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왜 ‘나스닥行’ 선 긋나…“실탄 많고 리스크는 크다”

손재호,양윤선,박선영 2026. 7. 1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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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서초사옥 모습. 연합뉴스


삼성전자가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블룸버그통신 보도로 전해지며 국내외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ADR은 국내 주식을 예탁 기관에 맡기고, 이를 기초 자산 삼아 미국 증시에 상장해 거래하는 주식예탁증서다. 삼성전자가 미국 나스닥 시장에 ADR을 상장할 경우 미국 투자자 입장에서는 한국 증권 계좌를 개설하거나 환전할 필요 없이 달러로 삼성전자에 투자할 수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바로 “사실이 아니다”고 선을 그으며 소동은 사그라들었다. 그럼에도 시장에선 “ADR 상장 필요성이 아예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가 경쟁사인 SK하이닉스나 대만 TSMC처럼 나스닥 입성에 거리를 두는 데는 단순한 ‘실탄 확보’ 이상의 고차원적인 셈법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현재 자금 여력이 충분하고 사업 구조가 다변화돼 있어 해외에서의 자금 조달이 급하지 않은 데다 미국 시장 상장 시 뒤따르는 엄격한 공시 의무, 당국의 규제 부담 등을 고려해 ‘속도 조절’이라는 전략적인 선택을 내렸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삼성전자가 미국 증시 상장을 위한 ADR 발행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으며 투자은행들과 예비 논의를 진행했다고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초기 구상 수준의 논의로, 주관사나 구체적인 발행 로드맵 등 결정된 사항은 아무것도 없으며 실제 상장 여부 역시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매체는 삼성전자가 과거에도 ADR 발행을 검토했다가 철회한 이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삼성전자는 2000년대 초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며 실무 작업도 진행하다가 최종 단계에서 발을 뺐었다.

ADR 상장 검토 소식이 전해지자, 삼성전자는 즉각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평소 언론 보도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던 삼성전자로서는 이례적으로 수위 높은 반박 메시지를 낸 것이다.


그간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천문학적인 반도체 설비 투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미국 증시 문을 두드릴 수 있다는 관측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통상 최첨단 반도체 팹 1기를 짓는 데는 평균 60조원 안팎의 거액이 들어간다. SK하이닉스와 TSMC가 ADR 상장을 선택한 것 역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지난 10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뉴욕 나스닥 마켓사이트에서 열린 '오프닝 벨' 행사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곽노정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CEO) 등이 나스닥 ADR 거래 개시를 알리고 있다. 나스닥 제공, 연합뉴스


SK하이닉스는 지난 10일 ADR 상장을 통해 265억 달러(약 40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했다. 이 자금은 대부분은 국내 반도체 투자에 사용될 예정이다. TSMC는 1997년 ADR을 상장해 확보한 약 5억 달러를 당시로선 최첨당 공정이었던 8인치와 12인치 웨이퍼 공장 건설에 각각 투입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 ADR 상장이 갖는 실질적인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금 조달 관점에서의 필요성부터 따져봐야 한다. 삼성전자는 국내 유가증권시장뿐 아니라 런던 증시(GDR)에도 상장돼 있는 데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등 주요 글로벌 지수에도 편입돼 있어 해외 자금을 유치하는 데 큰 제약이 없다.

여기에 반도체뿐 아니라 스마트폰과 가전 등 다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현금창출력을 유지하고 있고, 대규모 현금성 자산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연결기준) 현금성 자산은 약 147조원으로, 재무 여력이 탄탄하다. 왕수봉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16일 “삼성전자는 SK하이닉스와 달리 사업이 반도체에만 집중돼 있지 않고 가전, 모바일 등 다각화돼 있다”며 “반도체 사업 부문 하나만으로 해외 상장 여부를 독단적으로 결정하기는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ADR 상장은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한 필수 수단이라기보다 기업가치 개선과 글로벌 위상 제고를 위한 선택지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면 ADR 상장을 추진할 경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까다로운 공시 요구와 집단소송 리스크 등 회사가 감내해야 할 부담은 한층 더 무거워질 수 있다.

그럼에도 ADR 상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기업가치 재평가라는 이점이 확실하다. 그동안 삼성전자는 미국에 상장된 경쟁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박한 평가를 받았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ADR 발행은) 해외 시장 진출 교두보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상장 자체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도 크다”면서 “향후 ADR 발행을 검토할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손재호 양윤선 박선영 기자 say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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