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헬리콥터 소리, 데이터센터 반대”…님비에 갇힌 AI

김기환 2026. 7. 16. 00:3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미국 유타주 의사당 앞에서 박스엘더 카운티에 건설할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데이터센터는 안 된다(NO DATA CENTERS)’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버지니아주 라우던 카운티 주민들은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소음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데이터센터에 쓰는 산업용 디젤 발전기 소음은 최대 105데시벨(dB)에 달한다. 헬리콥터가 머리 위를 지나가는 수준이다. 주민들은 NBC방송에 비행기 엔진이 돌아가고, 화물 열차가 철로를 지나는 듯한 소리가 밤낮없이 이어진다고 호소했다.

최근에는 데이터센터 소음 문제가 법정으로 번졌다. 미 위스콘신주 스터티번트 주민들은 지난 1일(현지시간) 마이크로소프트(MS)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냈다. 소송 대상은 인근 마운트플레전트에 들어선 MS의 초대형 데이터센터 ‘페어워터 1’. MS는 이 시설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라고 소개했지만, 주민들에겐 시끄러운 고철 더미일 뿐이다. 미시시피주에서도 xAI와 스페이스X를 상대로 데이터센터 소음에 대한 집단소송이 제기됐다.

AI 열풍을 이끄는 미국 곳곳에서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주민 반발이 거세다. “우리 동네에는 안 된다”는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 현상까지 벌어진다. 18일에는 50개 이상 도시에서 데이터센터 반대 시위가 열릴 예정이다. 지난 5월 갤럽 설문조사에서는 미국인의 71%가 주거지 인근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것을 다소 또는 강하게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자력발전소(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비율보다 20%포인트가량 높다.

시장조사업체 데이터센터워치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미국 내에서 주민 반대로 중단하거나 늦춘 데이터센터 건설 프로젝트는 75건, 사업 규모는 1300억 달러(약 200조원)에 달했다.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데이터센터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땅·물·전력 확보에만 집중하는데 ‘주민 수용성’이 변수로 떠올랐다.

데이터센터 건설에 따른 피해로 흔히 물 부족,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 환경 오염 등 문제를 언급한다. 뉴욕타임스(NYT)는 14일 전력망 운영사인 PJM의 분석 결과를 인용해 데이터센터 때문에 미국 13개 주에서 가정·기업의 전기요금 부담이 향후 3년 동안 63억 달러(약 9조4000억원) 더 늘어날 것이라고 추산했다.

하지만 당장 주민들의 반대는 ‘숫자’가 아니라 피부에 와닿는 소음 때문이다. 데이터센터는 열을 식히기 위해 대형 냉각팬을 24시간 가동해야 한다. 여기에 정전에 대비한 비상용 디젤 발전기와 일부 가스터빈 설비까지 더해 소음이 커진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빅테크 최고경영자(CEO) 사진을 들고 항의하는 시위대. [AP=연합뉴스]

주민 반발은 AI 산업의 성장 속도를 좌우할 변수다. 데이터센터 인허가 지연이나 프로젝트 취소가 늘어나면 빅테크의 AI 투자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AI 클라우드 기업 네비우스는 올해 사업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주민 반대 확산을 데이터센터 건설의 위험 요인으로 명시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는 14일 뉴욕주에서 50메가와트(㎿)급 이상 대형 데이터센터 건설을 최대 1년간 유예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처음이다. 데이터센터 환경 인허가를 중단하고 건설에 앞서 전력망과 수자원, 주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먼저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애리조나·일리노이·오하이오주 등은 데이터센터에 대한 세금 감면이나 각종 인센티브를 축소·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주민 달래기’ 성격이다.

AI 업계는 데이터센터 소음 측정 결과를 공개하고 설명회, 데이터센터 견학 행사를 여는 등 소통에 나섰다. 메타는 지난 13일 “루이지애나주에 건설하는 데이터센터 덕분에 세수(稅收)가 늘어나 인근 지역 교사들이 전년의 5배에 달하는 5만 달러(약 7500만원) 규모 성과급을 받았다”고 홍보했다.

김경진 기자

한국도 남 일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가 ‘3대 메가프로젝트’ 중 하나로 2035년까지 전국에 18.4기가와트(GW) 규모 데이터센터 확보를 추진하는 상황이라서다. 미국 사례는 사업 초기에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비슷한 갈등에 직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녹색연합과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사회단체 136곳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열어 메가프로젝트를 “개발 폭주”로 규정하고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이들은 “메가프로젝트가 막대한 국가 재정과 전력, 용수를 투입하면서도 생태적 한계와 기후위기 대응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 독산동 데이터센터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 [뉴스1]

서울 독산동에선 데이터센터 건립을 두고 주민 반발이 이어져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다. 주민들은 현장 인근에 주거지와 학교가 있다며 전자파와 유해 물질 발생, 소음 등 문제를 우려한다. 경기도 과천시 주암지구에서도 주민들이 데이터센터 건립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 밖에 용인·하남·김포·부천 등에서도 데이터센터 건설을 둘러싸고 주민 반대가 이어지고 있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원전 건설 과정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며 “(원전과 마찬가지로) 데이터센터 사업을 추진한 뒤 벌어지는 갈등을 봉합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업을 계획하는 단계부터 지역 주민과 충분히 소통하고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선제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기환 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