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노원구 부동산에 12시간 있었다, 30대가 계속 왔다
노원구 부동산 12시간 체험기

16일 오전 7시30분 서울 노원구 미성합동공인중개사 사무소 앞. 김우정 미성공인중개사 대표는 불을 켜고 분주히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한다. 이곳은 최근 30대 매수율이 높았던 ‘미미삼’(미성·미륭·삼호3차) 단지의 부동산 거래를 가장 많이 중개한 곳이다. 기자는 이 부동산 사무실에서 12시간 동안 머물며 30대들이 몰려드는 현장을 포착할 수 있었다. 저마다의 사정은 달랐지만, 불안감만큼은 공통적으로 읽혔다.

“사장님 저 미미삼 다시 꼭 올게요.” 오전 10시, 30대 남성 A가 손을 꽉 쥐고 이같은 다짐을 하며 부동산을 나섰다. 2년 동안 미미삼에서 전세를 살던 A는 만기가 되자 연장을 고민하다 최근 인근 중계동 한 아파트 매수를 결심했다. 출산으로 신생아 특례대출을 받을 수 있었고, 지금이 아니면 매수 기회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늘은 A가 전세를 빼는 날이다.
A는 사실 2년 전부터 미미삼 매수를 고민했었다. “진짜 그때 미미삼에 오려고 했는데 고민하다 보니 2년 만에 3억이 넘게 올랐네요.” A가 씁쓸하게 웃었다. 이미 오를 대로 올라버린 상황에 A는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중계동 아파트도 A의 계약 직후 1억원이 올랐지만, A는 2년 전 미미삼 매수를 놓친 것을 여전히 후회하고 있다. A가 나간 자리에는 또 다른 30대 부부가 2년 전보다 7000만원 오른 가격에 전세로 들어온다.

A는 서류 업무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부동산을 떠나지 못하고 김 대표와 이야기를 나눴다. “제가 전세 들어가던 비슷한 시점에 성동구 들어간 친구는 9억에서 17억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세상 얘기 같기도 하네요. 저도 늦었지만 잘 샀다고 생각해요.” 김 대표가 답했다. “직장에서 이런 얘기만 들으면 일할 맛이 나겠나.”
떠나는 A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김 대표가 말했다. “30대들이 대부분 자신이 사려고 할 때 최고점에 사는 것 같아 망설이는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눈 깜짝하는 사이 1억이 올라서 나중에 후회하며 힘들어해요.”

오전 11시, 30대 초반 B가 서류 뭉치를 한 손에 든 채 미성 부동산에 들어왔다. 이날은 B의 잔금 처리 날. “지금 시기가 아니면 집을 구하기가 더 힘들어질 것 같아 빠르게 결정했어요” 서울 서초동이 본가인 B는 결혼을 앞두고 지난해 말부터 집을 알아봤지만,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불안한 마음만 커졌다.
“전월세 계약서만 보다가 제 집을 계약하니 기분이 남다르긴 한데, 오히려 평범한 느낌이에요”. B가 마지막 서류의 도장을 찍으며 말했다. ‘계약했을 때보다 1억이 올랐다’고 격려하는 김 대표의 말에도 B의 표정은 가볍지 않았다. “그게 제 돈인가요? 이제 빚 갚아야죠.” 내 집 마련의 기쁨보다 현실의 무게가 더 무거워 보였다.
김 대표와 함께 실장으로 일하는 1988년생 김준서 중개보조원이 30대들의 공격적인 매수세가 우려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부동산을 하고 있지만 대출을 너무 많이 당기는 사람들을 보면 걱정이 돼요. 그런데 내 옆사람도 앞사람도 다들 아무렇지 않게 하니까 안 할 수도 없어요. 요즘 오름세가 대출에 보수적인 사람들도 공격적으로 변하게 만드는 상황인 것 같아요.” 같은 30대인 김 실장 본인도 2년 전 6억원대였던 미미삼을 매수하지 않은 것을 내심 후회하고 있다.
낮 12시30분, 김 대표는 점심을 먹는 시간에도 손에서 전화기를 떼지 못했다. 김 대표가 꺼진 휴대전화를 보여주며 말했다. “오전에 휴대전화를 100% 충전해와도 점심시간만 되면 배터리가 다 나가요. 요즘 하루에 150~200건 정도 통화를 해요.” 오전에만 손님이 10명 다녀갔다.

