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으로 살았던 시간, 이주인권 활동가를 만들었다

한림세영 2026. 7. 1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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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만드는사람들] 강다영 성공회 용산-혜화나눔의집 이주인권 활동가

[기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은 공익활동가의 지역·영역·세대를 잇는 사회적 지지와 연대의 플랫폼, 2026 공익활동가주간과 함께합니다. 공익활동, 캠페인의 성과보다 그 일을 한 활동가 개인의 이야기에 시선을 맞추는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을 직접 만나 이들의 일과 삶을 기록합니다. <기자말>

[한림세영]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주인권 활동가 강다영
ⓒ 한림세영
인생의 절반을 이주민으로 산다는 것

- 이주민으로 살아온 경험은 다영님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나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갑작스럽게 중국으로 이주를 했어요. 제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주였고, 언어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됐어요. 이후 고등학교 2학년 때 다시 필리핀으로 이주하게 됐고, 대학은 홍콩에서 다니면서 청소년기와 청년기의 대부분을 여러 나라를 오가며 보냈어요. 적응 과정이 많이 힘들었고 설움도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 함께하는 이주민들의 어려움을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 다르구나' 혹은 '나는 어디에 속해 있지'라는 감각을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그런 감각은 늘 따라다녔던 것 같아요. 처음 중국에 갔을 때는 국제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영어로 수업을 들어야 했어요. 수업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앉아 있어야 하는 상황 자체가 큰 스트레스라 집에 돌아와 토를 할 정도로 힘들기도 했어요.

그때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그 안에 속하지 못한 느낌이 강했고, 이후 언어를 익힌 뒤에도 문화적 차이는 계속 경험했어요. 여러 나라를 오가면서 같은 농담이 통하지 않거나, 제가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표현이 상대에게는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이 반복됐어요.

그러면서 늘 어딘가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떠 있는 듯한 감각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계속 이주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특정 공간이나 지역을 고향으로 느끼기 어렵기도 했고요. 그래서 저는 장소보다 사람을 통해 소속감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 그런 경험은 지금의 다영님에게 어떤 영향을 남겼다고 생각하시나요?

"무엇보다 이주민에 대한 관점을 바꿔놓았어요. 제가 해외에서 생활할 때는 의료비 부담 때문에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병원에 가지 않고 상비약으로 버티는 일이 익숙했는데, 한국에서 이주민들을 만나면서 그 경험이 자연스럽게 겹쳐 보였어요. 왜 병원에 가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접근성이나 체류 상태, 경제적 조건 때문에 형성된 생활방식이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또, 이주인권 활동을 하면서 이주민들에게 한국에서 계속 생활하려면 한국어와 문화를 당연히 익혀야 한다는 기대가 깔려 있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하지만 여러 나라에서 살아보니 어떤 사회는 언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생활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있고, 누군가는 생계나 돌봄 때문에 배울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할 수도 있거든요.

이런 차이를 단순히 노력의 부족으로 해석하면 실제 현실을 놓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한국 사회에 이주민을 어떻게 적응시킬 것인가보다, 이주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었고, 사업이나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도 이런 관점을 반영하려고 해요."

활동가로서의 길
 강다영 활동가와 크리스마스 트리
ⓒ 강다영 제공
- 이주인권 활동가로서의 길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원래는 국제개발협력과 교육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한국에 돌아온 뒤 세계시민교육을 하는 단체에서 인턴으로 활동하고 있었어요. 당시 제가 다니던 교회에 필리핀 이주민 커뮤니티가 있었는데, 그분들과 친해지면서 병원이나 학교 관련 통번역을 돕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비자 없이 살아가는 이주민들의 일상의 어려움을 가까이서 보게 됐고, 인턴십이 끝날 무렵 국내에서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후 자케오 신부님의 제안으로 성공회 용산-혜화나눔의집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 처음 현장에서 만난 이주배경 아동·청소년들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에 남아 있나요?

"처음에는 이주민분들의 통번역을 도와드리면서 보호자를 통해 이주배경 자녀를 만나게 됐어요. 현장에서 만난 많은 이주배경 아동은 생각보다 큰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요.

특히 미등록 아동·청소년은 체류 불안 속에서 살아가거나 고등학교 후반이 되면서 자신의 체류 상태와 진로의 제약을 인식하며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았어요. 부모님은 미등록 상태를 알고 감내하며 살아가지만, 아동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성장하기도 하거든요.

