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中을 적고 한국은 적지 않았다…정부의 미·중 줄타기

윤지원 2026. 7. 25. 08: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2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의가 끝난 뒤, 한국과 미국은 같은 회의를 놓고 서로 다른 문서를 내놨다. 미 국무부가 발표문에 명시한 ‘중국’이 외교부 자료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다.

미 국무부는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이 “대만해협 전반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이 최근 태평양으로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대해 충분한 통보가 없었던 점을 우려와 함께 주목했다”고도 했다. 중국의 잠수함발사 ICBM 시험은 지난 6일 이뤄졌다. 경제안보 대목에서도 국무부는 “공급망 무기화에 대한 공동의 반대를 재확인했다”고 적었다. ‘공급망 무기화’는 미국이 중국의 희토류 및 핵심광물 수출 통제를 지칭할 때 써온 표현이다.

반면 같은 날 외교부가 낸 자료엔 대만해협도, ICBM도 없었다. 외교부는 “현상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려는 시도를 포함하여 역내 정세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만 밝혔다. 미 측 자료에 담긴 “공급망 무기화”란 표현도 “공급망 다변화 및 회복력 증진”으로 바뀌었다. 조 장관은 회의에서 “한·미·일 협력 강화 의지에 대한 단합된 메시지를 발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욱 의미 깊다”고 말했다. 한·미·일 3국 공조에는 이름을 올리되, 중국을 겨냥한 문구에서는 한 발 물러선 셈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왼쪽)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22일 필리핀 마닐라 필리핀국제컨벤션센터(PICC)에서 아세안관련 외교장관회의 계기에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최근 외교가에선 미국이 요구하면 중국을, 중국이 요구하면 미국을 의식하는 장면이 번갈아 포착되고 있다. 이와 관련, 여권 고위 관계자는 통화에서 “미·중 관계가 곧 경제안보라 섬세한 고려가 필요하다”며 “공급망도, 반도체도, 핵심 광물도, 인공지능(AI)도 결국 미·중 대립이 대전제”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2일 미국·일본·필리핀 등 14개국이 “10년 전 판정은 중요한 이정표이며 최종적이고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고 밝힌 남중국해 중재판정 10주년 공동성명 때도 참여하지 않았다. 미국은 동참을 요청했지만, 한국은 주필리핀 대사관 명의로 “규칙에 기반한 해양질서”를 강조하는 입장을 따로 내는 선에서 정리했다.

익명을 원한 소식통은 “동참 요구를 거절했다보니 미국이 당연히 흡족할리가 있었겠나”면서도 “하지만 한국으로선 중국이 거칠게 반응할 것을 감안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 외교부는 성명 당일 주중 일본대사관 수석공사를 긴급 초치해 “일본은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역사적 죄과를 안고 있으며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고 항의했다.

17일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WAIC) 개막식에 참석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반대로 미국을 염두에 둔 장면도 포착된다. 중국은 지난 17~20일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에 한국 측에 고위급 참석을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정부는 주재관과 과장급 실무진만 보냈다. 16일 러시아·브라질 등 29개국과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를 출범시키고, 17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나와 새 AI 질서를 제시한 무대였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AI 공급망 협의체 ‘팍스 실리카’에 지난해 12월 창립 멤버로 참여한 한국으로선 중국의 요청대로 고위급 인사를 보내기에는 부담이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미·중 관계와 기술협력 구도 등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던 결정”이라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