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리의 인생]“학교 지배하는 ‘기분 상해 죄’…학생 불편은 교사 죄”
" "동료가 죽어 나갔다. 내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었다. " " (『무기력 교사의 탄생』공동 저자 곽노근 교사)

대한민국 공교육은 발령받은 지 2년 차인 박모 교사가 본인이 근무하던 학교에서 생을 마감한 서울 서이초 사건(2023)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우리 교육현장의 긍정적 변화 계기가 됐다는 얘기가 아니다. 거꾸로 '내 새끼 지상주의'(소설가 김훈)를 앞세운 '괴물 학부모'의 폭주 앞에 극심한 공포와 무기력에 시달리던 교사들에게 "나만 살아남았다"는 죄의식까지 더해졌다. 올해만큼 더웠던 3년 전 여름, 박 교사 죽음에 분노해 태양이 작열하는 거리로 쏟아져나온 전국 수만 교사들은 '교육권 보장'과 '악성 민원인 처벌'을 요구했다. 하지만 교육권 보장은커녕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사건 직후 "남자친구와의 결별로 인한 자살"이라며 유족에게 빠른 장례를 종용(유족 측 주장)했던 관할 서초서는 동료 교사 제보와 교육부 조사 등으로 악성 민원인 존재가 드러났음에도 그해 11월 '범죄 혐의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가해자가 없다는데 그럼 박 교사는 왜 그런 선택을 한 걸까. 유족과 교원단체의 재수사 촉구마저 묵살되면서 누구도 그 이유를 알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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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눈길 가는 서이초 경찰 수사
무자비한 고소 고발에 무방비
운 좋아야 살아남는 대한민국 학교
아이 좋아서 떠나지 못한다
」

이제 와서, 경찰 아버지를 둔 살해범 장윤기 사건이 동료 경찰 도움으로 초기에 은폐 시도된 것처럼 이른바 '연필 사건'의 갑질 학부모로 지목된 학부모 직업이 경찰과 검찰 수사관이라는 게 영향을 끼쳤을지 의심을 품어봐야 소용없다. 그새 숱한 교사를 퇴직과 정신병원으로 몰아넣은 악성 민원은 잦아드는 대신 더 그악스러워졌다. 못 믿겠다면 지난 2021년부터 지금까지도 수사와 재판(무죄 판결, 재정 신청 기각, 다른 죄목 고소 등)이 이어지고 있는 전주 초등학교 '레드카드 사건'을 검색해보기를 권한다. 다른 비슷한 사건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2026년,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이 나왔다. 서이초 사건 등 실제 사건을 소재 삼았지만 '고구마' 현실과 달리 '사이다' 결말로 환호받았다. 하지만 교사들은 혹독한 처지에 공감해주는 이 드라마에 마냥 박수만 칠 순 없었다. 아무리 판타지라고는 해도 학교에선 불가능한 폭력을 해법으로 쓰는 데다 문제 해결 주체가 학교 안 교사가 아니라 학교 밖 군인으로 설정된 탓이다. 교사는 드라마 속에서도 여전히 무기력하다는 말이다.
교육감조차 안이하게 보는 교육 현실
교대 동기지만 9살 차이, 근무지도 경기도 파주와 충남으로 각기 달라도 서이초 사건 이후 공교육 관련 문제의식만큼은 공유하는『무기력 교사의 탄생』(2025)의 두 저자 곽노근(43)·권이근(52) 교사도 그렇게 느꼈다. 책에서 "각자도생의 싱크홀, 대한민국 학교는 죽었다"고 선언하고도 여전히 학교에 남은 두 교사를 지난 12일 만났다. 교사를 짓누르는 학부모의 아동학대 고소라는 무기, 교대(대학)에서는 물론 발령받은 학교에서도 정작 본업인 교과 연구나 학생지도 관련 재교육은 없다시피 한 대신 무려 130개의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현실을 얘기했다. 특히 권 교사는 경기도에 임용되고도 시골 살려고 충남 홍성에 가 스스로 '시골 혁신학교 교사'가 됐는데, 아동학대 고소(2021)로 한때 진지하게 교직을 떠날 고민을 했었다. 안혜리 논설위원
Q : -드라마 '참교육' 봤나.
A : (곽노근, 이하 곽) 웹툰(2020년 11월 연재 시작)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봤다. 그땐 교사로서 폭력을 인정할 수 없어 비판적이었는데, 드라마는 마냥 비판만 할 순 없더라. 서이초 이후 관심이 사그라지던 차에 다시 한번 부조리한 교육 현장 문제를 환기해줬으니까. 다만 드라마가 인기를 얻자 안민석 경기교육감이 교권보호국을 도입한다며 '해병대·특전사 출신 연락 달라'고 하는 걸 보고 답답했다. 교육감조차 교육을 이렇게 안이하게 보고 있구나 싶어서.