오후 2시, 30대 여성과 60대 여성이 설렘 반 기대 반 표정으로 살짝 열린 1004호 문으로 들어간다. 신혼집 2차 계약금을 내고 집 상태를 보러 1988년생 C와 어머니다. 세입자가 나간 후 새로 계약한 집에 하자가 있는지 마지막으로 보러 왔다고 한다.
C는 지난해 매물 품귀 현상에 번갯불에 콩 볶듯 빠르게 이 집을 계약했다고 한다. “시세보다 싸게 나왔는데, 같이 집을 봤던 다른 커플들한테 뺏길까 싶어서 마음이 급해서 정말 나쁜 게 없으면 하자는 마음으로 ‘오케이’했어요. 지금 집을 처음 보는 것 같아요. 다시 제대로 보니 ‘몸테크’는 할 수 있는 수준이네요.” C는 어머니와 함께 군데군데 그을린 자국이 있는 바닥 사진을 찍고 물을 틀어보며 꼼꼼히 집 상태를 확인했다.

매수엔 성공했지만 대출이 걱정이다. “인테리어 어떻게 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출이 막힌다고 해서 그게 걱정이에요.” C는 4억원을 은행 대출로 해결하려 했지만 한도가 3억으로 줄어든다는 소식에 숨이 턱 막혔다. “새롭게 시작하는 젊은 사람들한테는 생애 최초 대출 같은 건 그대로 해줘야지 정부가 그것까지 조정하면 어떡해요. 평범한 서민들은 10년 이상 직장 생활 열심히 한 것밖에 없는데….” 어머니가 속상하다는 듯 말했다.
C도 전세를 알아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전세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 가파르게 집값이 올라 대출이 가능한 선에서 이번 기회에 사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 잔금을 치르려는 저희 같은 사람들은 당황스럽게 됐네요.”
부동산 시장에 진입하면서 C의 성향도 바뀌었다. “저는 원래 저축파였는데 주변에서 다들 ‘그것만 해선 안 된다’고 해서요. 오르는 물가를 감당하기도 어려워 어느새 실거주와 투자 목적을 같이 보게 됐네요.”
모녀는 더 이상의 ‘부동산 사다리 걷어차기’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장에서 열심히 돈 벌어서 잘 살고 싶은 사람도 있어요. 가혹하게 사다리를 걷어차지 말아 주세요. 이건 생존 문제에요.” C의 얘기를 듣던 어머니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애들이 더 살기가 빡빡해지고 있어요. 가슴이 참 답답하네요. 정부에서 30대 신혼부부를 위한 정책을 좀 잘해줬으면 좋겠어요.”

-지금 있는 거 말해보세요.
“6억 풀로 대출받고 주식, 회사대출, 신용대출, 퇴직금하면 7억 4500만원 정도 모아지고…”
-나머지는 어떻게 채우려고요?
“사장님 저 비트코인도 팔았어요. 과학인 공제도 받을 수 있고요.”
-진짜 영끌하셨네. 채무자는 누구로 할거에요?
“저희가 아무것도 몰라서 죄송해요. 그냥 저로 해주세요, 우리 집 가장!”
오후 4시, 김 대표 앞에 나란히 앉은 90년대생 신혼부부 D와 E가 자금 조달 계획을 줄줄 늘어놓고 있다. 대출을 더 많이 받기 위해 혼인신고도 아직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예비 신부 D가 주도적으로 자금 상담을 했다. 예비 신랑 E는 그런 D가 대견하다는 듯 어깨를 토닥였다.
이들 부부를 부동산 매수로 이끈 건 역시 ‘생존 본능’이다. “정부는 실거주를 강조하는데 요즘 집값이 실거주가 실거주가 아니에요. 영혼에 영혼까지 끌어와야 집을 살 수 있거든요. 저희도 공포감에 사게 됐어요. 집 알아볼 땐 8∼9억이었는데 지금 10억 됐어요”. 주변에 전세를 구한 사람들이 후회하고, 더 이상 미루면 경기도로 빠져야 할 것 같아 불안했다고 한다. 장위동에서 알아보던 집 가격이 가파르게 올라 빠르게 선택지에서 사라진 것도 한몫했다.

