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집단학살, 기후정의, 노학연대... 한 활동가의 문제의식
[기자말]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공익활동가의 지역·영역·세대를 잇는 사회적 지지와 연대의 플랫폼, 2026 공익활동가주간과 함께합니다. 공익활동, 캠페인의 성과보다 그 일을 한 활동가 개인의 이야기에 시선을 맞추는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을 직접 만나 이들의 일과 삶을 기록합니다. <기자말>
[정하나]
6월 5일 오후 3시, 대흥역 환대커피워크 카페에서 차송현 활동가를 만났다. 아직 7월도 오지 않았는데, 그날의 날씨는 꽤 뜨거웠다. 더운 날씨와는 별개로, 다양한 인권 의제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는 한 활동가를 만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설렜다.
그녀의 이야기가 나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까. 나의 열정에 또 다른 불을 지펴줄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품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답은 조금 분명해졌다.
차송현 활동가의 이야기는 내 안에 작은 불씨를 남겼고, 나 역시 내가 활동하는 현장에서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어준 차송현 활동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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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월 5일 인터뷰 현장에서 만난 차송현 활동가 |
| ⓒ 정하나 |
"안녕하세요. 저는 서강대학교 인권실천모임 '노고지리'에서 활동을 하고 있고요. 24년 1학기부터 노고지리 활동을 했고 그때가 제가 사회운동을 처음 시작한 때라고 보시면 돼요. 그 외에는 학생사회를 바꾸는 활동가 네트워크 작당모의라는 대학생 활동가 모임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현재 활동하고 계신 곳은 어떤 곳인가요? '노고지리'와 작당모의 단체를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강대학교 노고지리는 2022년에 만들어졌는데요. 노고지리에서 하는 활동은 크게는 두 가지예요. 학교 안에서 하는 활동과 학교 밖에서 연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학교 안에서는 정기적으로는 학기 중에 세미나를 하고, 방학 때도 방중 세미나를 해요.
세미나에서는 페미니즘, 장애인권, 기후위기 등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는 책을 읽고 모임을 하고, 그 외에도 구술기록을 낭독해 본다거나 도시 개발에 관한 책을 읽고 산책을 해본다거나, 문화 활동도 같이하고 있고요. 정기 활동은 크게 학술 활동이랑 문화 활동, 이렇게 구분해서 격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내 청소노동자들이랑 연대하는 활동도 해요.
노학연대(노동자와 학생들의 연대) 활동은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했는데, 그때 식대 인상 관련해서 투쟁이 있었어요. 서강대에는 여성노조랑 공공운수노조가 있는데, 곤자가 건물이 공공운수노조고 나머지 대부분의 건물들은 여성노조예요.
공공운수노조 서강대 분회에서 식대 인상 투쟁을 하셔서 곤자가 앞에서 노고지리도 선전전을 같이 했어요. 시험 기간 학생들에게 밤양갱을 나눠주면서 서명을 받는다거나 이런 활동을 같이 했고요. 다음 학기에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서 원청이 교섭에 나오라고 요구하는 투쟁이 있을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거 관련해서 조금 고민이 있습니다.
그 외에는 격주로 열리는 팔레스타인 연대하는 집회에 간다거나, 9월 기후정의행진, 퀴어퍼레이드 이런 연대활동도 해요. 최근에 만들어진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캠퍼스 저항행동 '팔레트'라는 것이 있어요.
올해 학기 초 취업박람회 때 이스라엘과 협력을 하는 무기 기업들이 취업박람회에 와가지고 그거를 규탄하는 선전전을 했었어요. '팔레트'는 취업박람회 저항행동을 계기로 만들어진 연대체인데, 그 연대체에서도 같이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활동가라는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에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시작하셨나요?
"전 처음에 '활동가를 해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니었어요. 대학원 입학을 할 때 '나는 무조건 연구를 할 거고, 연구자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근데 연구 주제가 사회운동이었으니까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고 어쩌다 보니 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처음에 저는 오히려 활동가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겠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제가 바깥에서 봤을 때 활동가라는 직업은 많은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판단을 하고 어떤 의견을 갖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어요.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는데 판단들을 많이 내려야 하고, 또 어떤 정치적인 입장을 내야 되는 거니까 저에게는 조금 맞지 않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입장을 정하는 게 어렵다고 느꼈던 이유는 잘 몰랐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어떤 주제에 대해 잘 모르면 그거에 대한 내 입장을 갖기가 어렵잖아요. 조금 알면 내 생각을 갖기가 쉬워지는 것 같고. 사실 어떤 조직 안에서도 입장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노고지리도 입장이 되게 다른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뭐, 메타적으로 누가 막 엄청 옳거나 엄청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내가 내 관점에서 봤을 때는 '이러한 선택이 전략적으로든 전술적으로든 옳은 것 같다' 이 정도의 약간 유보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2막. 현장에서 마주한 질문들
- 현재 활동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바라보고 있는 문제의식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제가 속하거나 제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주변의 사회운동 집단들이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갖는지가 저에게는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 같아요. 사회운동이라는 게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보니까, 내가 어떤 연결망 속에 있는지가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있는 이 동네에서는 팔레스타인 집단학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요. 지금 제노사이드가 일어나고 있는데, 세계가 너무 잠잠하고 그런 것이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져요.
