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일 만의 석방, 끝나지 않은 자유의 여정

“물건 챙기라.”
7월 3일 금요일 낮 12시 30분. 중국의 한 구류소. 폭염 속 하루 3분 남짓 허용된 샤워 도중 간수가 그를 불렀다. 가진 물건이라곤 성경 한 권뿐. 다른 수감자에게 주고 가겠다 했지만 허락되지 않았다. 수갑이 채워졌다. 이감인 줄 알았다.
목적지는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가 몸을 실은 열차 한 칸엔 공안들이 가득했다. 행선지를 물을 때마다 “좋게 생각하라”는 답만 돌아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광저우 공항. 공안은 그를 세워둔 채 짧은 통보 절차를 밟았다. “범죄 사실과 증거가 확실하지만 기소를 취소한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물어도 답은 없었다.
비행기 문 앞에서 여권과 티켓을 받았다. 목적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옆자리에 앉은 백인 남성이 말했다. “김 목사님, 석방을 축하합니다. 중국이 정말 석방할지 우리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8시간을 기다린 미 대사관 영사였다.
영사가 전한 뒷이야기는 이렇다. 체포 사흘 만에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성명을 냈고, 상·하원 의원 44명이 석방을 요구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직접 석방 대상자를 언급했다는 것이다. 딸 그레이스 진씨도 아버지가 체포된 뒤 언론에 소식을 알리고 의회와 백악관 관계자들을 찾아다니며 석방을 호소하는 데 힘을 쏟았다.
통상 유죄 판결 뒤 제3국을 거쳐 수년 만에 이뤄지던 석방이 아무 조건 없이 단행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미 외교계에서도 연구 대상”이라 했다. 그렇게 3일(현지시간) LA에 도착했다. 미국 독립 250주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공항엔 아내와 딸 부부, 막내아들, 태어난 지 한 달 된 외손자가 나와 있었다. 에즈라 진(김명일·57) 목사가 8년 만에 마주한 가족이다. 그가 2007년 세운 베이징 시온교회는 40여 도시에서 예배를 드리는 중국 최대 가정교회 네트워크로 성장했지만, 2018년 당국이 교회를 폐쇄하면서 진 목사는 가족을 미국에 두고 홀로 귀국해야 했다. 이후 출국이 금지됐고, 지난해 10월엔 ‘불법 정보망 사용’ 혐의로 동역자들과 함께 체포됐다. 자유의 몸이 된 건 266일 만이다.

그러나 기쁨만 안고 나온 건 아니라고 했다. 진 목사는 25일 국민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자유와 함께 이렇게 엄청난 책임감과 슬픔이 따라올 줄은 몰랐다”고 했다. 시온교회 동역자 8명이 여전히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풀려난 뒤 검찰이 오히려 이들을 법원에 정식 기소했다”며 “제가 나온 뒤 사안이 더 심각해졌다”고 전했다.
그가 미국에서 하는 일도 온통 남은 8명에 관한 일이다. 워싱턴DC에 머물며 만난 미 의원만 20여명. 만나는 사람마다 같은 부탁을 반복했다. 진 목사는 “제 석방을 축하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라고 말씀드린다”며 “여덟 명에 대한 재판 절차를 멈출 수 있도록 계속 힘써 달라고 부탁 중”이라고 했다.
진 목사는 종교 자유 문제에 목소리를 내온 의원들의 관심이 정파를 가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 상원의원은 앞서 대통령에게 보냈던 석방 촉구 서한을 그에게 건네기도 했다. 최근엔 50여 개국 교계·국가 지도자들이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거론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진 목사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했다.

한국행은 그의 다음 기도 제목이다. 재외동포 비자는 있지만 미국 재입국 절차가 풀려야 한다. 진 목사는 “미국 정부가 허락하면 당장이라도 한국에 가고 싶다”며 “제일 먼저 어머니를 뵈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에 있는 94세 노모는 아들이 갇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충격을 받으실까 봐 누님들이 알리지 않았다. 진 목사는 “어머니가 연로해 저를 못 알아보실 수도 있다”면서도 “그래도 한시라도 빨리 뵙고 싶다”고 했다.
한국교회엔 세 가지를 전했다. 기도에 대한 감사, 수감된 목회자들을 위한 기도, 그리고 중국 선교를 포기하지 말아달라는 것. 진 목사는 “자유를 누리는 교인에겐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성도에 대한 더 큰 책임이 있다”며 “아시아에서 가장 큰 한국교회가 그 책임을 함께 감당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현성 김연우 기자 sag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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