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도 쉽게 발길을 떼지 못했던 대구 근대화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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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되찾기 위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는 목숨을 걸었다.
대구의 근대화에는 선교사들의 헌신도 깃들어 있다.
훗날 계성학교와 신명학교, 동산병원으로 이어지는 이들의 발자취는 대구 근대화의 토대가 되었다.
청라언덕은 병원과 학교를 세운 선교사들의 헌신, 그리고 나라의 독립을 외쳤던 시민들의 함성이 함께 남아 있는 대구 근대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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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운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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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라 언덕 미국 선교사들이 근대 의료와 교육의 씨앗을 뿌렸던 대구 근대문화의 출발점 |
| ⓒ 문운주 |
하지만 기억은 희미해졌다. 일부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가난 때문에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생활고 속에서 긴 세월을 견뎌야 했다. 매년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달리, 우리는 그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대구의 근대화에는 선교사들의 헌신도 깃들어 있다. 낯선 땅에 들어온 그들은 병원을 세워 환자를 돌보고, 학교를 열어 새로운 학문을 가르쳤다. 열악한 환경과 전염병 속에서도 의료와 교육 활동을 이어가며 대구가 근대도시로 나아가는 길을 열었다.
지난 15일, 대구간송미술관을 둘러본 뒤 대구 구도심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오래된 골목과 선교사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청라언덕과 대구 근대문화골목이다. 그들은 머나먼 이국에서 왜 대구를 찾았을까. 이곳에서 무엇을 했고,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역사의 현장, 청라언덕
19세기 말,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은 태평양을 건너 일본을 거쳐 부산항에 닿았다. 그러나 여정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직 철도가 놓이기 전이어서 다시 말을 타고 험한 산길을 사흘가량 넘어서야 대구에 이를 수 있었다. 언어도 문화도 전혀 다른 낯선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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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산의료원 엣터 1899년 미국 의료선교사들이 제중원을 세우며 대구에 근대 의료의 문을 연 역사적인 공간 |
| ⓒ 문운주 |
오늘 청라언덕에 남아 있는 붉은 벽돌 선교사 주택은 단순한 옛 건물이 아니다. 태평양을 건너 이름조차 생소했던 도시를 찾아와 평생을 바친 이들의 삶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그 흔적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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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박물관(옛 스윗즈 선교사 주택)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설립하며 근대 문화를 전한 미국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간직한 청라언덕의 대표적인 역사문화공간이다. |
| ⓒ 문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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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과시배지 미국 선교사들이 심은 사과나무 한 그루는 훗날 전국에 이름을 알린 '대구 사과'의 출발점이 됐다. |
| ⓒ 문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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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무생각 가곡 「청라언덕」의 노랫말이 새겨진 노래비.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음악이 한데 어우러진 청라언덕의 또 다른 명소다. |
| ⓒ 문운주 |
옛 동산병원 구관 현관을 지나 청라언덕을 내려서면 대구 3·1운동길로 이어진다. 1919년 3월 8일 학생과 시민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했던 길이다. 청라언덕은 병원과 학교를 세운 선교사들의 헌신, 그리고 나라의 독립을 외쳤던 시민들의 함성이 함께 남아 있는 대구 근대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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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화 고택 민족 저항시인 이상화가 생의 마지막까지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던 곳 |
| ⓒ 문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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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상돈 고택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서상돈 선생이 살았던 고택. 대구 근대사의 중요한 현장으로, 나라의 빚을 국민의 힘으로 갚고자 했던 자주독립 정신이 깃든 공간 |
| ⓒ 문운주 |
이상화 고택에 들어서자 소박한 한옥 마당과 오래된 감나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민족 저항시인 이상화가 생의 마지막까지 머물며 작품을 썼던 이곳은 그의 대표작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
마당의 시비 앞에 섰다. 일제강점기의 아픔과 조국을 향한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이 고택은 2002년 시민들이 펼친 '이상화 고택 보존 100만인 서명운동'으로 철거 위기를 넘겼다. 시민들의 힘으로 지켜낸 근대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깊게 다가온다.
바로 옆 서상돈 고택에서는 또 다른 애국의 역사를 만난다.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서상돈의 삶을 돌아보며, 나라의 빚을 국민의 힘으로 갚아보자는 절박한 외침이 전국으로 번져 나갔던 시대를 떠올렸다. 크지 않은 한옥이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실천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담겨 있었다.
해 질 무렵 근대골목을 빠져나왔다. 골목은 다시 일상의 모습으로 돌아가지만 마음만은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청라언덕에서 만난 선교사들의 헌신, 3·1운동길에 남은 함성, 이상화의 시와 서상돈의 실천은 모두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한 줄기 역사였다.
우리는 흔히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억은 구호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걸었던 길을 한 번 더 걷고, 그들이 남긴 이야기를 한 번 더 읽고,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일에서 비로소 기억은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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