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프진 없어 항암제로 낙태”…한국만 못쓰는 임신중지약 왜

프리랜서로 일하는 30대 초반 최모씨는 지난 14일 임신중지를 위해 메토트렉세이트(MTX) 주사를 맞았다. 임신 초기인 4주차를 지나고 있을 때였다. 최씨는 “관련 커뮤니티를 찾아보다 ‘약물중절’ 방식을 알게됐다. 주사를 맞고 경과를 지켜보는 중”이라고 했다.
최씨는 이번이 두 번째 임신중지다. 5년 전엔 임신 6주차에 흡입술을 통해 임신중지를 했다. 이번엔 가슴 통증과 발열 등 몸의 변화가 나타나 임신을 더 빨리 알아챘다. 아이를 당장 낳고 싶지는 않다는 판단이 섰고, 몸의 무리를 줄이고자 약물중절 방식을 택했다. 그는 “MTX 주사를 맞았지만, 아직 완전히 임신중지가 된 건 아니”라며 “먹는 임신중지 약물(낙태약)인 미프진이 있었다면, 결과가 불확실한 약물투여나 몸에 무리가 가는 수술이 아닌 미프진 복용을 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MTX 주사는 자궁외임신과 면역 질환, 항암 치료 등에 주로 쓰이는 약물이다. 그러다 일부 의사들이 임신 초기인 여성의 임신중지에도 효과가 있다는 걸 알게 돼 임신중지 방식 중 하나로 홍보 중이다.
최씨가 정보를 얻은 임신중지 커뮤니티에서는 MTX 주사를 놓는 병원들이 ‘약물중절’ 카테고리에 분류되어 있다. 해당 커뮤니티에는 최씨처럼 MTX 주사를 맞은 사람들의 후기가 매일같이 올라온다. 일부 커뮤니티에는 이달 초까지도 개별적으로 미프진을 구해보려는 사람들의 게시글이 업로드됐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후 임신중지 관련 입법은 답보 상태다.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은 음지에서 미프진을 구하려고 시도하거나, 최씨처럼 걱정을 안고 약물중절을 택하는 등 불편을 겪었다. 결국 지난 1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까지 미프진 도입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정부에 좀 어려움이 있더라도 적정하게 (미프진을) 투약할 수 있게 해줘야지, 이런 식으로 지금 정부가 두는 건 무책임한 거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했다.
미프진은 임신 초기 사용할 수 있는 경구용 유산 유도 의약품이다. 1988년 프랑스 등에서 처음 허용됐고, 미국·유럽·중국 등 100개국에선 합법으로 사용 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5년 미프진을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했다. 국내에선 허가되지 않아 합법적으로 구매가 불가하다.
미프진을 정식 도입하려는 움직임은 5년 전부터 있었다. 국내 제약사 현대약품은 2021년 7월 ‘미프지미소정’의 품목허가를 처음으로 신청했다. 미프지미소정은 미페프리스톤(통명 미프진, 200mg 1정)과 미소프로스톨(200㎍ 4정)을 주성분으로 하는 임신중지 의약품이다. 하지만 현대약품은 식약처의 자료 보완 요청으로 2022년 품목 허가를 자체 취하했다. 이후 현대약품은 같은 이유로 신청과 취소를 반복하며 미프진 품목허가를 받는 데 실패했다. 2024년 세 번째로 신청 후 아직 식약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15일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 허용 범위와 허용 기간이 법률로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아 효능·효과와 위해성 관리 계획 심사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며 “다만 도입 필요성이 지속해서 제기되는 만큼 앞으로 보건복지부, 성평등가족부 등 관계 부처와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평등가족부 관계자는 “국무회의 다음날인 15일, 식약처와 보건복지부·성평등가족부 등 관계 부처는 미프진 도입 관련해 실무 단계의 논의를 시작했다”고 16일 밝혔다.
의료계 입장은 우려와 환영으로 갈린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14일 성명을 내고 “안전성 가이드라인과 유통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미프진) 조기 허용”에 우려를 표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15일 “임신중지 약물 도입 촉구한 이재명 대통령 발언 환영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순천향대병원에서 유일하게 흡입술 등을 통해 임신중지 시술을 해 왔던 오정원 산부인과 전문의는 “미프진 안전성은 이미 검증됐다. 지금은 오히려 임신중지 효과를 담보할 수 없는 MTX 주사가 쓰이거나, 여성의 몸에 무리가 가는 소파술 등을 활용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했다. 오 전문의는 “의료진 보호를 위해서는 미프진 도입 반대가 아니라 임신중지 시술에 관한 업계 차원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혜리 기자 choi.hyer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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