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전 2만부 찍는 소설가 박상영 “모르는 자리에 깃발 꽂고 싶었다”

윤성민 2026. 7. 22. 00: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설가 박상영이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사직로의 한 북카페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권혁재 기자

박상영 작가는 자신을 “한심한 사람”(데뷔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중 ‘작가의 말’)이라고 소개한 때도 있었다. 지금 그렇게 볼 사람은 없다. 대표작 『대도시의 사랑법』은 최근 43쇄를 찍었고, 한국 대표 작가로 꼽혀 다음 달 중순엔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운영하는 국제창작프로그램(IWP)에 참가한다. 한강 작가도 참여했던 프로그램이다. 22일 출간하는 새 장편소설 『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는 사전예매 인기로 2만권을 미리 찍어뒀다.

등단 10년, 명실상부 스타 작가의 자리에서 박상영이 문득 떠올린 감정은 ‘욕망’이었다.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한 북카페에서 만난 그는 “살면서 내내 작가라도 되고 싶었는데, 내 소설이 20여 개국에 팔리고 영화·드라마로 만들어지고 국제문학상(부커상 등) 후보가 됐다”며 “꿈꿔왔던 모든 가짓수를 이뤘는데 행복하고 욕망이 충족됐느냐, 그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감정을 탐구해보고 싶었다”며 신작 『지푸라기…』를 “욕망에 대한 이야기”라고 요약했다.

소설은 자이니치(재일교포) 3세 마츠노 하나가 어머니 마츠노 사치코의 화재 피해 소식을 들으면서 시작한다. 사망 직전 어머니의 유언은 한국의 세일백화점 윤동주 회장을 찾아가라는 것. 하나는 기자 친구 맹준호와 함께 어머니와 윤동주의 관계를 밝혀나가는데, 드러나는 건 재벌가와 그 주변 인물들의 파국을 향하는 욕망이다.

박상영 작가는 22일 출간된 『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에서 미스터리 소설을 시도했다. 그는 "태어나서 가장 먼저 전작을 모두 읽은 작가가 애거서 크리스티"라고 했다. 권혁재 기자

박상영의 전작과 판이하다. 박상영은 “지겹다, 완전히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 모르는 자리에 깃발을 꽂아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품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박상영 하면 으레 떠오르는 퀴어, 동시대성, 청춘, ‘현실의 중력을 가볍게 튕겨내는 인물들’(강지희 문학평론가)이 이번 작품엔 없다. 시계열은 한국 현대사 70여년으로 넓혔다. 시대적 중력은 둔중하다. 사치코와 윤동주 관계에 동성애적 요소가 있지만, 단정하기엔 머뭇거려진다.

박상영의 전작은 자기연민과 유머라는 복식조가 ‘핑퐁’을 주고받는 이야기였다. 이번엔 미스터리와 플래시백(과거 장면)을 쌍두마차 삼아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다. 거기엔 인생 유전의 처연한 낙차나 오래 묵은 상처의 살기 어린 복수심도 어려있다. 1인칭 서술을 즐겨 써왔지만 이번엔 3인칭을 썼다. 전개는 빠르고, 농담은 사라졌고, 결말은 명확하다.

박상영은 “서술 방식의 변화가 분명히 있었다. 하드보일드한 문체는 의도했다. ‘이 소설엔 웃음과 따뜻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정이 있었다. 열린 결말을 싫어하는 트렌드도 반영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상영 작가는 "이번에는 정통적인 방법으로 시대를 보여주는 방식의 역사 미스터리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권혁재 기자

『지푸라기…』는 제 이름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어머니 사치코는 본명을 숨기고 살아가야 하는 자이니치다. 한국으로 돌아와선 잠시 위장을 위해 와타나베 마유미라는 가명을 쓴다. 와타나베(渡辺)는 한자 그대로 보면 경계를 건넌다는 뜻이다. 그 경계를 건너 그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송행자라는 본명을 쓴다. 행자(幸子), 즉 행복한 사람.

강요된 정체성과 위장된 정체성을 거쳐 본명에 가닿는 이 소설은 그래서 결국은 박상영 전작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2019년 “나는 이곳에 속해 있지 않다”는 감각에 관해 쓴 적이 있다. 이번 소설에도 그런 인식이 투영돼 있다. 박상영은 “모든 인물에게 소수성을 부여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는 감각에 의해 추동되는 인물들의 결핍과 욕망이 부딪혔을 때 어떤 소리를 내는지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의 한 장면.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집 속 단편 '재희'를 토대로 이언희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지푸라기…』는 이미 영상화 판권의 퍼스트룩(우선협상권)이 팔렸다. 박상영은 ‘파친코’나 ‘쇼군’처럼 시대극 시리즈로 만들어지길 바랐다. 그는 “소설 분량 때문에 못 쓴 얘기가 많다”고 했다. 다음 달부턴 창작과비평 온라인에 장편소설 ‘여름 복숭아 파티’ 연재를 시작한다. 『대도시의 사랑법』 속 단편 ‘재희’의 어두운 버전 스핀오프(번외) 이야기라고 한다.

「 알림: 『지푸라기…』 영상화 판권의 퍼스트룩 계약과 관련해 제작사 측은 21일 최종적으로 영상화 협상은 결렬됐다고 22일 알려왔습니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