계약 후 사라질 줄 알았던 불안감은 부담감이 다시 채웠다. “너무 대출이 부담됩니다. DSR 45%가 말이 그렇지, 연봉의 절반을 빚 갚는 데 써야 하는데 피로감이 엄청나요. 그런데도 10억 넘어가면 아예 어떤 방법으로도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집을 계약했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직 집을 산 게 아니에요. 대출이 나와야 집을 사요. 은행 기금이 소진되고 있다는 뉴스가 계속 나오니까 불안하죠.”
상담을 끝낸 부부는 네 번째 손가락에 은색 반지를 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부동산을 나섰다. “저희가 원하는 게 큰 건 아니에요. 저희가 장거리 연애를 했거든요. 그냥 같이 살 집이 생기면 좋겠어요. 좀 더 가까이 함께 지낼 수 있는 거로도 좋은 거죠.” 어떤 불안감도 내 집 마련에 한 발짝 다가갔다는 기쁨, 앞으로 함께 꿈꿀 30대 부부의 소박한 행복까지 막을 순 없었다.

“오늘 처제 생일인데 매수 손님 온다고 해서 못 가고 있네, 하하”. 오후 6시30분, 김 대표가 말을 마치자마자 40대 여성 F가 사무실 문을 열고 나타났다. 아침부터 김 대표에게 전화해 ‘내일 매물 계약하러 가겠다’며 기다려달라고 당부했던 F가 하루를 앞당겨 등장한 것이다. 집주인이 물건을 내리거나, 다른 사람이 채갈까 봐 불안해서 퇴근하자마자 달려왔다고 한다.
그러나 F의 불안한 예상이 적중했다. 집주인은 갑자기 마음을 바꿔 매물을 거둬들였다. F가 호가보다 2000만원 더 올려서까지 사겠다고 했지만 집주인은 단호히 거절했다.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며 요즘 매물을 거둬들이는 집주인이 많다고 한다. 집값이 더 오를것 같다는 전망 때문이다. 김 대표가 부랴부랴 다른 부동산에 매물을 수소문했지만 마땅한 물건은 없었다.
F는 6년 전 동대문구에서 분양받은 아파트를 팔고 미미삼으로 이사 오기 위해 집을 알아보고 있는 상황이다. 집은 팔렸는데 원하는 단지의 매물은 없고 집값은 계속 오르고 있어 불안한 마음에 매일같이 부동산을 찾는다고 한다.
“저희가 딩크여서 여기서 몸테크도 가능할 것 같고. 대단지에서 살아보고 싶어서요. 그런데 저 왜 이렇게 조급할까요. 맨날 사장님 붙잡고 여기 달라붙어서 하소연만 하고.”
오후 8시, F는 1시간30분 동안 앉아 있다가 별 소득 없이 부동산을 나섰다. “사장님 물건 나오면 꼭 전화 주세요. 제 전화번호 아시죠? 저장됐는지 확인해볼래요. 저 여기 두 번 온 거 헛걸음하면 안돼요. 다른 사람한테 말고 저한테 꼭 알려주셔야 해요.” F는 나갈 때까지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다. 김 대표가 F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매물은 없고, 본인도 답답하니까 저렇게 할 수밖에 없죠.”

이날 부동산에는 30대 손님뿐 아니라 집주인과 다툰 일을 토로하러 온 세입자, 증여 상담을 하는 부모들, 재건축 상황을 문의하러 온 주민들, 시공사 관계자들까지 20명이 넘게 다녀갔다.
부동산 전쟁터의 최전선에서 매일을 사는 김 대표가 문을 닫으며 말했다. “힘들죠? 그런데 여기 부동산에 온 사람들은 모두가 다 힘들어요. 그 얘기 들어주고 최선의 물건을 찾아주려고 하는데 요즘 같은 불안한 상황에서는 쉽지가 않지. 기자님도 30대인 거 같은데 꼭 좋은 집 좋은 타이밍에 잘 사길 바라요.”
이슈탐사팀=이강민 기자 riv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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