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막걸리처럼, 프렌치는 가깝게…일상이 되는 다이닝, 셰프의 제안 [쿠킹]
" 비 오는 날 전이 생각나면 막걸리가 떠오르고, 추운 날 오뎅탕에는 소주가 생각나잖아요. 와인도 똑같아요. "

윤병준 셰프는 인터뷰 내내 "와인은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 청담동에 자리한 파인다이닝 '르몽뒤뱅'의 총괄셰프인 그는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프렌치 코스 요리와 와인 페어링을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와인은 거창한 지식이나 비싼 병이 아니다. 좋아하는 음식에 자연스럽게 곁들이는, 일상의 술이다.
"공부부터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마셔보세요. 맛있으면 사진도 찍어두고, 품종도 찾아보고요. 그렇게 하나씩 나에게 맞는 와인을 찾으면 됩니다."
누군가와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그 식탁을 더 즐겁게 만드는 일. 윤 셰프가 요리를 시작한 이유도 그 마음에서 출발했다.
윤 셰프가 처음 요리를 시작한 건 중학생 때였다. 생일을 맞은 어머니를 위해 처음으로 미역국을 끓였다. 지금 생각하면 간도 맞지 않는 서툰 음식이었지만, 기뻐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누군가에게 음식을 해주는 즐거움을 처음 알게 됐다.
그때부터 셰프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어린 마음의 호기심쯤으로 여겼다. 윤 셰프가 2년 동안 뜻을 굽히지 않자 부모님은 고등학교에 합격하면 요리를 배워도 좋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는 고등학교에 합격하자마자 요리학원에 등록해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학교를 마치면 곧장 학원으로 향했고, 수업이 없는 날이나 방학에는 식당 주방에서 일하며 현장을 익혔다. 학업과 실습을 병행한 끝에 고등학생 시절 조리 관련 자격증 4개를 취득했다. 이후 호텔조리학과에 진학하며 본격적으로 셰프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싱가포르의 호텔과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았다. 다양한 식재료와 조리법을 접하며 기술도 배웠지만, 그보다 크게 남은 것은 요리에 이야기를 담는 방식이었다.

"좋은 요리는 누구나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요리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고 왜 만들었는지가 담겨야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는 늘 제철 식재료를 공부했다. 새로운 메뉴를 고민할 때면 가장 먼저 시장으로 향한다. 어릴 적 할머니 손을 잡고 다니던 오일장에서 시작된 습관이다.
"시장에 가면 제철 식재료를 보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많아요."
식재료를 사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상인들에게 언제 나는지, 어떻게 먹으면 가장 맛있는지까지 묻는다. 그는 "식재료를 파는 사람만큼 그 식재료를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가장 오래 식재료를 다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결국 요리의 출발점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찾은 식재료도 익숙한 방식으로만 사용하지는 않는다. 한국 식재료를 쓰더라도 사람들이 당연하게 떠올리는 조리법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는다. 늘 먹던 재료를 조금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윤 셰프가 추구하는 요리다. 또, 거창한 기술보다 작은 차이가 음식의 완성도를 바꾼다고 말한다.
"야채도 그냥 삶는 것보다 치킨스톡이나 닭육수에 살짝 데치면 맛이 훨씬 깊어져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옆에 나가는 가니시도 대부분 그렇게 마무리합니다. 야채만으로는 조금 심심할 수 있는 맛을 육수나 버터가 채워주는 거죠."
그의 철학은 지글지글클럽의 '요리를 배워요'를 통해 선보이는 '다이닝&페어링'에도 그대로 담겼다.
윤 셰프는 이번 메뉴를 기획하며 가장 먼저 '집에서 즐기는 홈파티'를 떠올렸다. 와인을 마신다고 해서 거창한 요리를 준비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충분히 만들 수 있으면서도, 플레이팅만 조금 달리하면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를 낼 수 있는 메뉴를 구성하는 데 집중했다.

이번 메뉴에도 그의 요리 철학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프렌치 요리에 흔히 사용하는 허브 대신 깻순이나 호박잎 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제철 나물을 활용하는 등 한국 식재료를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냈다. 여기에 각 메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을 함께 제안해 집에서도 부담 없이 다이닝과 페어링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와인은 음식과 잘 어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에는 맛뿐 아니라 어떻게 담아내느냐까지 함께 고민했습니다. 같은 음식도 접시 하나에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기분도, 맛도 달라지니까요."
윤 셰프는 이번 클래스를 통해 파인다이닝과 와인이 생각보다 가까운 음식이라는 점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파인다이닝이나 프렌치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평소 먹는 식재료만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간단하게 만들었는데 이런 맛이 나네?' 그런 경험을 한 번만 해보셔도 좋겠습니다."
그에게 와인은 공부해야 하는 술도, 특별한 날에만 꺼내는 술도 아니다. 누군가와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식탁을 조금 더 즐겁게 만들어주는 일상의 한 잔이다. 윤 셰프는 “비 오는 날 전에는 막걸리, 추운 날 오뎅탕에는 소주가 떠오르듯 언젠가 와인도 그런 자연스러운 선택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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