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스택플레이션⑧] 대작 돌리려면 업그레이드?…게이밍 PC 견적도 흔들린다
AI가 불러온 메모리와 저장매체 가격 상승은 단순 부품 가격 문제가 아니라 ICT 섹터의 비용 인플레이션을 불러오고 있다. AI 데이터센터가 고성능 메모리와 SSD 공급을 흡수하면서 하드웨어 가격, 클라우드 원가, 소프트웨어 운영비, 기업 IT예산 집행에 연쇄 압박이 생기고 있는 상황이다. <디지털데일리>는 메모리 가격 상승이 불러온 기업 IT투자 양상의 변화에 대해 점검해본다 <편집자>

[디지털데일리 이학범기자] 인공지능(AI) 서버 수요 확대로 메모리와 저장장치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게이밍 PC 견적도 흔들리고 있다. 최신 게임을 안정적으로 구동하려면 그래픽카드뿐 아니라 램, CPU, SSD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하지만, 관련 부품 가격 상승이 조립 PC 비용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PC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이 발표한 지난 6월 기준 이용자 하드웨어 설문에 따르면 이용자들의 주류 환경은 여전히 중급형 사양에 머물러 있다. 시스템 램은 16GB가 41.57%로 가장 많았고, 32GB가 36.79%로 뒤를 이었다. 주 디스플레이 해상도는 1920x1080이 51.12%로 절반을 넘었다. 2560x1440은 21.44%, 3840x2160은 4.95%에 그쳤다.
그래픽카드 역시 최고 사양보다 중급형 제품 비중이 높다. 앞선 설문에서 지포스 RTX 4060 랩톱 GPU는 3.81%, RTX 3060이 3.73%, RTX 4060은 3.46%로 상위권에 자리했다. 반면 1440p 이상 고해상도 환경에서 자주 거론되는 RTX 3080, RTX 4070 이상 제품군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는 PC 게임 이용자 다수가 최신 대작을 최고 사양으로 즐기기보다 권장 설정 또는 그 이하의 환경에서 그래픽 옵션을 조정하며 플레이하는 구조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신 게임들이 1440p, 4K 고해상도 텍스처 등을 앞세우고 있지만 실제 이용자 환경은 아직 풀HD 중심에 머물러 있다.
최근 공개된 신작 PC 사양을 보면 이 간극은 한층 뚜렷해진다. 유비소프트가 9일 출시한 '어쌔신크리드 블랙플래그 리싱크드' PC 권장 사양은 중간 설정, 60프레임 기준 인텔 코어 i5-10600K 또는 AMD 라이젠5 3600, 지포스 RTX 3060 12GB 또는 라데온 RX 6600XT 8GB, 램 16GB, SSD 65GB다. 높음 설정, 60프레임으로 올라가면 지포스 RTX 3080 10GB 또는 라데온 RX 6800 XT 16GB가 필요하다.

아이오인터랙티브의 '007 퍼스트 라이트'도 비슷한 흐름을 보여준다. 이 게임의 최저 사양은 1080p 30프레임 기준 인텔 코어 i5-9500K 또는 AMD 라이젠5 3500, 지포스 GTX 1660 또는 라데온 RX 5700, 램 16GB, VRAM 8GB, 저장공간 80GB다. 권장 사양은 1080p 60프레임 기준 인텔 코어 i5-13500 또는 AMD 라이젠5 7600, 지포스 RTX 3060 Ti 또는 라데온 RX 6700 XT, 램 32GB, VRAM 12GB, 저장공간 80GB를 요구한다.
두 게임 모두 최저 사양만 놓고 보면 기존 중급형 PC에서도 접근 가능한 수준이다. 하지만 권장 사양이나 고해상도 환경으로 올라갈수록 그래픽카드, 메모리, VRAM, SSD 부담이 커진다. 과거 인기작의 리메이크든, 신규 대형 지식재산권(IP)이든 최신 PC 기준으로 돌아오는 순간 이용자에게 요구되는 기본선도 함께 올라가는 셈이다.
실제 견적 부담도 작지 않다. 9일 다나와 최저가 검색 기준으로 어쌔신크리드 블랙플래그 리싱크드의 1080p 권장 사양에 맞춰 PC를 구성할 경우 RTX 3060 12GB는 7월9일 기준 약 46만원 전후로 나온다. 지난해 7월 해당 제품은 약 38만원 수준이었다. 후속 세대 그래픽카드인 RTX 40·50 시리즈가 있음에도 오히려 가격이 상승했다.
울트라 설정으로 기준을 높이면 견적 부담은 더 커진다. 어쌔신크리드 블랙플래그 리싱크드를 4K 울트라 설정으로 즐기려면 지포스 RTX 4090 24GB 또는 라데온 RX 7900 XTX 24GB급 그래픽카드가 필요하다. RTX 4090은 단품 가격만 수백만원대에 형성돼 있어, CPU·메인보드·램·SSD 등을 포함한 본체 견적은 7월9일 기준 약 1000만원을 넘긴다.

물론 PC 견적은 이용자 선택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중고 그래픽카드를 쓰거나 기존 저장장치와 케이스를 재활용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반대로 브랜드 제품·고성능 쿨러·대용량 SSD·고주사율 모니터까지 고려하면 지출은 더 커진다. PC가 콘솔보다 선택지가 넓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만큼 이용자가 가격과 성능 사이에서 더 복잡한 계산을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램과 SSD 가격 상승은 견적 부담을 키우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조립 PC에서 가장 큰 가격 변수는 그래픽카드였지만 최근에는 메모리와 저장장치도 더 이상 저렴한 기본 부품으로만 보기 어려워졌다. 대작 게임 설치 용량이 커지고 SSD가 사실상 기본 요구 조건이 되면서 저장장치 확장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일반 디램(DRAM) 계약가격은 올해 2분기 전분기보다 58~63%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낸드플래시 계약가격도 같은 기간 70~75%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트렌드포스는 디램 공급사들이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제품으로 생산 능력을 재배분하고 있으며 낸드 생산 능력도 기업용 SSD에 더 많이 배정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 서버 수요가 늘면 HBM, 서버용 디램, 기업용 SSD 같은 고수익 제품에 생산 능력이 우선 배정된다. 이 과정에서 PC용 메모리와 소비자용 SSD 수급도 영향을 받는다. 결국 같은 예산으로 PC를 맞추더라도 램과 SSD 가격이 오르면 그래픽카드나 CPU에 쓸 수 있는 금액은 줄어든다.
결국 게이밍 PC는 여전히 가장 자유도가 높은 게임 플랫폼이지만 최근 가격 환경에서는 접근하기 쉬운 대안이라고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신 대작을 쾌적하게 즐기려면 권장 사양에 맞춘 그래픽카드와 충분한 램, SSD가 필요하다. 여기에 부품 가격 상승까지 겹치면 PC 견적은 이용자가 예상한 것보다 빠르게 불어날 수 있다.
스팀 통계는 PC 게이머 다수가 아직 풀HD와 중급형 그래픽카드 중심 환경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최신 대작의 권장 사양은 32GB 램, 12GB VRAM, SSD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올라가고 있다. 게이머가 매번 최신 부품을 살 수 없다면, 게임사에는 더 넓은 사양에서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최적화 역량이 요구된다. 비싼 하드웨어 시대, 게임업계 경쟁력은 그래픽 품질만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기기에서 쾌적하게 돌아가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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