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못 하는 게 뭐예요

실버타운 입주자들을 대상으로 요가 수업을 시작했다. 첫 시간을 마치고 한 분이 웃으며 말씀하신다. “교무님은 못 하는 게 뭐예요.” 나 역시 미소로 답했다. “못하는 게 뭔지, 열심히 찾는 중이지요.” 젊은 날 한때 ‘안 해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게 없다’는 오만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어느 날, 나를 지도해 주시던 교무님께서 “너는 끈기가 부족해”라는 말씀과 함께 소태산 대종사님의 법문을 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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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할 게 없을 것 같던 오만 버리고
마라톤 도전하며 내면에 집중
자신을 잘 살피는 게 지혜의 근본
」

“보통 사람들은 하늘을 뚫는 신심(信心)을 냈다가도 시일이 좀 오래되면 그 신심이 까라지는 수가 있는데, 일을 당해 역경(逆境)이면 능히 순경(順境)을 만들고, 순경이면 간사하고 넘치는 데에 흐르지 않게 하는 꿋꿋함이 있어야 능히 큰 공부를 성취할 수 있다.”
끈기가 있음을 보여 큰일을 할 수 있는 자질이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던 중 마라톤 대회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이거다’ 싶었다. 42.195㎞라는 물리적 거리를 넘어, 장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마라톤이야말로 내 정신력과 인내심을 보여주는데 적절할 것 같았다. 그렇게 단순하고 용감하게 나의 마라톤 도전이 시작되었다.
체계적인 훈련, 회복 조절, 식단관리와 같은 기초 상식도 없이 그저 오래 달려 피니시라인만 밟으면 되는 줄 알았다. 마음만큼은 당장이라도 보스턴 마라톤까지 달릴 기세였지만, 현실은 하프코스(21.0975㎞)조차 과분했다.
처음 하프코스를 달리며 머릿속에는 그야말로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괜한 증명을 한다고 사서 고생이네’부터, ‘지금 포기해도 아무도 모르는데’까지, 그만둘 이유와 자기합리화만 찾았다. 두 시간 넘게 시끄러운 마음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니 어느새 완주를 했다.
원불교 대산 종사는 세상에 수많은 소리 중에서도 만인을 능히 감동시킬 수 있는 큰 소리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 마음이 통일된 데서 나온 소리, 둘째, 마음이 열려 깨친 데서 나온 소리, 셋째, 몸소 실천한 데서 나온 소리”라고 하셨다. 더위에도 추위에도 땀 흘리며 달려 완주 메달이 하나둘 늘어가며 내 마음이 외치는 소리를 온전히 듣는 마라톤의 매력을 알고, 타인의 평가에 상관없이 나 스스로를 믿고 인정하게 되었다.
마라톤을 통해 내 안의 소리 듣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면, 최근에는 내면의 소리 듣기를 방해하는 외부의 소음 걷어내는 공부를 하고 있다. 원불교 도량을 관리하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화단의 풀을 뽑으며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강의나 영상을 들었다. 산책할 때도, 운전할 때도 늘 무언가를 들었다.
한동안은 내 상식과 앎의 영역이 다양해지는 만족감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머릿속에 들어오는 정보는 많은데, 정작 내 생각이 머무르는 공간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생각을 외주 주는 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안 하는 시대인데 뭘 그렇게 머릿속에 넣고 있는가. 지식의 과잉 속에서 정작 나와 대화하는 법을 잃고 있는가.
그 길로 이어폰을 빼고 머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풀을 뽑는 데 집중하고, 자연의 소리와 변화를 살폈다. 요가를 하며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을 느꼈다. 빨리 가면 많이 볼 수 있지만 천천히 가면 자세히 볼 수 있듯, 삶의 속도를 늦추니 내면의 결이 보였다.
원불교에서는 ‘무시선 무처선(無時禪 無處禪)’이라 하여, 언제 어디서든 일하고 생활하는 그 자리가 모두 마음을 닦는 도량(道場)이라고 한다. 마라톤, 풀 뽑기, 요가 모두가 마음을 알아가는 거룩한 선방(禪房)이다. 최근 실버타운을 감싸고 있는 작은 동산에 ‘사유의 길’을 만들었다. 어르신들이 흙길을 밟으며 천천히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자기의 그름을 잘 살피는 이가 참으로 눈 밝은 사람이요, 알뜰한 충고 잘 듣는 이가 세상에 참으로 귀 밝은 사람”이라는 정산 종사의 말씀처럼, 남들의 시선이나 세상의 시끄러운 정보 대신, 사유의 길을 천천히 걸으며 내 안의 오만을 덜어내고 스스로를 살핀다.
한진경 원불교 청라교당·더시그넘하우스청라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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