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생 고득점 노리고 ‘사탐런’… 수험생 15만명 과학책 놨다
② 이공계 인재 양성 걸림돌 된 ‘문·이과 통합’

서울의 대형 학원 입시 컨설턴트 L씨가 최근 가장 많이 받는 요구는 “사회탐구(사탐) 과목 찍어 달라”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과학탐구(과탐)를 공부하다가 사탐으로 바꾼 수험생들로부터 사탐 9개 과목 중 응시 과목을 추천해 달라는 요구가 쏟아진다. 학습량이 적고 학력이 떨어지는 인원이 많아 점수 따기가 용이한 과목을 알려 달라는 것이다. 과탐을 포기하고 사탐으로 수험생이 쏠리는 이른바 ‘사탐런’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진짜 사탐 해도 될까’라고 주저하는 분위기였다면 올해는 ‘어떤 과목이 유리한가’로 완전히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L씨는 21일 “동료 자녀들도 수험생이 여럿 있는데 과탐에 가해지는 불이익이 너무 크다 보니 다들 바꾸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사탐런의 폐해는 입시 불확실성을 끌어올리고 사교육 부담을 가중하는 등의 입시 영역에만 그치지 않는다. 멀쩡하게 과학을 공부하던 ‘예비 과학자·공학자들’에게 물리·화학·생명공학·지구과학 교재에서 손을 떼도록 했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입시 제도가 우수 이공계 인재 양성이란 국가적 과제에 걸림돌로 작동한 것이다. 물론 교육 당국의 의도는 아니었다. 여러 변수가 복잡하게 맞물린 입시 제도의 특성과 철저히 수험생 유불리에 따라 움직이는 현장 논리를 간과한 ‘순진한’ 정책의 결과라는 지적이다.
수험생들은 사탐 9개, 과탐 8개로 구성된 수능 탐구영역에서 두 개까지 선택할 수 있다. 2022학년도에는 과탐 두 과목 응시 인원이 20만6550명으로 탐구영역 응시자의 47.7%였다. 사탐과 과탐 하나씩 고른 인원은 1만960명이었다. 과탐을 한 과목 이상 고른 인원이 절반이었다. 과탐 두 과목 응시자는 2023학년도 21만834명, 2024학년도 21만3628명으로 늘어나는 추세였다.

하지만 2025학년도 과탐 두 과목 응시자는 17만4649명으로 전체 응시자의 39%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치러진 2026학년도 수능에서는 10만8353명(22.9%)으로 4년 만에 반 토막 났다. 지난달 시행된 2027학년도 수능 6월 모의평가에서는 5만5450명(13.7%)으로 주저앉았다. 반면 사탐 두 과목 응시자는 지난해 수능에서 60%, 올해 6월 모의평가에서 69%로 치솟았다.
문제의 출발은 201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이과라는 낡은 틀에서 탈피해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창의성을 갖춘 인재를 키우자는 목소리가 거셌다. 이에 정부와 교육계는 문·이과 통합을 지향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만들었다. 이 교육과정과 연동한 수능이 2022학년도부터 시행한 ‘통합형 수능’이다.
통합 수능의 관건은 수학이었다. 2022학년도 이전에는 문·이과 수험생이 별도 시험을 치르고 성적도 따로 매겼다. 그러다 2022학년도부터 동일 점수 체계로 통합했다. 문·이과 수험생이 수학으로 직접 경쟁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수학 1등급을 이과가 독식했고, 이과 수험생들은 수학 경쟁력을 활용해 대학 랭킹을 올려 인문계열 학과로 진학하는 ‘문과 침공’을 감행했다. 주요 대학 이공계 학과의 경우 미적분과 기하, 과학탐구를 지원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인문계 학과에선 제한을 두지 않아 가능했다.
이후 공정성 논란과 문·이과 통합 취지가 퇴색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학 인문계열 학과도 비상이 걸렸다. 문과 침공으로 입학한 이공계 성향 학생들이 전공을 바꾸거나 반수(대학 재학 중 대입 재도전)를 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학문 기반이 흔들릴 수 있는 사안이었다.
교육부는 2025학년도부터 사탐 두 과목 응시자도 이공계열 학과에 지원할 수 있도록 대학들에 요구했다. 이에 140여개에 달하는 대학이 수능 선택과목 제한을 풀었다. 그러자 이과 수험생들이 학습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과탐을 내려놓고 사탐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사탐 선택으로 절약한 시간을 국어 등에 쓰는 게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수험생의 과탐 이탈은 탄력을 받았다. 과탐에 남으면 성적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커 과탐을 이탈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탐구 영역은 17개 과목으로 나뉘어 있어 국어·수학·영어보다 응시 인원이 적다 보니 응시 인원 변화에 등급과 백분위가 크게 출렁인다. 예컨대 지난해 6월 모의평가에서 생명과학Ⅰ을 선택해 2등급 이내를 받은 인원은 1만3374명이었다. 응시자가 감소한 올해 6월 모의평가에선 2등급 이내가 7156명에 불과했다. 또 과탐에 끝까지 남는 인원은 해당 과목에 자신이 있는 수험생일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고수’들과 경쟁하는 부담이 증폭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사탐런 최대 피해자는 과학을 좋아하는 학생”이라며 “과탐을 고수한 학생은 등급과 백분위에서 손해를 봐 원하는 대학에 가기 어렵고, 사탐으로 넘어간 학생도 생소한 공부로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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