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 진다” AI 바둑 금기 깼다…‘신공지능’ 신진서 완벽한 설욕

‘신공지능’ 신진서가 인공지능 ‘카타고(KataGo)’와의 2점 접바둑에서 승리했다.
신진서(26) 9단은 19일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쎈수학·한경 기신전 2국에서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카타고에 290수 만에 흑 4집반 승리를 거두고 17일 1국에서의 패배를 설욕했다.
한 편의 공포영화 같은 바둑이었다. 이번 대국은 인공지능의 월등한 실력을 인정해 인간에게 두 점 접바둑의 혜택을 줬다. 집으로 계산하면 18집 정도다. 그 18집 차이를 뒤집기 위해 인공지능은 5시간 가까이 집요한 추격전을 벌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가 좁혀졌고, 한 수만 삐끗해도 역전당하는 순간이 수차례 찾아왔다. 그러나 신진서는 끝내 이겨냈다. 한 번도 우세를 뺏기지 않았고, 마침내 인공지능을 꺾었다.

초반은 1국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됐다. 1국에서 카타고는 두 번째 수만에 전혀 뜻밖의 수를 선보여 신진서를 흔들었다. 신진서가 “이 한 수로 한 달간 준비했던 모든 게 날아갔다”고 털어놨을 만큼 충격이 컸다.
2국에서 카타고는 초대형 정석을 시도했다. 10년 전 알파고 이후 인공지능이 선보인 이른바 ‘인공지능 정석’이다. 수순이 길고 복잡해 한 수만 어긋나도 형세를 크게 그르친다. 그러나 카타고가 이 정석을 선택했을 때 입력되지 않은 정보가 있었다. 상대가 인공지능과 가장 유사한 바둑을 둬 ‘신공지능’이라 불리는 신진서라는 실전 정보다.
신진서는 이 정도 변화는 기본이라는 듯, 50수가 넘어가는 수순을 정확히 밟아 나갔다. 10년 전의 이세돌은 인공지능에 무지했으나, 지금의 신진서는 인공지능으로 바둑을 연구한다. 이 차이를 카타고는 계산하지 않았다. 정석이 끝나자 바둑판의 4분의 1이 금세 정리됐다. 초반부터 변화의 여지를 크게 줄인 덕분에 신진서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중반전에 돌입했다.
카타고와의 대국을 앞두고 신진서는 “전투는 최대한 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날 신진서는 인공지능에 싸움을 걸었고 싸움에서 이겨 승리를 가져왔다.
중반전, 중앙에서 접전이 벌어졌을 때 신진서에겐 두 가지 길이 있었다. 흑 돌을 연결해 바둑을 길게 끌고 가거나 백 대마를 끊고 공격에 나서거나. 전투에서 이기면 집 차이는 당연히 벌어진다. 그러나 전투가 벌어지면 변수가 많아져 승률 그래프가 떨어진다. 이기면 좋지만, 이길 수 있을까. 신진서가 상대하는 카타고는 20초 제한시간 안에 무려 2만6000개의 경우의 수를 계산한다고 알려진 최상위 등급의 인공지능이다.
절체절명의 순간, 신진서는 용기를 냈다. 102번째 수가 떨어졌고, 중앙 백 대마가 양분됐다. 이후로 긴 싸움이 이어졌으나 그 한 수로 신진서는 확실한 우세를 가져왔다. 신진서는 국후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반발하거나 공격하고 싶었던 장면이 수도 없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참으면서 고통을 인내했다. 중앙 접전이 벌어졌을 때 시간을 봤더니 여유가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면 못 끊었을 것이다. 손해를 덜 보면서 전투를 하자고 생각했다.”
인간은 이제 인공지능과 싸우려 하지 않는다. 싸우면 지는 걸 알아서다. 바둑에서도 인공지능은 승부의 대상이 아니다. 인공지능으로 바둑을 공부하고 인공지능의 바둑을 따라 한다. 그 금기를 신진서가 깼다. 패배해도 위대한 도전인데, 한 판을 이겼다. 마지막 한 판도 기대되는 이유다. 3국은 21일 열린다. 이날도 승리하면 신진서는 다 합쳐 2억5000만원과 함께 제네시스90 승용차도 가져간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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