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일은 작았다” 선교사 존 브라운의 유산
복음 전하며 품종 좋은 가축 보급
선교재산 이양에도 주도적인 역할
장로회신학대서 후학 양성도 힘써
호주 귀국 후엔 호주연합교회 통해
영등포산업선교회 지원 활동 펼쳐

일생 ‘내가 한 일은 작았다’며 겸손한 삶을 살았던 존 브라운(한국명 변조은) 선교사가 17일(현지시간) 호주 캔버라의 라이프케어가든스 요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호주연합교회 파송을 받아 1960년부터 한국에서 사역한 변 선교사는 12년 동안 서울 및 경남 마산과 거제도에서 농촌 발전과 후학 양성, 교회 개척 사역을 했다. 72년 호주로 돌아간 뒤에도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을 지원한 숨은 공로자였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했던 변 선교사는 거제도와 마산의 여러 농촌교회를 순회하며 목회했다. 복음 전파뿐 아니라 농촌 발전을 위해 66년 호주로 가 돼지와 염소 등 품종이 좋은 가축을 우리나라로 공수한 뒤 농촌에 보급했다. 이를 통해 농가 수입 증대와 먹거리 문제 해결을 도왔다.
이 가축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호주 교인들은 ‘존 브라운 돼지 클럽’을 조직해 변 선교사를 도왔다. 변 선교사는 64년 선교재산 이양을 위해 미국과 캐나다, 호주의 한국 선교부가 조직한 ‘협동 사업부’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선교재산 이양이 시기상조라는 여론이 다수인 상황에서 변 선교사는 “이 땅의 교회는 서양의 교회가 아니라 한국인들의 교회다. 선교사가 계속 주도권을 갖고 있다면 절대 자립할 수 없다. 선교의 완성은 선교사가 필요 없게 되는 데 있다”고 말하며 빠른 이양을 촉구했다.

한국 선교의 마지막은 장로회신학대에서 했던 후학 양성이었다. 구약학과 히브리어를 강의했던 변 선교사는 ‘히브리말 배우자’라는 교재도 직접 만들며 열정적으로 가르쳤다. 당시 신학생들은 변 선교사를 ‘공의의 선지자 아모스’라고 부르며 따랐다.
호주로 돌아간 뒤 호주연합교회 선교부 총무로 활동하면서 영등포산업선교회를 지원했던 변 선교사는 이 선교회의 2대 총무였던 인명진 목사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변 선교사는 일생 겸손한 삶을 살았다. ‘호주선교사 존과 노마 브라운’이라는 제목의 책을 집필하고 있는 영등포산업선교회 소속 양명득 선교사가 지난 5월 호주 캔버라 라이프케어가든스 요양원에 있는 변 선교사를 만나러 갔을 때의 일화가 그의 소박한 삶을 대변한다.

양 선교사가 “변 선교사님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고 하자 아흔이 넘은 노선교사는 “나에 관한 책은 아마 작은 책일 겁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양 선교사는 1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처음엔 이 말이 바로 이해가 안 돼 어리둥절했다”면서 “결국 이 말씀은 ‘내가 한 일이 작아 책도 소박할 것’이라는 겸손의 메시지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을 마무리 짓고 선물하지 못한 게 무척 아쉽다”면서 “하지만 그의 정신이 앞으로도 계속 연구되고 신앙의 후대들에도 영감과 도전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출간을 앞둔 ‘호주선교사 존과 노마 브라운’의 출판기념 예배는 다음 달 7일 부산 일신기독병원에서 진행된다. 변 선교사의 장례 일정은 현재 유가족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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