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지진, 모두 '46분'에 일어난다…베네수엘라 지진도 인공" 국경 넘은 괴담의 정체[음모론 비즈니스]
편집자주
미확인 비행물체(UFO), 빌 게이츠 인류 통제설, 사탄의 명령을 받는 아이돌. 검증되지 않은 음모론은 시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존재했다. 사회의 불안과 불신을 먹고 자라며, 그 시대의 기술 환경에 맞춰 모습을 바꿔왔다. 인터넷의 등장은 음모론의 확산 속도를 크게 높이면서 국경의 경계도 허물었다. 여기에 생성형 인공지능(AI)까지 더해지면서 이제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마저 흐려지고 있다. 음모론은 더이상 비합리적인 미신이나 인터넷 괴담에서 그치지 않는다. 조회 수와 후원, 유료 커뮤니티, 상품 판매 등을 거쳐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아시아경제는 한미일 3국의 사례를 통해 '음모론 비즈니스'에 대해 집중 조명해봤다.
"최근 일본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모두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46분'에 발생한다. 모두 딥 스테이트(비밀 권력집단)가 일으킨 인공지진이다."
지난달 25일 베네수엘라와 일본 이와테현에서 각각 지진이 발생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되기 시작한 글들이다. 이후 하늘에서 레이저가 내려오는 인공지능(AI) 영상이 베네수엘라 인공지진의 증거로 지목됐다. 심지어 이를 공유한 일본 네티즌이 "같은 날 지진이 발생한 야마나시현에서도 같은 빛을 봤다"고 답하면서 곧 온갖 음모론과 허위정보가 국경을 넘어 뒤섞이는 양상이 벌어졌다. 이에 베네수엘라 현지 언론과 AFP 등은 급히 해당 정보는 "모두 거짓"이라며 사실을 검증해 보도에 나섰다.

기술이 발전하면 허위정보와 음모론도 점차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자연재해, 전쟁, 팬데믹, 선거 등 거의 모든 이슈에 허위정보와 음모론이 즉각적으로 퍼지고 재생산되고 있다. 이 중 일부는 단순 온라인상에서 논란을 일으키는 것을 넘어서, 시위와 의료기관 침입, 통신시설 방화 등으로 발전하며 현실 세계에서의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이 같은 음모론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달 17일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세계 최대 팩트체크 국제회의 '글로벌팩트 2026'에서는 이 같은 AI로 인한 허위정보 확산 우려를 핵심 의제로 다뤘다. 글로벌팩트를 주관하는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의 앤지 드로브닉 홀런 디렉터는 "정확성 대신 이용자의 관심을 통해 이익을 챙기는 AI 생성 요약과 독점적 플랫폼들 때문에 언론의 비즈니스 모델이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관심이 곧 수익이 되는 구조 속에서 허위정보와 음모론도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장의 특징은 국경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와 옆나라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음모론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한국과 일본으로 퍼지고, 각국의 사회·정치적 상황에 맞춰 새로운 형태로 변형·재생산된다.
코로나19와 결합한 각국의 다양한 음모론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음모론은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전 세계를 휩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코로나19 백신이 나왔을 당시 미국에서는 '빌 게이츠가 백신에 마이크로칩을 심어 인류를 통제한다', '코로나19는 CIA가 꾸민 음모'라는 주장이 확산했다.
한국에서는 국내 일부 보수 개신교계와 종말론 성향 집단을 거쳐, '짐승의 표(666)' 괴담과 결합했다. 백신이 DNA를 조작하고 세계정부의 통제를 받게 된다는 주장으로 변형됐다.

코로나19와 5G를 연결한 음모론도 퍼졌다. 코로나19 백신에 들어간 특수물질은 5G 전파를 받으면 반응해 호흡이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통신 기지국 방화로 이어졌다. 일본에는 머리에 알루미늄 포일을 두르면 이 5G 전파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해결책도 등장했다. 이 때문에 일본 SNS는 해당 음모론을 믿는 사람을 '알루미늄 포일 족'이라고도 부른다.
지진·미세먼지…각국 특성에 맞춰 현지화되는 음모론현상 자체가 각국에서 재생산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켐트레일(chemtrail)' 음모론이 대표적이다. 비행운이 정부나 군이 살포한 유해 화학물질이라는 주장이다.

이 음모론은 한국에서도 재생산됐다. 미세먼지 문제가 커지자 일부 온라인 공간에서는 미세먼지가 많은 날 캠트레일을 연관 지으며 미국 비정부와 프리메이슨 등이 배후라는 음모론으로 변형됐다.
일본에서는 켐트레일이 '수수께끼의 감기'나 '지진운'으로 연결된다. 환절기 감기를 켐트레일과 연결 지으며 사실은 비밀 기관이 살포한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라는 것이다. 나아가 인공지진을 예고하는 구름이라며 자연재해 음모론으로 현지화됐다.
SNS로 음모론 수출하는 시대…세계관도 바꿨다미국의 정치 음모론이 해외에 수출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큐어넌(QAnon)'이다. 큐어넌은 전 세계가 소아성애자와 인신매매 조직으로 구성된 비밀 권력 집단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음모론 운동이다. 신봉자들은 이 악행이 그림자 정부인 '딥스테이트'에 의해 자행되며, 미 민주당 정치인이나 할리우드 스타 등이 대거 소속돼 있다고 믿는다. 또 이들은 성적 학대나 인육 섭취에도 가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 시작된 큐어넌은 일본으로 건너가 'J어넌(JAnon)'이라는 형태의 지지 집단을 만들어냈다. 2020년 미국 대선 이후에는 수백 명의 일본인 지지자들이 도쿄에서 '부정선거' 주장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반(反)백신 운동과 결합한 '야마토Q'도 등장했다. 야마토Q는 '과학이 세계 멸망을 앞당기고 있으며, 신의 선택을 받은 일본인만이 딥스테이트에 맞설 수 있다'는 독특한 세계관을 갖고 있다. 이들은 실제 백신 접종 병원을 급습하기도 했다.

새로운 특징도 나타났다. 기존 일본에서 자생한 음모론은 일본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외부 세력으로 미국과 한국을 꼽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미국발 음모론이 섞이면서 이러한 구도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같은 정치인을 지지한다고 하거나, 딥스테이트와 싸운다는 서사를 받아들이는 집단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음모론이 퍼지면서 엉뚱한 주장으로 번지는 경우가 있었다. 최근 한 극우단체 시위에서는 '진보 인사로 분류되는 유명 언론인이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됐다' 등의 주장이 등장한 바 있다.
일본에서는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미국의 '딥스테이트'가 일본을 지배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의 CIA·FBI·딥스테이트·QAnon 같은 단체들이 세계 공통의 음모론 서사로 기능하기 시작한 셈이다. 여기에 2022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암살된 후에는 케네디 암살론과 유사한 '일본 정부 내부의 소행'이라는 음모론도 돌았다.
생성형 AI는 음모론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총격 사건 직후 '트럼프 측의 자작극'이라는 음모론이 확산했고, 용의자와 배후를 둘러싼 AI 생성 이미지도 함께 유포됐다.

도쿄(일본)=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유현석 기자 guspo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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