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절대평가가 초래한 ‘수능 혼돈’… 개혁하려다 기형화

이도경 2026. 7. 2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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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지옥 만든 ‘순진한’ 정책]
수능 불확실성 연쇄적으로 높여
변별력 위해 국어·수학 어려워져
킬러문항·널뛰기 출제 등 초래
영어 난이도도 출렁… 수험생 혼란
상대·절대평가 어정쩡한 공존 상태
수험생의 학습 부담과 학부모의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며, 때로는 '공정'을 내세우고 때로는 미래 인재 양성을 명분으로 새로운 입시 제도가 학교 현장에 도입됐다. 이들 가운데는 부작용이 일찍 드러나 퇴출된 것도 있지만 여전히 현장에 남아 수험생의 고통을 가중하는 제도도 적지 않다. 여러 변수가 복잡하게 맞물린 입시를 한두 요소만 손보면 바꿀 수 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결과다. 현행 입시는 수시와 정시, 수능과 내신, 수능 난이도 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구조다. 한 요소만 바꿔도 연쇄반응이 일어나 입시 지형이 달라진다. 이런 구조를 외면한 채 선의만 앞세운 정책은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낳으면서 수험생들을 더 큰 불확실성 속으로 몰아넣었다. 지금도 입시 제도는 계속 바뀌고 있다. 입시를 지옥으로 만든 '순진한' 정책을 하나씩 짚어봐야 하는 이유다.

뉴시스

대전의 고3 수험생 Y군은 요즘 학습 상담을 위해 입시 컨설턴트를 알아보고 있다. 1학기가 거의 끝나면서 본격적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에 나서야 하는 시점이지만 영어에 얼마나 시간을 쏟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서다. 지난해 수능 영어 1등급 비율은 3.11%에 그쳤고 지난달 모의평가에서도 4.13%로 상대평가 과목보다 더 어려웠다. 자칫 수시모집 지원 대학의 수능 최저학력기준(최저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영어 교재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일단 어렵게 출제될 것으로 보고 대비하라’는 조언이 이어지지만 다른 과목도 소홀히 할 수 없어 혼란스럽다.


20일 입시업계 등에 따르면 수능 영어 절대평가 정책은 여러 갈래로 입시의 불확실성을 끌어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난이도 조절의 난맥상이 더해졌다. 상대평가 과목은 등수로 등급을 끊는다. 하지만 영어는 원점수 90점 이상 1등급, 80점 이상 2등급 등 9개 등급으로 구분한다. 난이도에 따라 등급이 크게 출렁이는 방식이다.

문제는 영어가 수시의 수능 최저기준을 충족하는 데 핵심 변수라는 점이다. 9월 수시 원서를 접수하기 전에는 최저기준을 맞출 수 있을지를 예측해야 한다. 통상 영어는 ‘3개 과목 등급 합 8’과 같은 최저기준 충족에 활용된다. 지난해 수능에서 영어 1등급 비율이 3.11%로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적지 않은 수험생이 최저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불합격했다. 여기에 출제 당국도 최근 수능과 모의평가에서 영어 1등급 비율이 1.47%에서 19.1%까지 오가는 등 난이도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상황을 지켜본 수험생들로서는 올해 영어 난이도를 예측하기 어려워 불안할 수밖에 없다.

영어 절대평가 전환 이후 국어는 상위권 변별을 위한 핵심 과목으로 떠올랐다. 출제 당국으로서는 국어와 수학만으로 상위권을 가려야 하는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국어의 난도가 높아졌고, 킬러문항(초고난도 문항) 논란도 본격화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9학년도 수능 국어 31번 ‘만유인력’ 지문이다.


킬러문항 논란은 단순히 한두 문항이 어려워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어와 수학의 난이도 편차를 키워 수험생들을 해마다 혼란에 빠뜨린다. 출제 당국은 2019학년도 수능에서 국어가 지나치게 어렵다는 비판을 받자 이듬해에는 국어 대신 수학의 난이도를 끌어올렸다. 그 결과 2020학년도 수능 수학(나형)의 표준점수 최고점은 149점으로 전년보다 10점 상승했다. 표준점수 최고점은 시험이 어려울수록 높아지는 만큼 수학이 매우 어려워졌음을 보여준다.


국어 최고점은 2022학년도 149점, 2023학년도 134점, 2024학년도 150점, 2025학년도 139점, 2026학년도 147점으로 널뛰기 출제가 이어지고 있다. 난이도가 불규칙하면 불확실성이 커지고 사교육이 늘어나게 된다. 고교생 1인당 월평균 국어 사교육비는 2019년 22만8000원에서 지난해 29만1000원으로 뛰었다. 영어도 같은 기간 27만2000원에서 33만원으로 상승했다.


수능 영어 절대평가는 학생들의 학습 부담과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취지로 2014년 도입이 결정됐다. 황우여 당시 교육부 장관은 “과도한 사교육 시장과 수십 년에 걸친 영어 투자가 무슨 결실을 맺고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며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상당했다. 국어와 수학의 학습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영어 사교육이 오히려 저연령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고교 입학 전부터 안정적으로 1등급(90점 이상)을 확보하기 위한 선행학습이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교육부도 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어 절대평가를 입시 개편을 위한 ‘징검다리’ 성격으로 봤다. 한국사와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꾸고 국어와 수학, 탐구 등도 절대평가로 전환해 수능을 자격고사화하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수능에서 상대평가와 절대평가가 어정쩡하게 공존하는 시기가 길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후 ‘국정 역사교과서 논란’과 ‘국정농단’ 사태가 이어지며 입시 개편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어 문재인정부와 윤석열정부에서도 대입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서 현재의 기형적인 상황이 굳어진 것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이제 영어를 상대평가로 되돌리기도 그냥 두기도 쉽지 않다. 정책 추진 환경과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하다 만 개혁’의 폐해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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