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잡아라! 국산 RTS 쏟아지던 시절 [동아게임백과사전]
1998년 우리나라에 상륙한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는 하나의 인기 게임을 넘어 우리나라를 흔들어놓았습니다. 같은 해 12월 국내 판매량이 11만 장을 넘어섰고, 다음 해에는 118만 장을 돌파했습니다. 한국은 스타크래프트가 가장 많이 판매된 나라로 등극하기도 했으며, 지금까지 450만 장 이상 판매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스타크래프트 열풍과 함께 초고속 인터넷 보급이 한창이던 그 시절, 전국 곳곳에는 PC방이 생겼습니다. 프로게이머라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도 스타크래프트를 중심으로 형성됐습니다. 스타크래프트가 보여준 영향력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했습니다. 2026년인 지금까지도 그 영향력이 이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스타크래프트의 폭발적인 성공은 더 많은 국내 게임 개발사가 RTS(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개발에 뛰어들게 했습니다. 물론 앞서도 1995년 ‘워크래프트2’, ‘커맨드 앤 컨커’ 등이 열어젖힌 RTS 시장을 겨냥해 1996년 ‘충무공전’, 1997년 ‘임진록’, 1998년 1월 ‘삼국지 천명’ 등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의 성공은 RTS 신작 출시에 어마어마한 가속도를 더했습니다.
특히 서로 다른 세 종족, 일꾼을 통한 자원 채집, 건물 중심의 기술 발전, 인터넷 대전이라는 스타크래프트의 문법을 그대로 좇는 게임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아트록스’, ‘아마게돈’, ‘임팩트 오브 파워’, ‘바이탈 디바이스’ 등이 등장했으며, 이 게임들은 스타크래프트의 데드카피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먼저 조이맥스가 2000년 12월 출시한 ‘아트록스’는 당시 등장한 국산 스타크래프트 유사 게임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꼽혔습니다. 게임에는 인간에 가까운 호미니언, 기계 문명의 인텔리언, 생물형 종족 크리티스 등 세 종족이 등장했습니다. 호미니언은 테란, 인텔리언은 프로토스, 크리티스는 저그에 대응하는 종족으로 설명됐을 정도로 구성이 유사했습니다.
화면 구성과 종족 이미지, 유닛 역할 분담까지 스타크래프트를 떠올리게 했지만, 기술적인 편의 기능은 오히려 한발 앞선 부분도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국산 RTS 최초로 리플레이 기능을 제공했으며, 생산이 완료될 때 자원이 차감되는 예약 생산, 여러 생산 건물의 동시 선택, 두 자원인 뮤온과 쿼크의 상호 교환 등을 지원했습니다.
여기에 모든 종족에 동일한 위치의 단축키를 적용해 새로운 종족을 선택해도 조작법을 다시 외울 필요가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게임은 독일 등 해외 시장에도 진출해 제법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스타크래프트 대신 이 게임을 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밉스소프트웨어가 개발한 ‘아마게돈’은 만화가 이현세 화백의 동명 SF 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RTS입니다. 게임은 2001년 4월 출시됐고, 지구인과 이드, 엘카의 세 진영이 충돌하며 원작의 오혜성·케사로스·헤라가 각 진영을 대표하는 영웅으로 등장했습니다. 스타크래프트식 세 종족 경쟁 구도를 채택했지만, 인지도 높은 국산 만화 IP와 영웅 중심의 캠페인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 차별화 포인트였습니다.
게임보다 더 큰 화제를 모은 것은 유통 방식이었습니다. 밉스소프트웨어는 2년간 약 15억 원을 투입한 게임의 CD 100만 장을 2001년 4월부터 무료로 배포하는 초유의 결단을 내렸습니다. 싱글플레이와 IPX 대전은 무료로 제공하고, 네트워크 대전을 위한 서비스를 유료로 구축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패키지 판매 대신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수익을 내겠다는 구상이었습니다.
