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무기, 인도주의 원칙 무력화… 구호단체 연간 수백명 피살”
“무력 분쟁, 2009년 대비 2배 증가
AI 앞선 한국과 적극적 협력 원해”

강대국들에 전쟁이 최후의 수단이 아닌 손 쉬운 선택지가 되면서 국제 구호단체 직원들조차 연간 수백명씩 목숨을 잃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통제가 어려운 인공지능(AI) 무기의 등장으로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규칙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피에르 크레헨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사무총장은 20일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전쟁의 위험이 커지는 새로운 시대이자 역사가 변하는 국면에서 한국 정부와 협력할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인터뷰는 국민일보가 지난 4월 보도한 ‘전쟁, 문턱이 낮아졌다’ 시리즈의 문제의식에 공감한 ICRC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크레헨뷜 총장이 방한한 배경에는 최근 몇 년 사이 잦아진 국제 분쟁에 대한 위기감이 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데 이어 올해는 미국이 이란과 100여일간 전쟁을 벌였다. 크레헨뷜 총장은 “유엔헌장에 담긴 전쟁이 최후의 수단으로 남아야 한다는 약속을 지키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우려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그는 “우리가 직접 대응하고 있는 무력 분쟁의 수가 2009년 대비 두 배로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스라엘·팔레스타인·콜롬비아에서 볼 수 있듯 이런 분쟁은 한 번 시작되면 매우 긴 시간동안 이어지는 장기전으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크레헨뷜 총장은 전장에서 AI 무기가 무차별적으로 목표물을 공격하며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원칙을 무너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군의 지휘통제실에는 AI가 학습한 정보가 수천 건씩 쏟아져 들어오며 화면에는 공격 대상으로 제안된 목표물이 표시된다. 이 모든 게 순식간에 벌어져 인간이 실질적으로 AI의 작업물을 검증할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연간 1~2명이던 국제 구호단체 사망자 수가 현재는 300명 수준으로 급증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방한 기간 한국과의 협력을 적극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크레헨뷜 총장은 “한국은 AI에 관한 혁신과 고민의 측면에서 대단히 앞선 국가”라며 “신기술이 무력 충돌과 전쟁 수행 방식에 미칠 영향에 대해 한국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함께 논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한국이 국제인도법과 관련된 모든 사안에서 중요한 목소리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며 “분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의 여러 기관과 다양하고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에 국회의원과 외교부·국방부 등 주요 부처와 국제 현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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