도 집행잔액 60억원과 2025년도 집행잔액 28억원을 합쳐 반납금으로 편성했다. 이미 5년 전부터 정산됐어야 할 집행잔액이 이제야 반납 절차를 밟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고품질 감귤 생산을 위한 FTA기금 사업에서 반납해야 할 금액은 이보다 더 많다. 연도별로는 2020년 1억2800만원, 2021년 6억4000만원, 2022년 6억3700만원, 2023년 40억원, 2024년 34억원 등으로, 2020~2024년도 집행잔액은 이자를 포함해 모두 89억원에 달한다.

제주도가 미뤄왔던 반납을 뒤늦게 서두르는 이유는 장기간 집행잔액을 정산하지 않아 정부로부터 페널티를 받을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올해 FTA기금 사업비로 160억원을 확보했지만 현재까지 교부받은 금액은 75억원에 그쳤다. 정부는 과거 집행잔액에 대한 정산이 완료돼야 나머지 85억원을 교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누적된 기존 집행잔액 정산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올해 남은 FTA기금 교부가 중단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제주도는 이번 추가경정예산안에 올해분 반납금과는 별도로 2020~2024년도 집행잔액 반납금 60억원을 편성했다.

이러한 반납금 편성 경위만 보더라도 문제의 심각성은 충분히 드러난다. 더욱이 예산이 집행되지 않은 이유와 사업 추진 과정, 사후 정산 방식 등을 살펴보면 행정 전반의 부실과 허점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대규모 미집행 예산이 발생한 이유부터 납득하기 어렵다. 제주도는 국비 지원사업 대상자 선정이 늦어지면서 사업 시기를 놓친 사례와 비가림하우스 신축 수요 감소, 농가 수요에 맞는 신규 사업 발굴 부족 등을 주요 원인으로 설명했다. 일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농정사업 특성상 사업 대상 농가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충분한 홍보를 통해 참여를 유도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불용액(미집행 예산)의 과다 발생도 문제다. 이는 사업 수요 예측과 사전 계획이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일단 예산만 확보하고 보자는 안이함, 집행 계획의 허술함, 주먹구구식 사업 추진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집행 잔액의 정산 방식이다. 제주도가 이번에 2020년도 국비까지 뒤늦게 반납하게 된 것은 그동안 집행 잔액을 국고에 반납하지 않고 '기타 잡수입'으로 처리해 다른 사업 재원으로 활용해 왔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특정 목적을 위해 조성된 FTA기금의 취지를 사실상 훼손한 것이나 다름없다. FTA기금은 고당도·고품질 감귤 생산을 위한 비가림하우스, 자동개폐기, 원지정비, 관수·관비시설 등 모두 15개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편성된 목적예산이다. 집행 잔액이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일반 세입으로 편입해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예산 편성과 재정 운용의 기본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실상 FTA기금의 '전용(轉用)'에 다름없다. 

도의회의 질타가 집중된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박호형 의원은 "제주도의 위상과 행정 신뢰가 추락했다"며 "농가를 위해 사용했어야 할 국비를 제대로 집행하지 못한 채 민생 추경으로 반환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임정은 의원도 "민생경제를 위해 사용돼야 할 추경예산이 국비 반납에 투입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하성용 의원 역시 "집행 잔액을 반납하지 않고 기타 잡수입으로 처리해 사용한 것은 명백한 문제"라고 질타했다.

논란이 커지자 김영준 제주도 농축산식품국장은 "정산 마무리 매뉴얼을 개선하고, 부서장을 중심으로 보조사업에 대한 책임관제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편성된 예산의 100%를 집행하면 이런 사례가 없게 되기 때문에, 집행에도 만전을 기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제주도정의 뒤늦은 개선 약속만으로 농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농민단체들과 진보정당이 잇따라 성명을 내고 제주도정을 규탄하고 나섰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도연합은 "1차산업 국비 반납은 어려운 농업 현실을 외면한 결과"라며 "추경예산으로 국비를 반납하는 무능한 도정"이라고 날선 비판을 가했다. 정의당 제주도당도 "민생을 살리고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가를 지원하는 데 쓰여야 할 예산을 행정 미숙으로 고스란히 걷어찬 꼴이 됐다"고 성토했다.
 
이번 국비 반납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한 예산 미집행의 문제가 아니다. 사업 수요 예측부터 예산 집행, 사후 정산에 이르기까지 행정 전반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난 사례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욱 크다. 이는 제주도정의 신뢰와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담당 국장의 도의회 답변만으로 덮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예산 집행 체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은 물론 재발 방지 대책과 책임 있는 후속 조치를 포함한 제주도정의 공식적인 개선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헤드라인제주>

Copyright © 헤드라인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