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 탄생 100주년, 낭만과 고독의 시인을 만나다

최옥화 2026. 7. 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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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 박인환문학관 방문기

[최옥화 기자]

감수성이 충만했던 여고 시절이나 문학을 좋아했던 젊은 날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구절 하나쯤은 기억할 것이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박인환 시인의 시 '목마와 숙녀' 중 첫 구절이다.
그리고 가수 박인희의 노래로 더 널리 알려진 우리에게 익숙한 '세월이 가면'도 그의 시다.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올해는 이 시들의 주인, 박인환(1926~1956) 시인이 태어난 지 백 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나에게 박인환은 '목마와 숙녀'와 '세월이 가면'을 쓴, 허무와 낭만의 모더니즘 시인 정도로만 남아 있었다.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서른한 살에 세상을 떠난 사연이 무엇인지, 김수영과는 또 어떤 사이였는지는 알지 못한 채였다.
지난 23일, 인제 여행길에 방문한 박인환문학관은 피상적으로만 접했던 시인 박인환에게 한 발짝 더 가깝게 다가가는 뜻깊은 계기가 되어 주었다.
 강원도 인제 박인환문학관
ⓒ 최옥화
1950년대 박인환이 활동한 명동 거리를 재현한 문학관

2009년에 개관한 이 문학관은 2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놀랍게도 산속 도시 인제 한복판에 1950년대 서울 명동 거리가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 단순히 글과 사진만 나열된 곳이 아니라 해방 이후 박인환 시인이 활동했던 1950년대 서울 명동의 거리와 술집, 서점 등을 입체적으로 재현해 놓은 것이 큰 특징이다.

1층에는 그가 직접 운영했던 서점 마리서사부터, 김수영 시인의 어머니가 꾸리던 선술집 유명옥, 예술인들의 낭만이 오가던 다방 봉선화와 모나리자, 첫 시집 출판기념회가 열렸던 동방싸롱, 그리고 그가 즐겨 찾던 술집 포엠까지. 걸음마다 다른 시절, 다른 공간으로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박인환문학관 1층 재현 공간
ⓒ 최옥화
 강원도 인제 박인환문학관
ⓒ 최옥화
2층에는 그의 문학 세계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었는데, 그 가운데 눈길이 오래 머문 곳은 선술집 경상도집이었다. 1956년 이른 봄, 박인환은 이곳에서 '세월이 가면'을 써 내려갔다고 전해진다. 소설가 이봉구의 회고에 따르면 그가 시를 쓰는 동안 언론인이자 극작가 이진섭이 즉흥으로 곡을 붙였고, 그 자리에 있던 가수 나애심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술자리 한 귀퉁이에서 시 한 편이 태어나고, 곧바로 노래가 되어 흘러나오던 그 순간을 상상하니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시란 어쩌면 이렇게, 준비된 자리가 아니라 아무렇지 않은 밤 한가운데서 불쑥 태어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 박인환 시 세월이 가면이 탄생한 경상도집 박인환 시 '세월이 가면'이 탄생한 경상도집
ⓒ 최옥화
재현된 공간들을 하나하나 거닐다 보니, 해방 이후의 혼란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붙들고 시로 표현하려 했던 그의 고뇌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면서도 시인들과의 치열한 토론을 위해 독한 싸구려 양주를 과음했다는 이야기 앞에서는 시대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던 그의 고독한 영혼이 느껴져 가슴 한쪽이 묵직해지기도 했다. 그는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함께 읽으며, 술자리에서 차별과 전쟁의 폐해를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을 바랐던 사람이었다.

김수영과 달랐던 문학의 길, 그리고 치열했던 삶

박인환을 이야기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풀'로 유명한 시인 김수영이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지만 전혀 다른 길을 걸었던 두 사람. 사회 참여를 둘러싸고 문인들이 진영을 나누던 시절, 박인환은 순수문학을, 김수영은 참여문학을 대표했다. 혹자는 박인환이 시대정신을 잊은 채 술과 낭만에만 취해 있었고 그 결과가 '목마와 숙녀'와 '세월이 가면'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립은 단순한 감정싸움이나 모더니즘 노선의 차이라기보다 각자가 선택한 시어가 대중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를 두고 벌인 치열한 고민의 결과였을 것이다. 순수와 참여, 그 어느 쪽이 옳고 틀리지 않았다. 다만 시대를 견디는 방식이 저마다 달랐을 뿐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 전쟁을 거쳐 대구로 부산으로 피난하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의 삶은 잔혹했던 세월 그 자체였다. 그 고단한 삶속에서도 그는 결코 펜을 놓지 않았고, 서점을 열고, 토론을 벌이고, 영화 평론가로도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다 갔다.

역사는 그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느냐보다, 어떤 작품을 남겼느냐를 기억한다.

인제 박인환문학관을 나오며 문득 스친 생각이다. 전쟁과 가난의 폐허 속에서도 낭만과 존엄을 포기하지 않았던 한 청년 시인의 삶을 돌아보며,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과연 세상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조용히 자문해 보게 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인제의 산과 계곡을 보러 왔다가 뜻밖에 명동의 밤 한복판을 걸어 나온 하루였다. 시인은 서른한 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쓴 한 잔의 술과 한 편의 시는 백 년이 지난 오늘도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여전히 눈동자와 입술로 살아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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