게임에는 무기 교환, 탄약, 인공강우 등 기존 게임에서 찾아보기 힘든 요소들도 있었지만, 출시 당시 초기 배포판에 문제가 있어 제대로 구동하지 못한 이용자가 많았습니다. 유료로 제공하는 네트워크 서비스도 제대로 접속하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게임은 신선한 도전으로만 기억되는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2001년 발매된 ‘임팩트 오브 파워’는 ‘삼국지 천명’과 미션팩 ‘손권의 야망’ 제작에 참여했던 개발진이 빅브레인을 설립해 만든 RTS입니다. 서기 2020년을 배경으로 지구 문명의 노블 어스, 생물형 종족 다크존, 외계 문명의 아트로스가 전쟁을 벌이는 구도를 채택했습니다.
게임은 쉬운 인터페이스와 완전히 한글화된 음성 브리핑 등이 강점이었고, 노블 어스 진영에 이순신 장군이 등장하는 등 한국적인 요소도 구현했습니다. 출시 후에는 이소프넷과 인터소프트가 주최하는 게임 리그까지 열리며 멀티플레이 시장 진입을 시도했습니다. 다만 스타크래프트와 너무 닮아 차별화 요소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네이션 오브 게임이 개발한 ‘바이탈 디바이스’는 2001년 9월 출시된 작품입니다. 우주나 미래 도시 대신 인간의 몸속을 전장으로 삼아 위, 간, 폐, 뇌 등의 기관에서 병원균과 전투를 벌이는 설정을 내세웠습니다. 생체 조직과 면역 체계를 RTS로 표현한다는 발상이 독특했던 게임입니다.
게임 시스템 측면에서는 유닛끼리 합체해 새로운 유닛을 만들어내는 기능도 도입했습니다. 세포 결합이라는 세계관 설정과 연결한 신선한 시도였습니다. 다만 게임은 기존 스타크래프트의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멀티플레이 지원도 원활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결국 스타크래프트의 아류작이라는 평가를 벗어나기는 힘들었습니다.
물론 이 시기에 스타크래프트 아류작만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색채를 더하거나 자신만의 특징을 살려낸 RTS도 출시돼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2000년 등장한 ‘임진록2’입니다. HQ팀이 1997년 출시한 전작 ‘임진록’은 조선과 일본을 선택해 임진왜란을 체험하는 역사 RTS였습니다. 조선을 바탕으로 구성한 임무는 서양 판타지와 우주전쟁 일색이던 RTS 시장에서 분명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임진록2’는 전작의 역사적 색채를 유지하면서 게임의 규모와 완성도를 크게 높였습니다. 조선과 일본에 명나라가 더해져 세 세력 체제가 완성됐고, 장수 중심의 영웅 시스템과 유닛 상성, 개선된 인공지능, 역사적 사건에 기반을 둔 미션 등이 준비됐습니다. 이순신, 권율, 사명대사 등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도 게임에 담았습니다.
게임은 국산 작품으로는 매우 드물게 패키지 10만 장, 염가판인 주얼판을 포함하면 20만 장 이상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 2001년 확장팩격 작품인 ‘임진록2+: 조선의 반격’은 조선이 일본 본토로 진격한다는 가상 역사까지 펼쳐 보였습니다. 당시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로 반일 감정이 커지던 시기와 맞물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이후 ‘임진록’을 온라인 게임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거상’을 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판타그램의 ‘킹덤 언더 파이어’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킹덤 언더 파이어’는 2000년 11월 출시된 판타지 RTS입니다. 인간과 엘프가 중심인 인간연합, 오크와 언데드가 속한 암흑동맹의 전쟁을 다뤘으며, 일반적인 기지 건설형 RTS 임무 사이에 영웅과 소수 병력을 조작하는 RPG 임무를 배치했습니다. 출시 당시 RTS와 RPG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게임은 당시 세계 3대 게임 전시회로 꼽히던 영국 ‘ECTS 2001’과 미국 ‘E3’에 출품돼 호평받았습니다. 14개 국어판으로 제작됐으며, 전 세계 32개국에 출시됐습니다. 출시 5개월 만에 판매량 40만 장을 넘어서며 100억 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당시 국산 패키지게임 가운데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성적이었습니다.