처음에 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알았을 때는 일상생활에서도 굉장히 이상한 느낌, 감정들을 크게 많이 느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시를 쓰는데 그때 그런 감정들에 대해서 많이 썼던 것 같거든요. 도시가 폐허가 되고, 아이들이 물을 길으러 갔다가 죽고, 그런 장면이 지금 전 세계적으로 실시간 생중계되고 있는데, 내가 있는 도시는 너무나 깨끗하고 안전하고, 내가 여기서 죽을 위험도 전혀 없고. 그런 것들이 너무 이상하다고, 부당하다고 느껴졌어요."
- 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개인적인 경험이나 현장에서의 만남이 영향을 주었는지도 궁금합니다.
"개인적인 계기나 맥락이 있는 것 같아요.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꽤 오래전부터 죽음을 진짜 두려워했거든요. 건강염려증이 심해서 별 것 아닌 증상에도 병원을 갔던 적도 있었고요. 강남이 침수되었을 때 주차장에서 많은 사람이 숨졌잖아요.
그런데 그 이후로 주차장을 지날 때마다 몇 개월 동안 그 사람들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얼굴도 알지 못하고 이름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지만요. 대중교통을 타고 다리를 건널 때나 그럴 때도 항상, 실제로 무너질까 봐 걱정이 되고, 물속에 빠질 때 어떤 생각을 할지, 너무 억울할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을 많이 했고요. 죽음이 저에게 중요한 주제였는데, 그런 게 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죽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아직도 기억나는 일이 있어요. 성함은 기억나지 않는데, 2022년 SPC 계열 공장에서 샌드위치 소스를 배합하던 저와 비슷한 또래의 노동자가 사망한 사고가 있었어요. 그때 방에서 너무 무력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져서 그 사실이 너무 절망스러웠어요.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도 그때의 저의 무력함에 대해서 많이 떠올렸어요. 더 이상 방에서 혼자 무력하게 있지 않아도 되고, 적어도 이걸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무언가를 도모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력감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 같아요."
- 활동을 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장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왜 그 순간이 오래 남아 있나요?
"일단 제일 먼저 생각난 건 2025년 초, 윤석열 탄핵을 반대하는 보수 성향 집회가 대학가에서 열리던 시기가 있었어요. 탄핵에 반대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극우 유튜버들이 학교마다 갔거든요. 이에 대응하는 맞불집회 성격의, 파면에 찬성하는 집회와 기자회견도 여러 학교에서 열렸는데, 서강대에서도 했어요.
탄핵 반대와 찬성 집회가 열린 양상이 학교마다 달랐는데, 어떤 학교는 극우 유튜버가 성능이 좋은 스피커를 가지고 와서 사람들이 계속 엄청난 소음을 들으면서 코앞에서 대치하고 서로 욕하는 상황도 있었거든요.
서강대는 그렇진 않았고, 후문에서 극우집회를 하고 저희는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했어요. 기자분들도 꽤 많이 오셨는데요. 근데 그게 기억에 남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노고지리 구성원들의 성격이나 특성이 많이 담겨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기자회견을 전날에 준비를 했어요. 오전에 극우집회를 후문에서 한다는 걸 보고 대응이 필요할 것 같아서 준비를 시작했는데, 홍보물을 만들고 발언자를 섭외하는 등 모든 게 전날 준비가 되었어요. 노고지리의 한 친구는 '캄캄밴드'라는 브라스 밴드를 하는데, 그 친구랑 다른 기타 치는 친구가 와서 노래도 불렀어요.
정확히 어떤 지점인지는 모르겠지만 발언에 호응을 해주는 방식이라든가, 하다못해 피켓 디자인, 그날의 모든 분위기에 노고지리 친구들의 개성이 많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 설명이 안 되는데, 그래서 저에게 의미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학생운동 단체에서 좋아하는 순간 중 하나는, 어떻게 보면 아마추어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금 서툴고 또 엄청 좋아 보이진 않더라도, 학생들 각자 진심이나 진실한 마음, 아니면 개성이 드러나는 순간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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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송현 활동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활동 현장 |
| ⓒ 차송현 제공 |
- 스스로를 어떤 활동가라고 생각하는지, 또한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해보고 싶으신가요?
