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이 사회를 비범하게 만들 수 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은 공익활동가의 지역·영역·세대를 잇는 사회적 지지와 연대의 플랫폼, 2026 공익활동가주간과 함께합니다. 공익활동, 캠페인의 성과보다 그 일을 한 활동가 개인의 이야기에 시선을 맞추는 이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을 직접 만나 이들의 일과 삶을 기록합니다. <기자말>
[윤여진]
"책 이름을 모르는 것보다 길섶에서 매번 마주치는 꽃 이름을 몰라서 얼굴이 빨개지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활자책보다 사람책, 자연책을 더 즐겨 읽는 세상을 위하여, 건배."
- 박총, <읽기의 말들>, 유유 출판사
'책'이라고 하면 보통 글씨나 그림이 쓰여있는 활자책 또는 전자책을 떠올리지만, 이 외에도 사람책, 자연책이 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에는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속담이 있는데요. 이는 사람책을 일컫는 것이겠죠.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활동가 인터뷰로, 20년을 넘게 알고 지내는 선배 활동가 <김유리>를 읽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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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를 맡은 생명의숲 윤여진 활동가 (왼쪽), 그리고 사단법인 시민의 김유리 사무처장 (오른쪽) |
| ⓒ 윤여진 |
"사단법인 시민에서 3년째 활동하고 있는 김유리입니다. 전에는 시민사회 중간지원 조직인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했어요. 반우스개소리로 '시민사회활성화에 미친 자', 일명 '시친자'라고 말하곤 다녀요."
- 사단법인 시민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이고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나요?
"'공익활동이 활발한 사회를 꿈꾸는 정책 플랫폼'이라는 미션을 가지고 있어요. 시민사회가 좀 더 단단한 제도 기반에서 활동할 수 있게끔 역할하고 있어요. 주로 정책 연구를 기반으로 정책 제안을 하는 방식인데요, 사단법인 시민이 혼자서는 할 수 없어서 네트워크 기반으로 협업합니다. 또한 시민사회 활동가 성장을 위한 지원활동 또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최근에 좀 더 주력하고 있는 활동은 시민사회의 지식 생태계를 만드는 일인데요. 시민사회의 시선에서 현장 연구자를 발굴하고 연구물을 공유하고, 그들이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일들을 하고 있어요.
사무처 식구가 최근 세 명이 되었는데, 활동의 기반을 넓히고 확장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사단법인 시민은 13년 전에 시민사회 활성화를 위한 전국 단위의 전담 지원 조직이 필요한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시민사회가 함께 만든 조직입니다. 그렇기에 이와 관련되어 있는 전문가와 시민사회 관련자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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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단법인 시민의 동료 김승순 실장(오른쪽)과 함께 피켓을 들고 있다. |
| ⓒ 김유리 제공 |
- 활동가가 된 계기가 사건이 있을까요? 본인을 변화하게 한 활동이 있다면?
"저는 특별한 계기가 있다기 보다는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문득 흘러 들어왔어요. 대학을 졸업할 때부터 시민단체에 관심이 많았으나, 그 생활을 해 낼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교육 콘텐츠 개발 회사 그리고 출판사에서 일을 했어요. 일을 하면서 계속 시민단체에 대한 궁금증이 계속 남더라고요. 그래서 더 나이 들기 전에 한번 뛰어들어 보자는 마음으로 시민사회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요즘의 젊은(?!) 활동가들은 세월호 참사라든지 강남역 사건, 구의역 참사 등 활동의 계기가 되는 사건들이 있더라고요. 저는 그냥 잔잔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저는 소위 학생운동 세대도 아니고, 학교 다닐 때도 주변에 저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도 딱히 없었어요. 그런데도 시민단체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과 호기심이 있었어요. 저는 비록 학생운동을 해 본 경험도 없지만,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시민운동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진짜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그때부터 몇몇 단체들을 관심 두고 보기 시작했어요.
2002년에 '생명의숲'이라는 환경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직업 활동가의 시작이었어요. 저는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는데, 당시만 해도 학교 교육이 정보화 교육이나 영어교육 등에 집중되던 시절이었는데, 생명의숲이라는 민간환경단체가 '숲이 있는 학교'라는 콘셉트로 '학교숲운동'을 펼쳤던 게 상당히 인상적이었어요. 처음부터 환경단체를 고집하였던 것은 아니었고, 인권 단체 등 여러 단체를 기웃거렸는데, 당시 EBS 다큐에 나왔던 학교숲에 대한 이야기에 매료되어서 생명의숲으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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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현장의 김유리 (왼쪽), 윤여진 (오른쪽) |
| ⓒ 윤여진 |
"시민사회에서 활동한 지 올해 24년이 넘어가는데요. 생명의숲이라는 숲생태계에서 10여 년, 시민사회 지원생태계에서 10여 년 활동을 한 것 같아요. 앞선 전반기에서 가장 기억이 나는 것은 '학교숲운동'이에요. 특히, 학교숲을 매개로 아이들이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대화할 소재가 생기고, 학교숲을 통한 행동의 변화들을 보면서 이 운동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죠. 특히, 민간단체에서 기업과 협력하여 이 운동을 시작했다는 점이 뜻깊고요.
