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주가 아닌 ‘가격’ 보라는 신현송…AI시대 메모리 역설

김원 2026. 7. 17.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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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7.16 [사진공동취재단]


“반도체 기업의 주가보다 반도체 가격 자체를 주시하는 게 좋습니다.”

지난 16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신현송 총재가 던진 한마디는 이번 금리 인상의 의미를 압축한다. 이날 한은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며 3년 6개월 만에 긴축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배경에는 인공지능(AI) 호황이 끌어올린 ‘반도체 가격’이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다.

신 총재는 “반도체 가격 자체가 교역조건으로 이어지고 국내총소득(GDI)이 13.2% 증가한 가운데 국내총생산(GDP)은 3.8% 성장했다”며 “13.2%라는 수치는 결국 수출량보다 반도체 가격이 올라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반도체가 AI 기반 새 경제의 핵심 인프라를 구축하는 요소가 된다면 한국 경제에 시사하는 점이 상당히 많다”며 “통화정책을 펼 때도 당연히 이것을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긴축 전환이 증시 조정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한은이 주가보다 반도체 가격 등 실물 경제의 물가 흐름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주가는 투자 심리와 수급, 업황 전망에 따라 움직인다. 반면 반도체 가격은 수출 단가와 교역 조건을 통해 한국 경제의 구매력을 바꾼다. 같은 물량을 수출해도 가격이 오르면 교역조건이 개선되고 국내로 유입되는 소득이 늘어난다. 늘어난 소득은 투자와 성과급·임금, 소비를 거쳐 물가로 이어질 수 있다.

반도체 가격 상승세는 올해 들어 가팔라졌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계약통화 기준 D램 수출 물가는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129% 상승한 데 이어 2분기에는 232.8%까지 뛰었다. 2분기에도 GDI 개선세가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수출물가지수


반도체 호황의 효과가 수출과 기업 실적에 그치지 않는다는 게 한은 판단이다. 기업이익이 늘면 설비투자와 성과급·임금이 증가하고 법인세수도 늘어난다. 가계와 정부가 쓸 돈이 많아지면서 내수와 서비스물가, 근원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한은이 수요 측 물가 압력을 경계한 이유다.


메모리 가격이 바꾸는 물가의 경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똑같이 올라도 수입국과 수출국의 물가를 자극하는 경로는 다르다. 수입국에서는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로 메모리·소프트웨어 비용과 전기료가 오르면서 비용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 골드만삭스는 이런 AI 관련 요인이 미국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상승률을 이미 0.2%포인트 이상 높였으며 연말에는 기여도가 0.5%포인트까지 커질 것으로 추산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가격 상승이 수출 소득과 기업 이익으로 이어진다. 이 소득이 임금과 소비를 거쳐 서비스물가를 자극하는 수요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입국에는 물가 부담인 가격 상승이 한국에는 수출 호재가 되고, 그 호재가 다시 국내 물가와 기준금리를 끌어올리는 ‘메모리 패러독스(역설)’다.

외신도 이번 금리 인상을 반도체 호황에 따른 긴축 전환으로 해석했다. 블룸버그는 ‘반도체가 이끄는 호황 속 한국, 2023년 이후 첫 금리 인상’이라는 제목으로 AI 반도체 호황이 성장세와 물가 압력을 자극했다고 분석했다. 로이터도 “반도체 호황이 내수로 파급되면서 수요 측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질 것”이라는 신 총재의 발언을 소개했다.

한은이 반도체 호황을 일시적인 수출 호재가 아니라 물가와 통화정책을 좌우할 변수로 보고 있다는 점은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도 드러난다. 한은은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에서 안정될 수 있도록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이제 한은이 주목하는 것은 반도체 가격 상승이 실제 소득과 물가에 얼마나 반영될 지다. 신 총재는 23일 발표되는 2분기 국민소득 통계에서 “1분기의 유례없는 수치가 하향 조정되는지, 아니면 수출이 워낙 잘돼 계속 유지되는지를 주의 깊게 보겠다”고 했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이번 금통위의 핵심은 0.25%포인트 인상이 아니라 정책함수의 변화”라며 “물가의 성격이 일시적 공급 충격에서 구조적 수요 압력으로 전환되면서 중앙은행이 가장 민감하게 대응하는 인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높아진 GDI가 시차를 두고 총수요 압력을 자극하는 것이 향후 금리 인상 사이클의 핵심 변수”라며 “2분기 GDP와 GDI가 한은 전망을 크게 웃돌면 기본 시나리오는 10월 추가 인상”이라고 분석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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