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권리’ 전세계 확산…가톨릭 국가 프랑스도 조력사 허용

이근평 2026. 7. 17.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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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전통이 뿌리깊은 프랑스마저 중증 불치병 환자에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기로 가닥을 잡으면서 안락사와 조력사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1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하원 인근에서 시민들이 안락사와 조력사망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프랑스 하원은 이날 중증 불치병 성인의 조력사망 권리를 인정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AFP=연합뉴스AFP=연합뉴스

“허들 놓인 마라톤”…상원 세 번 제동에 하원 최종 의결


프랑스 하원은 15일(현지시간) 조력사 권리를 신설하는 법안에 대해 찬성 291표, 반대 241표로 최종 가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2022년 대선 공약으로 관련 논의를 꺼낸 지 약 4년 만에 보수 진영이 다수인 상원의 반대를 극복하고 법제화의 문턱에 다가선 것이다.

하원은 2025년 5월, 지난 2월과 6월 등 세 차례 법안을 가결했지만 상원이 매번 제동을 걸었다. 지난달 2일엔 양원 합동위원회도 합의에 실패했다. 결국 정부는 헌법 45조에 따라 하원에 최종 의결을 요청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표결 직후 “2022년 프랑스 국민과 함께 이 길을 열겠다고 약속했다”며 “그 약속을 지켰다”고 밝혔다. 법안을 이끌어온 올리비에 팔로르니 라로셸 시장(전 하원의원)은 AFP통신에 “최종 표결까지의 과정은 허들이 놓인 마라톤과 같았다”고 표현했다.

1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하원에서 조력사망 권리를 신설하는 법안이 최종 가결된 뒤, 법안을 이끌어온 올리비에 팔로르니 라로셸 시장이 의사당을 나서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시행까지는 한 달가량 걸릴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관문으로 헌법위원회의 심사가 남았는데, 판단 능력이 제한된 성인의 신청 절차 등 일부 조항이 이 과정에서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치매·정신질환자는 제외…엄격한 제한 둔 조력사


프랑스의 새 법안은 환자가 치명적 약물을 스스로 투약하는 ‘죽음에 대한 조력(조력사)’을 원칙으로 한다. 신체적으로 자가 투약이 불가능한 환자에 한해서만 의료진의 투약, 이른바 안락사를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대상은 18세 이상 프랑스 국민이나 합법적 거주자 중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하고 치유 불가능한 질환이 진행 중이거나 말기 단계에 이른 사람이다.

정신적 고통만으로는 조력사를 신청할 수 없고, 중증 정신질환자나 알츠하이머 등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판단 능력을 잃은 사람도 제외된다. 신청을 받은 의사는 다른 전문의와 환자를 돌보는 의료인의 의견을 들은 후 15일 내 자격 여부를 결정한다. 승인을 받은 환자는 최소 이틀간 숙려 기간을 거쳐야 한다.


전 세계적 흐름과 맞물려 있어


프랑스의 이번 선택은 전 세계적 흐름과도 맞물려있다. 처음 안락사를 법제화한 국가는 네덜란드로 2002년 제도를 시행했고, 벨기에도 같은 해 법제화했다.

특히 벨기에는 2014년 부모의 동의와 환자의 판단 능력 등 엄격한 요건 아래 연령 제한 없이 말기 질환 미성년자에게도 안락사를 허용했다. 시행 건수도 늘고 있다. 벨기에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신고된 안락사는 4486건으로 전년보다 12.4% 증가했다. 이는 벨기에 전체 사망자의 4%에 해당한다.

룩셈부르크와 스페인은 각각 2009년과 2021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일정 요건 아래 법적으로 허용했다. 스위스의 경우 의료진이 약물을 직접 투여하는 안락사를 금지하지만, 환자가 스스로 약물을 복용한다고 했을 때 조력하는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 외국인의 이용도 막지 않아 해외 환자가 스위스에서 죽음을 선택하는 사례가 잇따르기도 했다.


법 만들고도 시행 못한 나라들…영국은 상원서 중단


반면 포르투갈은 2023년 조력사법을 제정하고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위헌 논란이 여전해서다. 슬로베니아도 지난해 7월 의회에서 관련 법을 통과시키고서도 국민투표에서 반대 의견이 우세해 시행이 중단됐다. 독일과 이탈리아도 법원 판결을 통해 제한적 조력사의 길이 열렸지만 구체적인 절차에 대한 법률이 마련되지 못해 지역 또는 기관의 개별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영국에선 관련 논의가 제도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선 판단 능력을 갖추고 있고 기대수명 6개월 이하인 성인에게 조력사를 허용하는 법안이 지난해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 심사가 회기 안에 끝나지 않아 폐기됐다. 스코틀랜드 의회도 지난 3월 비슷한 법안을 부결했다.

캐나다·호주서도 논란…중남미도 합류


유럽 밖에서도 죽을 권리를 제도화하는 움직임이 2010년대 중반 이후 활발해졌다. 캐나다·호주·뉴질랜드가 대표적이다. 캐나다는 2016년 사망이 예견되는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 조력사 제도를 도입한 뒤 2021년엔 그 대상을 넓혔다. 호주는 뉴사우스웨일스·빅토리아 등 6개 주와 수도 캔버라를 포함한 대부분 지역에서 조력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뉴질랜드도 2020년 국민투표를 거쳐 이듬해 관련 제도를 도입했다.
지난달 30일 프랑스 파리 앵발리드 광장에서 장애인 권리단체 회원들이 조력사망 법안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참가자들은 "죽을 권리가 아니라 살 권리를 보장하라" 등의 손팻말을 들었다. AFP=연합뉴스

중남미에선 콜롬비아와 에콰도르가 각각 1997년과 2024년 헌법재판소 판결로 안락사를 인정했다. 우루과이는 지난해 10월 중남미에서 처음으로 의회 입법을 통해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했다. 미국의 경우 의료진이 직접 약물을 투여하는 적극적 안락사는 금지돼 있지만, 오리건주를 시작으로 13개 주와 워싱턴DC가 의료 조력사를 허용했거나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2018년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하는 것만 허용한다. 그럼에도 2024년 조력존엄사법안이 국회에 발의되는 등 자기결정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AFP통신은 “2013년 동성결혼 합법화 이후 가장 중요한 프랑스의 사회 개혁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고 전했다.

■ 더,마음-고통 없이 아름답게 생을 마감하는 ‘깨끗한 죽음’은 과연 존재할까. 그 최전선을 목격한 의사에게 물었다.

「 “평온하고 깨끗한 죽음 아니다” 조력임종 목격한 의사의 경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42758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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