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전세 끝나도 “못 나가”…버티기에 무너진 임대정책

문희철, 노유림 2026. 7. 22.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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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장기전세주택에 살고 있는) 노인을 억지로 밀어내고 젊은 사람들을 채우겠다는 서울시 정책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예요. 입주 시점에 중년이었던 나 같은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경제력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도 고려해 줘야죠. 지금으로선 나가기 어렵습니다.”

지난 16일 서울 강동구 강일리버파크 9단지에서 만난 김광현(70)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2009년 장기전세주택에 입주해 18년째 같은 집에서 거주 중인 임차인이다. 9단지에서만 13개 동 841세대 중 737세대가 김씨와 같은 장기전세주택 임차인이다.

장기전세주택은 서울시가 무주택자의 주거 안정을 위해 오세훈 서울시장이 2007년 5월 처음 도입한 제도다. 주변 전세 시세의 80% 이하의 보증금을 내면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해 최장 20년간 거주가 가능한 공공임대다.

정근영 디자이너

장기전세주택 최초 입주자의 최대 거주기간 만료 시점(2027년)이 다가오면서 거주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계속 살게 해 달라”는 입주민, 추가 혜택 제공은 어렵다는 서울시, 입주를 희망하는 젊은 세대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다. 당장 2027년부터 송파구 장지지구 등에서 310명이 퇴거해야 하고, 2028년(682명)→2029년(1747명)→2030년(2452명)→2031년(4170명) 등 시간이 갈수록 장기전세주택 만기 도래 세대는 늘어난다.

김영희 디자이너

강동구 강일리버파크와 인근 고덕리앤파크 입주민들은 ‘강일동 장기전세 시프트 대책위원회(이하 강일동위원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 다른 장기전세주택단지인 송파구 송파파인타운 임차인대표회의는 지난 11일 향후 대책을 위한 모임을 가졌다.

강일리버파크 9단지에 사는 임차인 임양환(74)씨는 “111㎡(33평) 안팎 주택에 보증금 2억~3억원 수준에 들어온 사람이 9단지 주민의 대부분”이라며 “인근 아파트 전세 시세는 저렴한 곳도 6억~7억원인데 이제 와서 나가라고 하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어디로 가냐”고 말했다. 그는 “단계적으로 적정 가격에 소유권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강일동위원회 관계자는 “장기전세 수백 가구가 한꺼번에 퇴거해 공실이 되면 단지가 슬럼화되고 실거래가가 급락할 위험도 크다”고 했다.

반면에 이들과 같은 단지에 살지만 ‘영끌’해 아파트를 매수한 주민 입장은 다르다.


“많은 노인들 한번에 어디로” “신혼 등 청년에도 기회 줘야”


지난해 5월 강일리버파크 2단지 아파트를 매수·입주한 김모(35)씨는 “아파트 소유주 단톡방 여론은 장기전세주택 임차인 여론과 완전히 정반대라고 보면 된다”며 “장기전세 임차인들은 놀이터 개보수나 외벽 페인트칠 등 관리비가 오를 것 같은 안건마다 반대하는데, 차라리 이들이 떠나고 서울시 정책(미리내집)대로 신혼부부가 유입되면 단지가 활기를 띨 것”이라고 말했다. 이모(53)씨는 “장기전세주택 계약서 표지에 아예 ‘분양전환되지 않는 장기전세’라고 씌어 있는데도, 임차인들이 ‘서울시가 속였다’고 주장하면서 나가지 않으려는 건 억지”라며 장기전세 계약서 표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고덕리엔파크 3단지에 사는 매입 거주자 박모씨는 “장기전세주택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지금 임차인이 나가면 단지가 슬럼화되고 집값이 떨어진다는 주장은 이해가 안 된다”고 반박했다.

장기전세주택 입주자들은 최근 서울시가 추진하는 임대주택(미리내집)처럼 분양전환 기회를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시는 장기전세주택Ⅱ(미리내집)와 신혼부부에게 특화한 장기전세주택 입주자에게는 분양 전환 기회를 제공한다.

서울시는 임차인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퇴거한 주택을 주로 신혼부부 등 청년 세대에 공급해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겠다는 정책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김장열 서울시 임대주택과장은 “장기전세주택의 정책 목표가 최장 20년 안정적 거주 지원이었다면, 미리내집의 정책 목표는 출산율 제고다. 정책 목표가 달라서 분양 전환 여부도 다르다”고 말했다.

장기전세주택 입주자들은 분양이 어렵다면 20년이 지나도 임대 기간을 추가로 연장해 달라는 입장이다. 임차인 김광현씨는 “우리는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를 믿고 따른 사람들”이라며 “장기전세를 택한 사람들에게 같은 곳에서 계속 거주할 우선권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애초 계약 시점에 최대 20년까지만 거주할 수 있다고 명확히 규정했다”며 “20년이면 자산 형성의 기회를 제공했고, 저렴한 임대료로 삶의 질 증대 효과도 있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장기전세주택의 정책 목표가 자립을 준비할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지 평생 거주를 약속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김영옥 기자

서울시는 지금의 장기전세 임차인들에게 추가 혜택을 줄 경우 예상되는 젊은 세대의 반발도 우려하고 있다. 장기전세주택 거주자가 나가면 이곳을 ‘미리내집’ 형태로 무주택 신혼부부에게 임대할 계획이기 때문에 기존 장기전세주택 거주자의 계약을 연장하면 그만큼 미리내집2 공급 물량이 감소한다. 게다가 이후 만기가 돌아오는 임대주택도 줄줄이 계약 연장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김장열 임대주택과장은 “요즘 청년들은 공정·정의의 가치를 중시하는데, 장기전세주택을 특정인들이 독점해 젊은 세대의 기회가 박탈당하면 청년들이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며 “공유재인 공공임대주택이 특정 세대의 전유물이 되고, 저출산 해소 등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공주택’이라는 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길도 막힌다”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지난해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장기전세주택과 미리내집은 설계 자체가 다르다”며 “(20년 후 퇴거한다는)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 장기전세주택

「 무주택자의 주거 안정을 위해 주변 전세 시세의 80% 이하 보증금을 내면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해 최장 20년간 거주가 가능한 공공임대 제도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07년 처음 도입했다.

문희철·노유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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