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본색’, ‘동방불패’를 만든 여걸 시남생, 영원히 잠들다 [송원섭의 와칭]

홍콩 영화계의 전설적인 프로듀서 쉬난선(施南生)이 13일 밤 면역체계 이상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1951년생으로 향년 75세.
찬란했던 1990년대 홍콩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쉬커(徐克) 감독의 전 부인이며 ‘80년대 홍콩 영화’라는 장르를 만든 위대한 프로듀서 쉬난선에 대해 들어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아마도 쉬난선, 혹은 난선 시(NansunShi)라는 이름보다는 ‘시남생’이라는 이름이 더 친근할 수 있겠죠.
그의 죽음은 그 자체로 홍콩 영화의 장엄한 조종처럼 느껴집니다. 이하는 그의 생애와 그가 홍콩 영화에 미친 영향에 대한 추모의 글입니다. 느낌을 살리기 위해 지금부터 인명 표기는 그 시절 우리가 불렀던 한자음을 그대로 사용하고자 합니다. 쉬커보다는 서극, 쉬난선보다는 시남생, 저우룬파보다는 주윤발, 장궈롱보다 장국영이 더 친숙한 세대를 위해서.

홍콩 태생인 시남생은 영국 런던 폴리테크닉에서 통계학과 컴퓨터를 전공한 엘리트입니다. 귀국 후 홍콩 방송사 TVB와 광고업계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1978년, 27세 때 막 떠오르던 신인 감독 서극을 만나 평생의 동료가 됩니다.
서극과 시남생은 1980년, 당시 홍콩의 젊고 재능있는 영화인들과 합류해 신예성공사(Cinema City)를 설립합니다. 당시 이들 일곱명을 홍콩에서는 ‘신예성 칠인소조(新藝城 七人小組)’라고 불렀습니다.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맥가(麥嘉, 영화 ‘최가박당’ 시리즈의 대머리 형사로 유명했습니다), 석천(石天, 영화 ‘영웅본색2’에서 주윤발의 보스 역으로 유명합니다), 황백명(黃百鳴, ‘영웅본색’, ‘천녀유혼’ 등 홍콩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 증지위(曾志偉, 배우. 아마도 ‘첨밀밀’의 삼합회 보스나 ‘무간도’의 중간보스 역을 기억하실 겁니다), 테디 로빈(Teddy Robin, 홍콩 영화의 대표적 영화음악가)이었습니다. 이들은 각각 배우나 작가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감독, 프로듀서 등 상황에 따라 모든 역할을 해결하는 올라운드 플레이어들이었죠. 이 멤버들에게서 1990년대 홍콩영화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기서 서극과 시남생은 독립해 1984년 제작사인 전영공작실(Film Workshop)을 창립합니다. 물론 신예성공사와 인연을 끊은 것이 아니고, 서극과 시남생이 만들어내는 대부분의 영화에서 신예성공사는 투자와 배급을 담당합니다. 그리고 그 시절의 사람들은 다같이 입을 모아 ‘이 모든 것의 뒤에는 시남생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시남생의 절친이며 동료인 배우 임청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가장 재능있는 감독이며 프로듀서인 서극은 연처럼 하늘을 훨훨 날았다. 그러나 그 연줄을 잡고 땅에 버티고 있는 사람은 시남생이었다. 시남생이 모든 것을 해결했기에 서극은 재능을 펼칠 수 있었다.” 홍콩에서는 두 사람을 김용의 작품에 나오는 양과와 소용녀에 비유, ‘신조협려(神鵰俠侶)'라는 호칭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의 협력에 의해 우리가 아는 1980~90년대 홍콩 영화의 걸작들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1986년, ‘영웅본색’의 히트가 그 시작이었죠. 이후 ‘천녀유혼’, ‘소오강호’, ‘동방불패’, ‘신용문객잔’, 그리고 ‘황비홍’ 시리즈가 이들의 대표작입니다. 서극이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통해 어떤 경우에는 감독으로, 어떤 경우에는 시나리오 작가와 창작 프로듀서로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사이 시남생은 그 아이디어들에 현실적인 감각을 부여하고, 그 작품들이 중국어권 시장을 넘어 한국을 비롯한 세계에서 흥행할 수 있는 발판을 다졌습니다.

오랜 동료였던 두 사람은 1996년 마침내 결혼에 이르지만, 2014년 서극의 외도설과 함께 결별했습니다. 하지만 이혼 뒤에도 두 사람은 서로의 가치를 존중하며 파트너십을 이어갔습니다. 시남생은 계속해서 서극이 감독한 ‘타이거 마운틴’, ‘서유복요편’에서 프로듀서를 맡았고, 역시 서극이 기획한 영화 ‘적인걸’ 시리즈를 히트시키며 명성을 이어갔습니다.
두 사람은 2025년, 홍콩 영화를 대표하는 제43회 금상장 시상식에서 평생공로상을 공동으로 수상했습니다. 당시 병중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시상식장에 나선 시남생은 "영화 상영이 끝나고 불이 켜진 뒤에도 스크린에는 수많은 이름이 계속해서 올라갑니다. 대다수 관객은 그 이름들을 단 하나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바로 우리 영화계의 동료들이자 형제들입니다. 그들의 지지와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가 영화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니,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려야 합니다”라는 감동적인 수상 소감으로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이때도 임청하가 시상자로 나섰고, 많은 사람들은 시남생의 건강한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1년 뒤 서거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홍콩의 대표적인 영화인들에게 ‘남생 누님(南生姐)’이라고 불렸던 시남생. 이제 그의 죽음은 지난 세기, 화려했던 한 시대의 마감을 알려 주는 느낌입니다.
송원섭 song.weonseo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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