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해 위의 사람들’…베네수엘라 강진 20일째 라과이라를 가다

박윤서 2026. 7. 1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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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사망자 4800여명, 126년 만의 강진
아픔 되풀이된 라과이라의 맨손 구조
자원봉사자들이 15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주의 건물 잔해 위에 서 있는 모습.


베네수엘라 강진 발생 20일째. 15일(현지시간) 라과이라주의 해변 마을 마쿠토에 들어서자 외벽이 통째로 뜯겨 나간 건물이 줄지어 나타났다. 잘려나간 단면마다 침대와 옷장 식탁 등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지진은 집을 허물었고 그들의 삶을 길 위에 내놓았다. 잔해가 가까워질수록 매캐한 분진 사이로 열기에 찌든 들큼하고 텁텁한 냄새가 짙어졌다.

이곳에서 만난 데르윈 바에스(41)씨는 켜켜이 쌓인 폐허 위로 간이 천막을 치고 머무르고 있었다. 장모와 조카가 살아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생존 골든타임 72시간을 훌쩍 지난 시점이었다. 하지만 열감지 장비 화면에는 여전히 생존 가능성을 말하는 빨간 빛이 떠 있었다. 이 장비는 잔해 틈으로 새어 나오는 체온의 흔적을 붉은색으로 표시한다. 신호가 곧 생존 자체를 뜻하지는 않는다. 바에스씨도 이 사실을 알지만 쉽게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바에스씨는 “가족들이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희망이 발을 붙잡는다”며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가족의 시신을 찾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강진은 멈췄지만 3일 전만 하더라도 5.1 규모의 여진이 일었다. 그의 천막 옆으로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빠져 앙상하게 모습을 드러낸 철근이 곳곳에 있었다.

지진 현장 지휘관인 볼리바르 군 그라시아(가명·45) 대위가 15일(현지시간) 라과이라주의 한 무너진 아파트 앞 인형으로 만든 추모비 앞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에 따르면 14일 기준으로 482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진이 발생한 지난달 24일은 베네수엘라의 가장 큰 공휴일 중 하나인 ‘카라보보 전투 승리 기념일’이자 ‘세례 요한의 축일’이었다.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던 저녁 시간이었기에 인명 피해가 더 컸다.

아를레이 마리아 브리지(29)씨는 지진으로 일가친척을 모두 잃었다. 라과이라에서 차로 3시간 떨어진 지역으로 아들을 데리러 간 사이 가족들이 머물던 아파트는 강진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 아파트에는 180여 가정이 거주하고 있었다. 브리지씨의 가족을 포함해 이 현장에서 생존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포개져 내려앉은 아파트 앞에는 주민들과 군인들이 무너진 더미에서 인형을 모아 세운 추모비가 있었다. 브리지씨는 그 건물이 보이는 인근 주차장에서 머물고 있다. 그는 “정부의 적극적 도움이 없어 이곳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삽과 전동 파쇄기로 콘크리트 아래에 깔린 시신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브리엘 소우사(54)씨가 15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라과이라주 건물 잔해 아래에서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이번 지진은 126년 만에 베네수엘라를 덮친 강진이었다. 지난달 규모 7.2 지진이 일어난 지 39초 만에 7.5 규모의 본진이 연이어 발생했다. 수도 카라카스와 해안의 라과이라주가 큰 피해를 입었다. 지진 발생 20일이 지나면서 구조 국면은 생존자 수색에서 시신 수습과 이재민 지원으로 넘어가고 있다. 여진은 1200회를 넘겼고 이재민은 1만7000여명에 이른다. 잔해 위 바에스씨와 브리지씨도 이 숫자 안에 있다.

숫자가 이토록 커진 것은 지진 탓만이 아니다. 수년간 이어진 경제 붕괴로 베네수엘라의 재난 대응 체계는 무너져 있었다. 중장비가 부족해 주민들이 맨손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를 파헤쳤고 정전과 단수, 공항 폐쇄가 구호의 발목을 잡았다. 라과이라주는 1999년 폭우와 산사태로 수만 명이 숨진 ‘바르가스의 비극’을 겪은 땅이기도 하다. 라과이라가 당시의 바르가스다. 27년이 흘렀지만 그날의 무력함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자원봉사자 가브리엘 소우사(54)씨는 생업을 중단하고 8일째 잔해 더미로 들어갔다. 지상 7층 규모의 상가가 무너져 내린 자리, 힘없이 꼬여 있는 철근 사이로 그는 지지대 하나 없이 몸을 밀어 넣었다. 그 밑에 깔린 시신을 찾는 일이다.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소개한 그는 “이 일이 100만 달러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라과이라=글·사진 박윤서 기자 pyun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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