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이런 일 처음, 놀랐지만…” 할머니 도운 태권 식구들
관장님과 아이들이 지켜낸 폭염 속 위기
아직 살 만한 세상 만드는 [작은영웅]

“약간 좀 힘들어 보이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인천의 한 태권도장에 할머니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와 카운터 쪽으로 다가오려다 갑자기 뒤로 쓰러집니다.

수업 시작 전 매트 정리를 하다 문 쪽을 바라본 아이들은 우연히 이를 목격하고 당황한 듯 누군가를 부릅니다. 쓰러진 할머니는 어떻게 됐을까요.

상황이 벌어진 건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 7월 13일 오후 6시 즈음이었습니다.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황인태씨는 기계체조 수업을 위해 아이들과 함께 바닥에 안전 매트를 설치하고 있었죠. 넓은 바닥에 걸쳐 장비를 설치하느라 출입문 쪽을 제대로 살피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인태씨에게 상황을 알린 건 초등학교 6학년생인 김준(13)군. 한 할머니가 도장 출입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몇 걸음 옮기기도 전 중심을 잃고 쓰러진 걸 처음 본 거죠.
“(할머니가) 약간 좀 힘들어 보이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그런 것 같았는데…. 누가 쓰러졌다고 (사부님을 불렀어요.)”

제자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인태씨가 달려왔을 땐 할머니 스스로 몸을 일으키려 하고 있었죠. 언뜻 보면 도장에 들어오려다 단순히 넘어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할머니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입술이 보라색이고 막 손발을 너무 떨고 계시더라고요. 이제 제가 부축해드리고 어디 아프시냐 자녀분들이 계시냐 연락해드리겠다 했는데 의사소통이 안 돼 가지고.”

그런데도 할머니는 자꾸만 괜찮다며 밖으로 나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바깥 날씨는 푹푹 찌는 무더위였죠.
이 상태로 할머니가 다시 밖으로 나갔다가는 길에서 또 쓰러질 수 있다고 판단한 인태씨는 일단 119에 신고한 후 할머니를 에어컨이 있는 입구 쪽 의자에 앉혀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생수 한 병을 들고 와 할머니께 드리고, 혼자 나가시지 않도록 곁에서 지키고 있었죠.
“할머님이 계속 막 움직이시려고 해서 나가면 위험하다, 덥다. 제가 자리에 계속 앉아 계시게 하려고 해도 일어나다 또 넘어지고 나가려고 그러고 이런 상황을 한 그럼 한 5분, 6분 정도 보냈던 것 같아요.”
어린 제자들도 인태씨를 도왔습니다. 옆에 있던 오믿음(13)군은 관장님 요청에 화장실로 달려가 수건에 물을 적셔 왔죠.

“뭔가 약간 마음이 조금 성급했어요. 저도 좀 놀라가지고 가만히 있다가, 사부님이 수건에다가 물을 적셔가지고 오라 하셔가지고…. 그것밖에 한 일이 없어요.”
인태씨는 믿음군이 가져온 물수건으로 할머니의 얼굴과 팔 등을 닦아드렸고, 할머니는 차차 열이 식으면서 상태가 진정되는 듯했습니다.

아이들도 다시 도장 안쪽으로 돌아가 스트레칭을 시작했지만, 놀란 마음은 여전한지 시선은 온통 할머니를 향해 있었죠.
“이런 일은 처음이라서 좀 뭔가 할머니께서 괜찮으실까 자꾸 걱정되고, 자꾸 뭔 일인지 궁금해지고 그래가지고 계속 쳐다보고 그랬어요.”

10분가량이 흐른 뒤 구급대원이 태권도장에 도착했고 할머니는 무사히 구급차로 옮겨졌습니다. 그제야 아이들도 자기들이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도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합니다.
“구급차가 진짜 와서 구급대원분들이 막 침대에 눕혀서 데려가고 하는 걸 보니까 우리가 아프신 분 도와드린 거구나. 그렇게 마무리됐습니다.”

사실 이 태권도장은 5개월 전만 해도 동네 마트였습니다. 도장 출입구는 그래서 길가에서 바로 들어설 수 있는 1층에 있죠. 그러다 보니 마트 자리로 기억하는 어르신들이 지금도 종종 문을 열고 들어와 물을 마시고 간다고 합니다.

인태씨는 이날 할머니도 아마 무더운 날씨를 피해 익숙한 마트 자리로 왔다가 도장에 들어온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동네 곳곳에 무더위를 피할만한 쉼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기도 합니다.
“더위 대피소가 없으니까 힘드신 분들 너무 더우면 좀 들어오셔서 물이라도 드시고 가게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찜통더위에 지친 할머니가 마침 이 태권도장에 들어간 건 우연 같지만, 위기 상황을 안전하게 넘길 수 있었던 건 선한 의도가 남긴 여러 손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웃 어르신에게도 잠시 쉴 공간을 내어줄 수 있는 여유, 다른 이의 위험을 그냥 넘기지 않고 함께 걱정하며 손길을 내민 도장 식구들의 마음이 그런 우연을 행운으로 바꾼 것 아닐까요.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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