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딱 500명만 볼 수 있는 만년설, 그 앞에서 먹은 것

김종섭 2026. 7. 2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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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프리 호수로 떠난 캐나다 당일 여행... 집에서 싸간 김밥과 함께한 산행, 어느 요리보다 특별합니다

[김종섭 기자]

어떤 여행지는 한 번 방문했는데 여운 없이 지워지는 곳이 있다. 반면, 어떤 곳은 가면 갈수록 더 깊은 매력에 빠져들게 되는 여행지가 있다.

우리 부부에게 캐나다 BC주의 조프리 호수(Joffre Lakes)가 바로 그런 곳이다. 2016년 가족 여행을 시작으로 아내와 함께, 지인들과 함께, 그리고 지난 7월 20일(현지 시각) 다시 아내와 단둘이 이곳을 찾았다. 어느덧 네 번째 방문이 되었다. 주변에 그 흔한 맛집 하나 없지만, 오직 그 호수가 보여주는 압도적인 풍경 때문에 우리는 이번에도 기꺼이 그 굽이진 산길을 올라 호수를 찾았다.

새벽 5시, 일찍 눈을 떴다. 먼저 일어난 나는 이번 여행을 위해 전날 아내가 미리 준비해둔 재료로 김밥 4줄을 쌌다. 2줄은 가는 길에 아침으로, 나머지 2줄은 조프리 정상에서 먹기 위해서다.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6시 20분, 집을 나섰다. 중간에 맥도날드에 들러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사고, 차 안에서 직접 싼 김밥을 먹으며 여행의 기분을 냈다.
 조프리 호수 입구에서 걸어서 5분 만에 만나는 첫 번째 로워 호수
ⓒ 김종섭
캐나다의 고속도로는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휴게소 개념을 찾으려면 일단 고속도로 출구를 빠져나가 근처 동네의 패스트푸드점에서 간단한 햄버거 종류나 음료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톨게이트 개념은 없다. 고속도로 사용료가 없기 때문에 그냥 고속도로 출구 개념이다. 어쩌면 캐나다 여행은 '맛집 탐방'보다는 목적지 여행 그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변 시설이나 맛집 여부와 상관없이 조프리를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설렘이 차고 넘친다.

만년설의 선물

여름 휴가철인 요즘, 조프리 호수에 가기란 쉽지 않다. 환경 보호와 안전을 위해 하루 등산객을 500명으로 제한하고 있어 인터넷 예약이 필수인데, 정해진 날짜에 예약을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부부도 이틀 전, 매일 아침 7시 정각에 열리는 인터넷 예약을 어렵게 성공하여 이번 등산길에 오를 수 있었다.

집에서 조프리 호수 주차장까지는 약 210km.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99번 국도(시 투 스카이 하이웨이, Sea to Sky Highway)로 접어든다. 스쿼미시(Squamish)와 휘슬러(Whistler)를 지나 펨버튼(Pemberton) 마을을 만나면서 조프리로 향하는 마지막 30km 구간의 길이 심하게 굽어지고 경사가 급격히 높아진다. 엔진 소리가 거칠어질수록 대자연의 깊은 품속으로 올라가고 있다는 실감이 난다.

해발 약 1240m에 위치한 조프리 호수 주차장에 도착하니 9시 45분이다. 출발 후 3시간 15분이 걸렸다. 주차장이 비교적 비좁은 편인데, 아침 일찍 서두른 덕분에 입구 쪽에 다행히 주차할 수 있었다. 입구에서 직원에게 미리 준비한 QR코드를 보여주고 확인을 받은 뒤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세 개의 호수, 세 개의 세상

조프리 호수 산행은 올라갈수록 서로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세 개의 호수를 만나는 재미가 있다. 입구에서 5분 정도 평지 길을 걷다 보면, 첫 번째 호수(로워 조프리 호수, Lower Joffre Lake)를 만나게 된다. 해발 약 1250m에 위치한 이곳은 접근성이 좋아 누구나 쉽게 방문할 수 있다. 수면 위로 빽빽한 숲과 멀리 보이는 만년설의 반영이 평화롭게 펼쳐진다.

첫 번째 호수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가파른 산길이 시작된다. 약 3km의 숨 가쁜 고개를 오르면 두 번째 호수(미들 조프리 호수, Middle Joffre Lake)를 만나게 된다. 해발 약 1510m에 위치한 이곳은 흰 물감을 풀어놓은 듯 신비로운 에메랄드빛(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옥색) 수면을 자랑한다. 손을 담그면 얼음장처럼 차가워, 이 물이 산 정상의 빙하가 녹아 내려온 것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두 번째 호수에서 세 번째 호수로 향하는 1km 구간은 경사가 더욱 가팔라지지만, 눈과 귀를 사로잡는 특별한 풍경이 있다. 세 번째 호수에서 발원 하여 두 번째 호수로 거세게 쏟아져 내리는 계곡 폭포(할로웨이 폭포, Holloway Falls)를 지나게 된다.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힘차게 떨어지는 차가운 계곡물 소리가 이마에 맺힌 땀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 마주한 두 번째 미들 조프리 호수
ⓒ 김종섭
계곡 소리를 뒤로 하고 숨을 헐떡이며 마침내 최정상에 도달하면, 세 번째 호수(어퍼 조프리 호수, Upper Joffre Lake)가 나타난다. 해발 약 1564m. 이곳에서는 호수 바로 뒤편으로 해발 2400m가 넘는 마트리에 산(Mount Matier)의 웅장한 빙하와 만년설이 손에 잡힐 듯 거대하게 서 있다. 압도적인 대자연 앞에 서면 절로 경외감이 든다.

우리는 세 번째 호수 정상에 자리를 잡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 준비한 김밥을 꺼냈다. 호수와 만년설을 바라보면서 아내와 함께 먹는 김밥 맛은 세상 그 어떤 고급 요리보다 특별했다. 하지만 하산길은 올라올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호수를 빨리 만나고 싶은 열정에 가파른 산길도 단숨에 치고 올랐던 상행길과 달리, 내려가는 길은 이상하게도 훨씬 더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이미 목표했던 호수를 모두 가슴에 담았다는 안도감과 성취 뒤에 찾아오는 편안함 때문이었을까. 무릎에 가해지는 묵직한 하중과 함께 하산길의 시간은 서두름 없이 더디게 흘렀다. 하산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도로변에는 구경거리가 넘쳐 났다. 시원한 계곡과 폭포,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키 휴양지 휘슬러(Whistler), 그리고 암벽 등반으로 유명한 스쿼미시(Squamish)까지.
 두 번째 호수와 세 번째 호수 사이에서 만나는 계곡 폭포
ⓒ 김종섭
감사하고 행복한 여정

예전에는 중간 중간 차를 세우고 전부 들렀다.이번에는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상까지 다녀오느라 이미 체력은 바닥이 났다. 집에 빨리 가서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만 굴뚝같았다. 세월 따라 달라진 체력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해야 했다. 우리는 가는 길에 팀홀튼에 들러 시원한 커피 한 잔으로 휴식을 취한 뒤, 곧장 집으로 핸들을 돌렸다.

도착하니 오후 6시가 조금 넘었다. 비록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조프리의 신비로운 물빛을 가슴에 품고 온 뿌듯한 하루였다. '젊고 힘 있을 때 부지런히 여행을 다녀야 한다'는 말을 이번 길에서 절실히 실감했다. 몸은 예전 같지 않아 중간 중간 들를 곳들을 생략해야 했지만, 우리 부부가 함께 발을 맞추어 이 거대한 산을 오르고 내려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한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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