시민사회 지원생태계에서 기억나는 건, 코로나 시기에 비영리법인 온라인총회에 대해 유권해석을 얻은 것이 기억에 남아요. 당시 정부는 모이지 말라고 하는데, 비영리법인 총회는 대면이 필수인 모순적 상황에서, 정책의 길잡이가 부재한 상황이었어요. 이런 점을 이슈레이징한 점이 의미가 있었어요. 비영리법인 의사록 공증 이슈도 같은 시기에 제기하였는데, 의사록 공증 예외제도가 있는 것을 다수의 비영리법인이 모르고, 그걸 추천해야 하는 주무관청도 제도에 대한 이해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 이슈도 여러 단위와 같이 협업해서 이슈 공론화를 한 점이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아요. 드러나지 않았던 이슈들을 발굴하고, 공론화시키고, 정책화시킴으로써 중간지원조직도 충분히 제도정책 지원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줬던 사례들이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2021년 오세훈 시장이 '서울시 바로 세우기'를 내세웠는데요. 지난 10년간 시민사회 분야 민간 보조와 민간 위탁 사업 추진 과정에서 뿌리박힌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취지였습니다. 고 박원순 전 시장 시절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예산이 1조 원에 달하는데, 이를 두고 '서울시가 시민단체의 ATM으로 전락했다'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이때 서울시NPO지원센터를 비롯한 중간지원조직의 예산 삭감 계획이 발표되었는데,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3일 동안 전국의 1170개 시민사회단체가 연서명을 해주었어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분들이 지지해주어서 감사함이 컸죠.
그때 시민사회 공동 성명서뿐만 아니라 서울시NPO지원센터 생각을 담은 성명서 초안을 준비했는데, 당시 센터 구석진 회의실에서 성명서 초안을 혼자 쓰면서 마치 독립운동 투사가 된 것처럼 마음이 울컥해지더라고요. 시민사회의 가치를 이렇게 폄훼하는 것에 대해 못 견디게 모멸감이 느껴지고, 비단 센터라는 중간지원조직에 대한 평가 절하를 넘어서 시민사회 전체를 평가 절하하는 것 같아서 자괴감과 동시에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 활동을 하면서 어렵다고 느낀 것은 무엇일까요?
"시민사회 활성화라는 것이 시민들에게 굉장히 추상적일 수 있다고 봅니다. 10년 전, 20년 전에도 시민사회 활성화는 여전히 필요했고 지금도 그래요. 이를 위한 제도 개선 운동을 하는데 제도를 바꾸는 것은 참 어려워요. 호주제 폐지 운동도 몇십 년이 걸렸고, 생명안전기본법도 그랬습니다. 시민사회 활성화가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매우 시급한 사안은 아니라서 진전이 더딘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아젠다를 지금까지는 선배활동가들이 주로 끌고 갔는데, 저도 그분들 사이에서는 후배세대 격이거든요. 그런데 저와 같은 세대 이후 이 아젠다를 끌고 갈 사람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흐름을 이어서 끌고 갈 동료활동가들을 계속 만들어내야 하는데, 이제 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세대가 된 것 같아서 고민이에요.
또한 점점 '시민사회'라는 말이 사라지고 있어요. '임팩트 지향조직'이라든가 '소셜섹터'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활동가 대신 '매니저'나 '코디네이터'라는 말로 대체되고 있어요. 고유한 색깔이 옅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 운동을 끌고 갈 수 있는 힘이 우리 사회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 저 역시 시민사회 영역이 좀 희미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설 자리가 줄어든다고 하잖아요. 시민단체가 매개체가 되어 역할을 하는 것보다 개개인이 활동 범위가 커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시민운동은 특정 개인의 탁월함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봐요. 이보다는 개개인 사람들의 힘이 모여, 시민사회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을 갖게 되는 것이 시민운동다운 활동 방식인 것 같고 저는 그런 시민운동을 선호해요.