A : (권이근, 이하 권) 하루 만에 '참교육' 시리즈를 정주행했는데, 서이초 모티브의 5화만 차마 못 보고 나중에 봤다. 지금 학교를 지배하는 건 드라마보다 더한 '기분 상해 죄'다. 학생이, 또는 학부모가 무슨 이유에서든 기분 상하면 그게 곧 교사의 죄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동학대로 신고당하기 바로 일주일 전 내가 직접 애들한테 아동학대 예방 교육을 했다. 베트남 출신 맞벌이 엄마를 둔 경계선 지능이 의심되는 아이한테 어떻게든 수학 공부시키려 이런저런 시도를 하던 차에 지휘봉으로 배를 한번 찔렀는데, 애가 기분이 나빠져서 경찰서에 신고 전화를 했다. 내가 알려준 번호였다. 바로 경찰이 왔다. 매뉴얼대로 지자체의 아동복지과 조사 등을 다 받았다. 나뿐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 모두 조사받았다. 아무 일 없이 넘어갔지만 뼈를 갈아 넣을 정도로 헌신했던 터라 충격이 상당했다. 이듬해 딸을 아내와 함께 친척이 있는 캐나다로 유학 보냈고, 나 역시 휴직하고 지난해 1년 동안 캐나다에 머물다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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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라는 망령
![서이초 사건을 모티브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 제 5화에서 학부모(왼쪽)가 교사를 윽발지르는 모습. [사진 넷플릭스]](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7/17/joongang/20260717165908147pvfb.jpg)
Q : -학생 인권 우선시하는 학생인권조례 제정(경기·2010)과 교사 체벌 금지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2011), 아동학대처벌법 개정(2016) 등의 영향이 큰가.
A : (곽) 그렇다. '(동작동 초교) 오장풍 교사 사건'(2010)처럼 교사의 이례적으로 심각한 폭행이나 체벌의 옳고 그름은 일단 젖혀두고, 학생의 문제 행동을 훈육할 때 교사가 체벌을 활용해온 게 현실이다. 그런데 문제 학생을 통제해온 강력한 힘인 체벌이 갑자기 사라졌다. 학생은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됐고 무법천지 교실 안에서 교권 붕괴가 시작됐다. 학생 인권 지키는 데만 혈안이 돼 교사의 체벌만 금지할 게 아니라 체벌의 빈자리를 메울 시스템을 같이 마련했어야 했는데 제도 바꿀 힘을 쥔 교육 당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무질서 교실을 바꿔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교사는 일부 학부모의 아동학대 고소전의 먹잇감이 됐다. 입양아를 학대해 살해한 '정인이 사건'(2020)을 계기로 가정 내 아동학대를 막고자 만든 '정인이 방지법'(2021·아동학대범죄 처벌 특례법, 신고 즉시 수사 착수)이 학부모가 교사를 위협하는 수단으로 변질했다. 법의 허점이 알려지면서 고소 고발이 남발되고 있다. 운 나쁘면 당할 수밖에 없다. 교사의 나이나 경험과 무관하게 어떤 학부모를 만나느냐, 그 운에 교사의 운명이 달려 있다. ※지난 11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엔 반 친구에게 피해를 끼친 문제행동 탓에 자녀가 강제전학을 가게 되자 당시 교사를 향해 끝없이 민원과 법적 조치를 반복하는 한 학부모의 인터뷰가 나온다. 그 엄마는 "우리 애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 …선생님을 좀 조지고 싶다"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누구나 그렇게 마음먹을 순 있지만, 온라인 쇼핑몰 배송 문의보다 더 손쉽게 실제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건 큰 문제다.
막을 수 없는 괴물 학부모
![지난 11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참교육과 시한폭탄 지금 우리 학교는' 한 장면. [사진 SBS]](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7/17/joongang/20260717165908396yoyy.jpg)
Q : -이른바 '괴물 학부모'가 실제 많은가.
A : (곽) 절대 숫자를 떠나 많아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과거엔 언론에서나 접하는 극히 예외 케이스였다면, 점차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 당한 사례, 이젠 우리 학교 동료 교사의 문제 등으로 점점 내게 가까워진다. (권) 더 큰 문제는 교사를 향한 무자비한 고소 고발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교사 혼자 외롭게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교사들이 노조나 교원단체를 많이 드는 이유다. 운 나쁘게 당했을 때 학교는 물론이고 교육청·교육부 등과 달리 보호막이 돼주기에 방패막이 삼아 가입한다. ※2017년 출범한 교사노조는 2022년 5만명 수준의 조합원 수가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2024년 현재 12만명이 넘는다. 한때 9만 명 넘던 전교조 조합원 수는 4만 명으로 줄었다.
Q : -초등 교실도 중·고와 마찬가지로 통제 불가인가.
A : (곽, 권) 조심스럽지만 장애아 통합수업이나 한국어 못하는 외국인 학생, 늘어나는 ADHD 학생 문제 등이 교사 어려움을 가중하는 현실을 말하고 싶다. 통합교육을 지향하면서 웬만한 학교는 특수학급을 운영한다. 일반 교사가 특수반 아이들의 특정 교과목 수업을 담당한다는 얘기다. 또 요즘은 다문화 가정뿐 아니라 아예 부모 둘 다 네팔·시리아 등 한국어 못하는 외국인 학생도 꽤 있다. 그런데 교대 4년 동안 특수교육은 고작 2~3학점이 전부다. 외국인 학생을 비롯한 생활 지도는 대학에서든 이후 학교에서도 아무 교육을 받지 못한다. 오로지 교사 혼자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수업에 집중 안 하고 분노 조절 안 되는 아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해당 교사뿐 아니라 결국 다른 학생도 피해를 본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Q : -왜 학교를 떠나지 않나.
A : (권) 3년 만에 두 번째로 담임을 맡은 자폐 학생이 있다. 1학년 땐 무슨 생각하는지 너무 궁금해서 관련 드라마를 다 찾아봤지만 알 수 없었다. 4학년이 되고 나서 점점점 소통이 됐다. 아이 마음을 이해하는 순간 너무 행복했다. (곽) 애들은 어른과는 다른 부류다. 함께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재밌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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