현장에서 활동하며 이주배경 아동의 생애주기에 따라 필요한 지원이 달라진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영유아기에는 분유나 기저귀 같은 생계 지원이, 초·중·고 시기에는 장학금이나 주거·공과금 지원이 중요했어요.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사회에서도 이주배경 아동의 학교 접근이나 장학 지원 등 제도적 기반도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어요."

- 활동을 시작한 이후 개인적인 인식이나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가장 크게 느낀 건 지금 제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투쟁 위에 만들어진 결과라는 점이에요. 제가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미등록 아동이 학교에 다니기 위해 인우보증서가 필요했던 시기도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절차 없이도 학교에 갈 수 있게 바뀌었어요. 이러한 변화가 오랜 시간 다양한 사람들의 문제 제기와 노력의 결과라는 걸 알게 되면서, 사회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많이 생겼어요.

또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졌어요. 협업 활동을 하면서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대립하기보다,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만나고 대화하며 공동의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이주인권 활동은 변호사, 교사, 연구자, 공무원,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가 함께하고 있는데, 각자의 관점과 역할은 다르지만 그 차이를 조율하며 논의할 때 더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변화가 만들어진다고 느끼고 있어요.

실제로 용산구이주배경지원협의체에서 활동하면서 교사, 복지기관, 교육청, NGO, 상담기관 종사자 등이 함께 모여 각자가 가진 다양한 정보와 자원을 공유함으로써 훨씬 촘촘한 안전망을 설계할 수 있다는 걸 경험했어요.

또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기본권 향상을 위한 네트워크처럼 다양한 주체가 함께하는 구조에서는 연구자와 활동가가 현장을 정리하고, 변호사와 협력해 법적 언어로 바꾸고, 언론과 함께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과정이 이어지면서 실제 제도 변화로 연결되기도 했어요. 서로 다른 위치의 사람들이 연결될 때 변화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면서, 지금은 더욱 연대의 힘을 믿게 됐어요."

현장에서의 경험
 강다영 활동가의 이주인권 활동 현장
ⓒ 강다영 제공
- 현장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국제 사회에 알리기 위해 2025년 5월에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대한민국 정기심의 대응에 참여하셨는데요, 이 경험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심의 과정에서는 현장의 사례와 목소리를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했어요. 정부 보고서만으로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나 권리 침해의 맥락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민사회 측 심의 참여자들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이를 보완하려고 노력했어요.

예를 들어 장기체류 기반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한국에서 26년을 살아오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고 강태완님의 사례를 통해 제도적 공백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설명했고, 아리셀 참사 같은 경우에도 공장의 구조도와 하청 구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면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이주노동자가 왜 더 위험한 조건에 놓일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했어요. 함께 준비한 이런 자료들이 위원들이 문제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느꼈어요.

이런 유엔 심의는 단순히 외부에 문제를 알리는 것을 넘어, 국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근거를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느꼈어요. 심의 이후 발표되는 위원회의 권고는 정책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국내에서 정부와 논의할 때도 중요하고, 특히 권고가 구체적일수록 현장에서 더 직접적인 힘을 갖거든요.

장기체류 이주배경 청소년과 관련해서 '재정적으로 현실적인 체류 경로를 마련하라'는 취지의 권고가 나왔을 때, 이를 바탕으로 미등록 체류자 구제 과정에서 과도한 범칙금이 장벽이 되는 것에 대해 계속 문제제기할 수 있었어요. 결국 심의 대응 과정은 현장의 경험을 국제 인권의 언어로 번역해 전달하고, 이를 다시 국내 변화의 동력으로 연결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 현재 현장에서 어떤 당사자를 주로 만나고 계신가요? 그들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최근에는 이주배경 후기 청소년을 가장 많이 만나고 있어요. 이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한국에 계속 머물고 싶어 하지만 현실적인 선택지가 제한적인 경우가 많아요.

가장 큰 문제는 대학 진학과 체류자격이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한국에서 오래 살아왔더라도 외국 국적 자녀는 등록 여부와 상관 없이 유학생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재정능력 증빙이 필요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어요. 실제로 학생회장까지 맡으며 학교생활을 열심히 해서 대학교에 합격하고도, 체류자격과 경제적인 문제로 진학하지 못한 사례도 있었어요.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도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아요. 내국인은 등록금 상한 규제가 있지만, 유학생은 학교가 등록금을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어서 매년 인상 부담이 크고, 학자금 대출과 장학금도 제한적이에요.