"제가 활동가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건, 활동가로서 역량이나 이런 게 부족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고, 활동은 그냥 하는 거고. 직장은 아니다 보니까 뭔가 직업처럼 생각 들지 않고, 차라리 일상의 연장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저는 노조나 단체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활동은 계속하고 싶어요. 여러 가지 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기후위기, 기후정의와 관련해서 풀뿌리 조직화를 제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해요. 지역 기반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지금 기후정의를 다루는 풀뿌리 조직들이 아주 활발한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런 걸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사실 대학에 있을 때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제가 파주 사는데, 파주 지역에도 사회운동이 있어요. 파주를 기반으로 그런 걸 해봐야 하나? 라는 고민이 있고,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고요.
제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문제인데, 저는 문예지도 너무 만들고 싶어요. 1970~1980년대에는 무크지 운동이라든가, 제도 밖에서 문학을 하고, 시를 쓰든 비평을 쓰든 소설을 쓰든 그걸 묶어서 잡지 형태로 발간하는 등의 시도가 많았는데, 요즘도 독립잡지가 많긴 하지만 뭔가 사회운동과 긴밀한 연관 속에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문학의 흐름은 없는 것 같아서요.
저항시 클럽도 했던 게 이런 맥락에서였는데. 아무튼 계엄 이후 저항시클럽을 만들어서 파면 투쟁을 하는 동안 활동을 했었어요. 모임도 몇 번 했었거든요. 송경동 시인을 초청해서 간담회도 하고, 그때 사람들도 꽤 모이기도 했었어요.
6.13 정의로운 전환 노동자·시민 대행진 전에는 발전노동자 분들을 초청을 해서 간담회 하고 같이 시를 썼거든요. 재미있었어요. 그 밖에는 학생운동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 활동을 이어가며 마음에 두고 있는 롤모델이나 존경하는 사람이 있나요? 있다면 어떤 점에서 영향을 받으셨나요?
"시몬 베유가 노동운동가이면서 글도 쓰고, 스페인내전에도 참가했잖아요. 글을 쓰면서 활동을 하는 여러 방법들을 찾고 있는 것 같아요. 돈도 벌어야 하고, 살아야 하고, 글도 써야 하고. 그거를 다 할 수 있는 방법들이 무엇일지?
또 최근에 인상 깊었던 사람이 있는데, 광주에서 들불야학을 만든 박기순씨입니다. 전남대에서 공부하다가 들불야학을 만드셨어요. 들불야학에서 너무 좋았던 건 학생과 선생이라고 부르지 않고 강학과 학강이라고 불렀다는 거예요. 가르치면서 배우는 사람, 배우면서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고 해요.
박기순 씨는 연탄가스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박용준 열사는 광주 5·18민중항쟁 당시 투사회보 제작 등을 통해 광주의 현실을 알리다가 돌아가셨다고 해요. 박용준 열사 관련해서 5·18 당시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와 구호, 그때의 문화에 관한 연구도 살펴봤어요. 박용준 열사처럼 투쟁의 현장에서 문화예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늘 영감을 받는 것 같아요."
4막. 독자에게 전하는 이야기
-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파괴되는 열대우림이나, 아니면 옷을 태워서 벽돌을 만드는 가마, 캄보디아에서 벽돌을 굽는 사람들이나,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가 돌아가신 김용균 노동자나 김충현 노동자, 다양한 존재들이 사실 우리랑 멀리 있잖아요.
김충현 노동자는 태안에서 돌아가신 거지만, 서울에 있는 나와는 굉장히 거리가 먼 거잖아요. 멀리 있는 존재들이지만 사실은 연관되어 있고, 나와 전혀 무관하지 않은 어떤 삶들에 대해 생각을 하려면, 계속 가까이 있으면서 이야기를 듣고, 나와의 거리를 의식적으로 좁히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팔레스타인 가자도 우리와 멀리 있지만요.
얼마 전에 낭독회를 했었는데요. 팔레스타인 시인의 시와 소설을 읽거나, 거기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하면 우리가 도무지 외면할 수 없게 되잖아요. 그런 이야기들을 가까이하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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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의 변화에는 늘 공익활동가가 있습니다. '공익활동가주간'은 공익활동가들에 대한 존중과 지지를 바탕으로 사회적 인정 문화를 만들기 위한 전국 단위의 행사입니다. 2026년에는 6월 29일부터 7월 3일까지 일주일 동안 전국 곳곳에서 공익활동가를 응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연대의 장이 열렸습니다. |
| ⓒ 공익활동가주간추진위원회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변화를만드는사람들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 환경활동가. 사회학을 전공하였고, 농촌사회학과 사회자본을 연구했다. 현재는 환경 NGO에서 산불피해지 복원 활동을 하며, 영화 <우드잡>의 주인공처럼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는 숲지킴이로 살아가고 있다. 다음 세대에게 건강한 숲을 남기기 위해, 오늘도 현장에서 숲의 회복을 함께 만들어가며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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