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원전도 없는 사우디와 핵협정…“韓엔 이중잣대” 비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원자력 협정 체결 사실을 재확인하면서도 협정의 전제는 사우디의 ‘아브라함 협정’ 가입이라고 주장했다. 아브라함 협정은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골자로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정 체결 하루만에 사우디가 수용하기 어려운 전제조건을 제시하면서 협정이 성사될지에 대한 변수가 발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제를 걸기는 했지만 이번 협정이 정상적으로 체결될 경우 사우디는 일단 잠재적 우라늄 농축 권한을 확보하게 될 거란 평가를 받는다. 이를 놓고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과의 원자력 협정 체결을 미루는 와중에 원전조차 건립하지 않은 사우디와 원자력 협정을 먼저 맺은 것에 대해 “이중 잣대 적용”과 관련한 논란이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협정 전제는 아브라함 협정 가입”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글에서 “사우디와의 원자력 협정(이른바 ‘123협정’)을 승인할 것”이라면서도 “이는 전적으로 사우디가 매우 존중받고 성공적인 아브라함 협정에 가입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고 밝혔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사우디가 아브라함 협정에 가입하지 않으면 이 협정(123 협정)은 무산된다고 말했다”며 협정의 전제조건을 재확인했다.
아브라함 협정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미국의 중재로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수단이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 수립에 합의한 협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행정부 들어 중동의 다른 국가들로 협정을 확대하려고 시도해왔지만 아직 추가 가입국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정의 전제로 아브라함 협정을 제시한 것은 사우디에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를 강제한 의미다.
그런데 사우디는 그간 이스라엘이 수용하기 어려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관계 정상화의 조건으로 내세워왔다는 점에서 변수가 될 거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스라엘 즉각 환영…“중동 평화 역사적 도약”
사실상 사우디가 팔레스타인 독립에 반대하는 입장이 협정의 전제조건으로 명시되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즉각 “사우디가 아브라함 협정에 동참하는 것은 중동 평화를 향한 역사적인 도약이 될 것”이라는 환영의 메시지를 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어 “이란의 대량학살 정권에 맞선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군사 작전, 그리고 이스라엘이 이란의 ‘테러 축’을 분쇄한 성과들은 평화의 반경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을 창출했다”고 강조했다.
사우디는 팔레스타인의 독립 국가 건립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특히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하자, 이스라엘과의 수교 논의를 사실상 접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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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축 없다”지만…“자체 농축 열어준 협정”
트럼프 대통령은 또 사우디의 우라늄 재처리와 관련 “민간 원자력 협정이고 (핵)물질 농축은 없을 것”이라며 “이란과 UAE 등이 이미 보유한 것과 같은 비(非)군사적 용도에만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민간용 비농축 원자력 시설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미국 언론들은 “농축은 없다”고 단언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당국자들의 설명과 다르다”며 이견을 제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익명의 당국자를 인용해 “미국과 사우디는 핵연료 생산의 경제성에 관한 공동 연구를 (2년 간)실시한 뒤 사우디가 자국 영토에서 우라늄을 농축하거나 플루토늄을 재처리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협정의 특징”이라고 보도했다.
CNN도 “사우디가 민간 원자로용 연료를 자체적으로 농축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2009년 UAE가 미국과 ‘골드 스탠더드’ 핵 협력 협정을 체결했을 때처럼,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추가 의정서라는 표준 협정에 서명할 의무가 없다는 점이 주목된다”고 전했다. UAE가 수용했던 골드 스탠더드는 자체 핵연료 생산을 포기하는 내용을 담고 있고, 추가 의정서는 미신고 시설을 포함한 해당 국가 전체의 의심 장소를 불시에 사찰하는 내용이다.
“한국에 대한 이중잣대…동맹 균열의 씨앗”
NYT는 특히 “사우디가 자국 영토에서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는 길로 이어질 수 있는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워싱턴은 서울로부터 ‘왜 사우디는 되고 우리는 안 되는가’라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을 촉발했다”라고 지적했다.
NYT는 한국의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 엄격한 안전조치 수용, 26기의 원자로 가동 경험을 부각한 뒤 “한국은 오랜 기간 미국과 우라늄 농축 권리를 놓고 협상해왔는데, 아직 원전조차 건립하지 않은 사우디가 잠재적 농축 권한을 확보한 것은 이중잣대”라고 평가했다.

한국은 지난해 11월 발표된 한·미 정상회담 공동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를 통해 “미국은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정치적 합의를 끌어냈다. 그러나 관련 협의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NYT는 이와 관련 “이번 협정은 한국과 워싱턴 간 (원자력) 협상 진전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만약 워싱턴이 계속 서울의 요구를 무시할 경우 70년 된 동맹 관계에 깊은 균열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워싱턴=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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