또 단체의 사무처장이라면 모두 같을 텐데요, 조직의 재정 안정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네트워크 기반으로 활동을 하다 보니 연대해야 하는 일들이 더욱 많아집니다. 하지만, 이 모든 활동이 재정으로 다 연결되는 것은 아니니 재정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조직마다 큰 과제인 것 같아요. 사무처장의 고유역량 중의 하나로 모금역량을 중요하게 언급하지만, 이 역시도 예전에 선배세대 활동가들에게는 유효하였으나 '지금의 활동가들에게 그 역량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라는 생각이 있어요.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방식처럼 느껴질 수 있거든요."
- 누군가가 사단법인 시민에게 100억을 준다면 어떤 활동을 마음껏 해보고 싶나요?
"지금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시민 창립 초기에 시민 펠로우십 사업이 있었어요. 10년 이상 된 활동가들이 자기 경험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으로, 1인 300만 원을 지원했었어요. 그 기록은 활동가 본인에게도 자양분이 되고, 또 활동을 이어가는 후배 또는 동료에게도 전달하고 연결될 수 있지요. 3기까지 운영되다 중단이 됐어요. 그렇게 '사람을 지원하는 펠로우십' 사업을 해보고 싶어요. 활동가들이 본연의 활동을 더 잘하고, 더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 펠로우십 활동은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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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지식컨퍼런스에서 사회를 보는 김유리 처장 |
| ⓒ 사단법인시민 |
-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너무 거창하거나 어렵다면, 어떤 활동가 혹은 어떤 리더로 남고 싶은가요?
"엄기호 사회학자의 책 <단속 사회>에 '곁'이라는 단어가 나와요. '편'이 아닌 '곁'이 되고 싶어요. 제가 지원 조직에 있는 것은 저는 '활동하는 사람'에 주목하기 때문이에요. 활동하는 사람이 활동을 더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노력하고 싶어요. 늘 시민사회 공공재가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는데, '곁'이 된다는 것도 시민사회 공공재 역할과 연관되어 있긴 해요."
- 활동가로의 역량을 키우고 성장하기 위해 어떤 것을 하고 있나요?
"요즘, 비영리활동가학교 엣지의 교육을 열심히 듣고 있어요. (엣지, 보고 있나요? 하하)
그리고 책을 열심히 읽고 있어요. 얼마 전에도 누군가가 롤모델이 있냐고 물어봐서 '롤모델이 없다'라고 한 적이 있는데요, 대신 책이 저의 롤모델이라면 롤모델인것 같아요. 책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 편이예요.
그리고 지역별 시민사회 중간지원조직이나 민간재단이 내는 성과보고서를 빠짐없이 다 읽어보는 편이예요. 동종 업계의 동향이나 사업 등을 보면서 필요한 일 감각을 익히고 있어요."
- 최근에 읽은 활자책 또는 자연책 중 하나를 추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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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유리 처장이 이야기한 두 권의 책 |
| ⓒ 인플루엔셜, 창비 |
"주말 오후 6시에서 7시 노을이 질 때, 우리집 옥상에 올라가서 캠핑 의자에 앉아 책을 보면서 멍 때리는 시간이요. 평일에는 어렵고 주로 주말이지만 이 시간조차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일상을 유지하고 살아내는 것, 쉽지가 않더라구요."
- 경계의 넘나듦을 시도한 사람으로 망설이는 분들께 해주고 싶으신 말이 있을까요?
"교육학을 배울 때 좋았던 것 중 하나가 간학문(학문 간 경계를 넘어 서로 다른 지식체계를 연결하거나 아우르는 연구·학습 방식)이라는 점이었어요. 교육사회학, 교육행정학, 교육통계학, 교육심리학 등을 두루두루 배워요. 저는 교사를 하려고 교육학을 택한 것이 아니어서 그런 교육의 내용에 대한 수용성이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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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의 변화에는 늘 공익활동가가 있습니다. '공익활동가주간'은 공익활동가들에 대한 존중과 지지를 바탕으로 사회적 인정 문화를 만들기 위한 전국 단위의 행사입니다. 2026년에는 6월 29일부터 7월 3일까지 일주일 동안 전국 곳곳에서 공익활동가를 응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연대의 장이 열렸습니다. |
| ⓒ 공익활동가주간추진위원회 |
생명의숲 활동가. 산을 잘 타지 못하지만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좋은 사람들과 소수로 만나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대문자 'ISFJ' 입니다. 인터뷰이와는 20여년 전, 생명의숲에서 만나 지금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변화를만드는사람들 홈페이지, 소셜임팩트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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