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돌봄 20년 했는데 돌아온 건 퇴거 통보…재개발에 밀려나는 작은 교회

2026. 7. 2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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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진 시세 비해 보상금은 턱없이 부족
20년 이어온 돌봄사역도 중단 위기
법적 도움없이 소형교회 권리 주장 현실적 한계
정부는 종교시설 권리 인정했지만, 판례 없는 현실 속 현장은 여전히….
유권해석 넘어 현장 작동할 제도 필요 목소리
김진은(오른쪽 의자에 앉은 이) 목사가 지난 24일 충남 아산시 인주면 서광감리교회 예배당에서 여름성경학교에 참가한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20년 넘게 지역 아이들을 돌보며 마을 공동체를 지켜온 지방의 한 소형교회가 재개발로 퇴거 위기에 놓였다. 주변 땅값은 몇 배 뛰었지만, 보상금만으로는 새로운 예배처를 마련하기 어려워 사실상 강제 이전을 앞둔 것이다. 정부가 최근 재개발 사업에서 종교시설도 아파트 주민 편의시설과 같은 ‘복리시설’로 인정해 대체 건물을 공급할 수 있다는 공식 해석을 내놓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실효성 있는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4일 찾은 충남 아산시 인주면 서광감리교회(김진은 목사). 여름방학을 맞아 여름성경학교에 참가한 아이들의 찬양 소리가 예배당 밖까지 울려 퍼졌다. 도심 교회가 아님에도 30여명의 아이들이 모여 찬양을 배우고 뛰어놀았다. 하지만 이 교회는 올해 안으로 예배당을 비워야 한다는 통보를 받은 상태다.

교회가 위치한 인주면 일대는 서해경제구역 개발과 산업단지 조성, 6000가구 규모의 아파트 건설이 추진되면서 급속한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1998년 개척된 서광감리교회도 재개발 수용 대상에 포함됐다. 주변 땅값이 1㎡당 500만원까지 치솟았지만, 시행사가 제시한 보상금은 절반 수준에 못 미쳐 조건에 맞는 비슷한 규모의 부지를 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진은(59) 목사는 “기존 건물을 사더라도 리모델링 비용까지 감당하려면 다시 큰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다”며 “이제는 무리하게 대출받아 교회를 짓는 시대도 끝나지 않았느냐”고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지역 돌봄 사역이 중단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서광감리교회는 1999년 공부방을 시작으로 2012년부터 교회 인근에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며 아이들을 돌봐왔다. 현재 40여명의 초등학생이 이용하고 있으며 절반가량이 다문화가정 자녀다. 탈북민과 취약계층 가정 아이들도 적지 않다. 센터를 통해 교회를 찾게 된 아이들도 많았고, 꿈나무 음악회 등 센터 사역은 지역사회와 교회를 잇는 통로가 됐다.

김 목사는 “아이들이 편하게 찾아와 책도 읽고 문화 체험도 할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며 “마지막 목회는 다음세대를 위한 교회로 남고 싶었는데, 멀리 이전하면 아이들도 더는 걸어서 올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황미숙(61) 사모는 “2020년부터 감정평가와 이의신청을 반복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며 “변호사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려워 사실상 쫓겨나는 심정이다”고 전했다. 이어 “시골교회는 아이들의 신앙을 키우는 모판 같은 곳인데 그 터전이 사라질까 두렵다”며 “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사역이 끊기지 않도록 종교부지나 현실적인 이전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서광감리교회 예배당 모습. 1998년 인근에서 교회를 개척한 김 목사는 2005년 지금의 자리에 부지를 매입해 예배당을 지었다.

교회는 교단 차원의 지원도 기대했지만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김 목사는 “목회자가 시행사와 법적 다툼까지 감당하기는 어렵다”며 “교단에서 변호사 등 전문가 지원만 해줘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교회가 속한 연회 관계자는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지원이 필요한 미자립교회가 많지만, 예산이 한정돼 충분한 지원이 쉽지 않은 현실이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가 전국 재개발 현장에서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30년 넘게 부동산 개발·보상 업무를 담당한 이흔재(70) 아가페교회 장로는 최근 국토교통부와 법제처로부터 재개발 사업에서 종교시설도 아파트 주민 편의시설과 같은 복리시설로 인정해 대체 건물을 공급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끌어냈다. 그동안 주택이나 오피스텔, 복리시설만 새 건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는 기존 해석을 뒤집고, 종교시설도 원 생활권에서 재정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그는 “유권해석이 나왔어도 현장에서는 여전히 기존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며 “판례가 없는 상황에서 소규모 교회 목회자가 변호사나 대형 법무법인의 도움 없이 시행사를 상대로 권리를 주장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개발은 단순한 보상 문제가 아니라 종교의 자유와 지역 공동체의 존속이 걸린 문제”라며 “정부가 마련한 제도가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구체적인 지침과 제도적 뒷받침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산=글·사진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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