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멈출 때
[황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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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스피가 하락 출발해 장 초반 6,500대까지 밀린 20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와 코스닥이 표시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77.02포인트(2.60%) 내린 6,643.58로 출발해 3~4%대의 하락률을 보이고 있다. 코스닥도 전장보다 24.54포인트(3.10%) 하락한 767.30이다. 2026.7.20 |
| ⓒ 연합뉴스 |
2026년 여름의 서울. 코스피는 2025년 한 해 동안 76% 가까이 올라 2000년 이후 최고의 연간 상승률을 기록했다. AI 반도체 슈퍼사이클, 기업가치 제고 정책, 외국인 자금의 귀환이 맞물렸고 증시는 축제 분위기다. 코스피는 사상 처음으로 9000선을 돌파했고, 6월 19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38조 4786억 원으로 집계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3거래일 연속 반대매매가 1000억 원을 웃돌며 3일간 강제 청산된 규모만 4751억 원에 달하는 동안에도,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 춤을 추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뒤처진 것처럼 보이는 시절이다.
그러나 경제사는 이런 순간을 반복해서 기록해왔다.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확신에 차 있는 바로 그 시점이, 사후적으로는 가장 위험했던 순간으로 판명나는 아이러니를.
안정적으로 보일수록, 금융 구조는 취약해진다
금융 불안정은 갑작스러운 외부 충격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것은 호황기 내내 조용히 내부에서 자라난다.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가 수십 년 전에 통찰한 것처럼, 안정적으로 보이는 시기일수록 금융 구조는 점점 더 취약해진다.
이 불안정성의 구조적 뿌리는 1960년대 이후 본격화된 머니 매니저 자본주의(money manager capitalism)의 부상에 있다. 연기금, 보험사, 헤지펀드 등의 기관투자자들이 수익률 경쟁에 뛰어들면서 금융 시스템 전반이 레버리지와 자산가격 인플레이션에 의존하는 구조로 굳어졌다. 이들은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했고, 그 위험 감수 경쟁이 금융 취약성의 근본 원인이 되어왔다. 2008년 대침체는 이 구조가 임계점을 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 가장 최근의, 그러나 가장 혹독한 교훈이었다.
낙관론이 퍼지면서 사람들은 더 많은 빚을 지고 더 위험한 자산을 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금융 시스템 전체가 오직 한 가지 조건에 의존하게 된다. 자산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전제.
민스키는 이 상태를 '폰지 금융'이라 불렀다. 폰지 사기꾼의 이름을 빌렸지만, 현실에서는 훨씬 세련된 형태로 나타난다. 빚을 져서 자산을 샀는데, 그 자산의 수익이나 소득으로는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 결국 자산을 팔아서, 혹은 더 비싸게 팔 수 있다는 기대 위에서만 버티는 구조. 당장 문제가 터지지 않는 이유는 자산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멈추지 않는다.
이 오래된 구조가 오늘날 가장 선명하게 작동하는 곳이 글로벌 사모시장이다. 2008년 이후 저금리와 규제 강화가 맞물리면서, 고수익을 좇는 기관투자자 자금이 대거 사모시장으로 흘러들었다. 문제는 시장이 커지면서 더 많은 자금을 소화하기 위해 인수심사 기준이 낮아지고, 실제 자산 가치를 부풀리는 불투명한 평가 방식이 확산되며,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기업에게 새 빚으로 기존 이자를 갚게 하는 관행이 일상화되었다는 점이다. 레버리지는 중첩되고, 리스크는 숨겨지며, 시장 전체가 자산 가격이 오른다는 전제 위에 더 촘촘하게 얽혀간다. 겉으로는 낮은 부도율과 높은 수익률이 건전성의 증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제를 뒤로 미루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국면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투자의 민주화'라는 구호다. 블랙스톤, 아폴로 같은 글로벌 사모자본 회사들은 개인 투자자들이 가진 수조 달러의 자금을 사모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기회의 평등'과 '민주화'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계산이 다르다. 새 자금 유입으로 자산 가격을 떠받치고, 시장 규모를 키우며, 그 과정에서 막대한 수수료를 챙기려는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은 새로운 수익의 수혜자가 아니라, 기존 참여자들이 빠져나갈 출구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불투명한 시장의 리스크를 평가할 역량이 부족하고, 장기 투자를 감내하기 어려운 이들이 가장 나중에 진입해 가장 먼저 손실을 입는 구조, 역사 속에서 이 서사는 반복되어왔다.
오늘의 한국 '빚투'가 정확히 이 구조의 국내판이다. 신용융자로 주식을 샀는데 주가가 오르면, 담보 여력이 생겨 더 빌릴 수 있다. 더 빌려서 더 사면 주가는 또 오른다. 선순환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오직 주가가 오르는 동안에만 작동하는 메커니즘이다. 방향이 바뀌는 순간, 같은 구조가 정반대로 작동한다. 빚을 갚기 위해 주식을 팔아야 하고, 팔수록 주가가 떨어지며, 떨어질수록 더 많이 팔아야 한다. 2020년 3월, 2022년의 연쇄 급락 때 한국 개인 투자자들이 경험한 것이 바로 이 역방향 소용돌이였다. 38조 원이 넘는 신용 잔고는 그 구조가 더 커진 채로 다시 쌓여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이 끼어든다. 2026년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로 올랐다. 인플레이션이 오르면 금리 인하 기대는 멀어지고 빚투의 이자 부담은 늘어난다. 더 미묘한 함정도 있다. 명목상 주가가 오르더라도 그 상승분이 물가 상승에 잠식된다면 실질 수익은 없거나 마이너스다. 그러나 대부분의 투자자는 명목 수익률을 본다. "코스피가 올랐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더 많은 빚을 감내한다. 가계부채가 GDP의 88%를 넘어선 나라에서, 물가가 오르는 동안 빚투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것은 취약성이 중첩되고 있다는 신호다.
증폭된 충격은 가장 먼저, 개인 투자자에게 닿는다
시장의 자기 교정 능력을 믿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앨런 그린스펀은 미 의회 청문회에서 자신의 세계관에 "결함"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민간 금융 기관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규율할 것이라는 믿음이 틀렸다고. 시장 참여자들은 음악이 흐르는 한 계속 춤을 추도록 설계되어 있다. 먼저 멈추는 것은 합리적 선택이 아니다. 모두가 파티에 남아 있는 동안 혼자 나가는 사람은 기회를 놓친 사람이 된다. 그래서 규제가 필요하다. 시장이 스스로 하지 못하는 것을 외부에서 강제하기 위해.
물론 현재의 코스피 상승이 근거 없는 거품이라는 말이 아니다. AI 혁명은 실재하고 반도체 수요는 견고하다. 그러나 그 모든 사실이 38조 원의 신용융자를 안전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좋은 이유가 있는 상승장에서도 레버리지는 변동성을 증폭시킨다. 그리고 그 증폭된 충격은 가장 먼저, 가장 크게 개인 투자자에게 닿는다.
자산 가격이 언제 방향을 바꿀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방아쇠의 정체가 아니라, 당겨졌을 때 얼마나 취약한 상태에 있느냐다. 취약한 금융 구조 위에서는 언제나 작은 충격 하나로 충분하다.
음악은 지금도 흐르고 있다. 문제는 출구와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느냐, 그리고 빚을 지고 있느냐다.
※ Eric Tymoigne, "Money Manager Capitalism and the Growth and Spread of Ponzi Finance" (Levy Economics Institute, 2026)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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