판타그램은 전용 네트워크 서비스 ‘워게이트’도 운영했으며, 이후 ‘킹덤 언더 파이어 골드’를 출시해 게임을 더욱 개선했습니다. 다소 거칠었던 RTS와 RPG의 결합은 2004년 엑스박스용 ‘킹덤 언더 파이어: 더 크루세이더스’가 탄생할 수 있는 토대가 됐습니다. 이후에도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게임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위자드소프트의 ‘쥬라기 원시전2’도 당시 국산 RTS 열풍을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시리즈의 시작은 1996년 출시된 ‘쥬라기 원시전’으로, 원시 부족과 공룡이 공존하는 ‘쥬라기섬’을 무대로 삼았습니다. 전투를 치른 유닛이 레벨을 올리거나 상위 단계로 성장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일반적인 자원 채집형 RTS와 다른 재미를 구현했습니다.
2001년 5월 출시된 ‘쥬라기 원시전2’는 약 3년의 개발 기간과 35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였습니다. 당시 기존 최고 개발비 기록으로 알려졌던 ‘킹덤 언더 파이어’의 약 30억 원을 넘어 국내 게임 가운데 가장 많은 개발비가 들어간 작품으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게임에는 원시인족과 엘프족, 티라노족, 데몬족 등 네 종족이 등장했으며, 각 종족이 서로 다른 무기와 전략으로 쥬라기섬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격돌하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최대 8명이 참여하는 멀티플레이와 인터넷 대전을 지원했습니다. 게임은 출시 하루 만에 초도 물량 3만 장이 모두 소진되고, 한 달 만에 판매량 5만 장을 돌파하는 위력을 보여줬습니다.

엘엔케이로직코리아의 ‘거울전쟁: 악령군’도 스타크래프트 아류작이 쏟아지던 시기에 독창적인 시스템으로 주목받은 국산 RTS입니다. 2000년 9월 출시된 이 작품은 남택원 엘엔케이로직코리아 대표가 직접 집필한 동명의 판타지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됐습니다.
게임은 혼돈에 빠진 패로힐 대륙을 무대로 해방부대와 흑마술파, 악령군 등 세 진영이 대립하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기존 게임들과 가장 큰 차별점은 건설과 자원 채집 방식이었습니다. ‘거울전쟁: 악령군’은 필드 곳곳에 이미 존재하는 건물을 유닛으로 점령하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점령한 건물에서는 자원과 유닛이 생산되는 방식 이었습니다.
유닛의 성장과 전직, 다양한 마법도 게임의 특징이었습니다. 일반 유닛도 전투를 거치며 레벨을 올릴 수 있었고, RPG에 가까운 캐릭터 성장과 판타지 마법을 RTS 전투에 결합했습니다. 당연히 온라인 멀티플레이도 지원했습니다. 후속작인 ‘거울전쟁 어드밴스드: 은의 여인’도 출시 됐고, 2012년 온라인 슈팅 RPG ‘거울전쟁: 신성부활’로 장르를 변경해 부활 하기도 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2000년 등장한 ‘삼국지 천명2’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삼국지 천명’은 1998년 1월 출시된 작품으로, 고우영 화백의 만화 ‘삼국지’를 원작으로 한 RTS라는 점에서 관심을 받았습니다. 삼국지 인물을 등장시키면서도 시대 배경과 장비를 미래적인 SF 세계로 바꿔 색다른 재미를 전했습니다.
후속작인 ‘삼국지 천명2’는 첨단 기술 문명의 유비군, 고대 중국풍의 조조군, 중세 판타지풍의 손권군 등 세 진영을 뚜렷하게 구분했습니다. 게임 방식도 ‘커맨드 앤 컨커’에 가까웠던 1편보다 스타크래프트의 문법에 가까운 방향으로 변화했습니다. 여기에 강력한 영웅 유닛과 육성 요소를 준비했고 온라인 대전도 지원했습니다. ‘삼국지 천명’ 시리즈는 2001년 기준 세 작품을 합쳐 약 1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국산 삼국지 게임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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