주거 문제도 큰 부담인데, 월세는 점점 오르는데 지역에서 오래 살아왔어도 외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기숙사나 공공 주거 지원에서 제외되기도 해요. 그래서 생활비와 학비를 감당하기 위해 학업과 일을 병행하게 되고, 이것이 다시 학업에 부담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졸업 이후에는 선택지가 더 좁아져요. 만 24세까지는 취업비자(E-7-Y)를 통해 취업이 가능하지만, 직종이 제한되어 있고, 비자 구조상 이직이나 경력 전환도 자유롭지 않아요. 결국 현장에서 만나는 이분들이 겪는 어려움은 체류자격과 교육·노동·주거 등이 모두 연결된 구조적 불안정성이라고 생각해요."

- 체류 자격의 불안정성이 다양한 권리 침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말씀해주셨는데요,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주배경 발달장애 아동이 하교 중 실종된 사건이 있었어요. 학교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부모가 경찰서에 출석해 아이의 인상착의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미등록 체류 중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아이를 찾는 수색이 진행되는 와중에 어머니가 구금되는 일이 있었어요.

당시 어머니는 충분한 설명과 통역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출입국 조사와 구금을 겪었고, 구금 후에는 디스크 질환이 있었는데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어요. 아이는 다행히 발견됐지만, 체류 자격 문제가 위기 상황에서 공권력의 도움을 요청할 권리, 가족결합권, 아동의 생존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거죠."

변화를 만드는 일 그 너머
 강다영 활동가의 이주인권 활동 현장
ⓒ 강다영 제공
- 활동가로 살아가며 보람찼던 경험이 있다면요?

"학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이주배경청소년의 체류 자격 기반 진로 상담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많은 선생님들이 처음 알게 된 내용이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어요. 예전에는 제가 직접 학생 상담에 동행하며 체류자격에 따른 대학 진학이나 취업 가능 여부를 설명해야 했지만, 지금은 교육을 통해 선생님들이 그 구조를 이해하고 상담할 수 있게 되면서 현장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걸 느낄 때 뿌듯해요."

- 반대로 좀처럼 바뀌지 않는 현실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 적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구조적인 장벽이 너무 크다 보니 압도되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어요. 심리적으로 우울감이나 무력감이 찾아오는 순간도 있고요. 그럴 때는 활동가 상담 지원을 받거나 동료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에요. 동료들이 같은 문제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다시 힘을 얻고는 해요. 활동은 이런 관계와 연대, 돌봄이 있어야 지속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 그럼에도 계속 목소리를 내고 활동을 이어가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가요?

"제 활동은 현장에서 필요한 문제를 따라가며 방향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특정 의제를 고정적으로 다루기보다 이주민의 생애주기와 현실 변화에 맞춰 계속 조정되고요. 예전에는 미등록 이주아동 지원 자체가 거의 없던 시기도 있었는데, 지금은 여러 단체가 그 영역을 함께 다루고 있어요.

그러면 또 다른 사각지대가 드러나고, 그 빈틈을 찾아 변화를 만드는 일이 남게 되거든요. 이미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동시에 아직 보이지 않는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 활동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그 반복 속에서 계속 이어가게 될 힘을 찾는 것 같아요."

- 앞으로 한국 사회가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에게 어떤 사회가 되었으면 하나요?

"한국 사회가 단순히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을 기존 체계에 적응시키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 변화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해요. 저는 통합(integration)보다 포용(inclusion)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들을 기존 사회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회 자체를 함께 만들어가는 방향이어야 한다고 봐요. 앞으로 이주민 인구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이들을 미래의 구성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으로 인식하고 지금부터 사회가 준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다영 활동가의 이주인권 활동 현장
ⓒ 강다영 제공
 강다영 활동가의 이주인권 활동 현장
ⓒ 강다영 제공
 세상의 변화에는 늘 공익활동가가 있습니다. '공익활동가주간'은 공익활동가들에 대한 존중과 지지를 바탕으로 사회적 인정 문화를 만들기 위한 전국 단위의 행사입니다. 2026년에는 6월 29일부터 7월 3일까지 일주일 동안 전국 곳곳에서 공익활동가를 응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연대의 장이 열렸습니다.
ⓒ 공익활동가주간추진위원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변화를만드는사람들 홈페이지, 소셜임팩트뉴스에도 실립니다. 글쓴이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상근활동가로 국제연대와 아동·청소년 인권 분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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