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실 때보다 빚을 때 더 행복합니다"
[박보현 기자]
우연히 맛본 막걸리 한 병이 시작이었다. 술을 즐겨 마시는 사람도 아니었던 김지현씨는 지인이 건넨 막걸리 한 모금에 매료돼 발효와 기다림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전통주 빚기는 2년여 동안 수없는 실패와 기록을 거듭한 끝에 올해 강릉단오제에서 '대한민국 창포주 선발대회' 대상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전국 최고 창포주를 만든 그는 정작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아니다"라며 웃었다. 술을 마시는 것보다 쌀을 씻고, 누룩을 섞고, 발효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행복하다고 했다. 김씨에게 양조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이었고, 160여 차례에 걸친 양조 기록은 더 나은 술을 향한 연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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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술 마실 때보다 빚을 때 더 행복합니다” 대한민국 창포주 대상 수상자 진주 정촌면 김지현 지현씨는 "오히려 제가 술을 빚기 시작한 뒤 남편이 술을 끊었어요." 라며 환하게 웃었다. |
| ⓒ 단디뉴스 |
"사실 대상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장려상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조금 더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겠다' 정도의 기대만 했습니다. 순위권에는 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대상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지난해 대한민국명주대상에 참가했을 때 전통주 연구가 박록담 선생님의 술담화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박 선생님의 술을 대하는 자세와 전통주가 가진 가치에 대해 들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상을 받는 것도 기쁘지만, 사실 저에게 대회는 경쟁보다 배움의 자리입니다.
집에서 술을 빚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 드리면 '맛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제 술이 정말 얼마나 좋아졌는지, 무엇이 부족한지는 객관적으로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회에 나갑니다. 다른 참가자들의 술을 직접 맛보고, 전통주 명인들과 숨은 고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배우는 것이 훨씬 더 큰 수확입니다. 그런 경험들이 쌓여 지금의 술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원래부터 술을 좋아했던 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전통주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습니까.
"술을 좋아해서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코로나19로 도서관 프로그램이 중단됐던 시기였습니다. 지인이 직접 담근 막걸리 한 병을 가져왔는데 집에서 만든 술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맛있었습니다. 그 한 잔이 제 생각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집에서도 이런 술을 만들 수 있구나.' 그 호기심이 사천에서 최인태 촌장이 운영하는 막걸리문화촌으로 이어졌고, 다시 창원의 허승호 선생님 전통주 수업으로 이어졌습니다.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고 지금은 서울에서 누룩 과정까지 배우고 있습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더 궁금한 것이 더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전통주는 인공 첨가물 없이 우리 쌀과 우리 누룩, 그리고 물만으로 빚는 술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집집마다 가양주를 담갔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그 문화가 거의 끊겼습니다. 그 전통을 다시 배우고 이어간다는 점도 저에게는 큰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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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술 마실 때보다 빚을 때 더 행복합니다” 대한민국 창포주 대상 수상자 진주 정촌면 김지현 허승호 선생은 "김지현 님의 창포주 제조 과정을 들으며 술 한 잔에 담긴 치열한 노력과 정성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단단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상상력을 더해 자신만의 명주를 빚어가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대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
| ⓒ 허승호 |
"처음에는 많이 만들어야 실력이 는다고 해서 한 번에 8kg, 10kg씩 담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양보다 기록이 훨씬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계절이 다르고 온도가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술마다 번호를 붙이고 날짜와 온도, 누룩, 발효 상태를 모두 적어 둡니다. 지금까지 기록한 술만 160번이 넘습니다. 거의 연구노트라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 창포주는 어떤 술입니까.
"단오 때 머리를 감는 창포 있잖아요. 바로 그 창포의 뿌리와 잎으로 술을 빚습니다. 특히 뿌리 향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대회에서 받은 창포를 사용했는데 해마다 향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그래서 아예 창포를 직접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창포를 키우면서 식물을 이해하게 됐고, 그 과정이 술에도 그대로 담긴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도중 지현씨가 직접 담근 막걸리를 꺼냈다. 잔을 가까이 가져가자 은은한 매실향이 먼저 퍼졌다. 입안에서는 단맛과 신맛, 고소한 감칠맛이 차례로 번졌고 목 넘김은 예상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 대상을 받은 술의 비결이 있다면요.
"비법은 없습니다. 실패를 많이 한 것이 비법일까요(웃음). 이번 대회에서는 창포주를 담가야 해서 창포를 생으로도 사용하고 말려도 사용했습니다. 뿌리만 쓰기도 하고 잎을 함께 넣기도 했습니다. 발효 온도와 도수도 계속 바꿔봤습니다. 전통주는 아주 작은 차이가 향과 맛을 완전히 바꿉니다. 그래서 결과가 좋든 나쁘든 모두 기록했습니다. 그 기록들이 지금의 술을 만들었습니다."
- 애주가는 아니라고요.
"(웃음)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막걸리를 배우기 시작한 뒤에는 남편이 술을 끊었어요. 저는 술을 마시는 것보다 빚는 과정이 훨씬 더 좋습니다. 쌀을 씻고, 고두밥을 찌고, 누룩을 섞고, 발효되는 걸 하나하나 지켜보는 시간이 정말 즐거워요.
의사들이 쓰는 '청진기' 있잖아요. 그걸 항아리에 대보면 발효가 잘될 때 '톡톡', '또르르', '뽀글뽀글'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아, 술이 잘 익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시간이 정말 행복합니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술을 빚으면서 스트레스를 풉니다. 그 시간만큼은 잡생각도 없어지고 마음도 편안해져요. 저한테는 술을 빚는 시간이 명상하는 시간이나 다름없습니다."
- 진주에서도 전통주 문화가 가능할까요.
"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주에는 논개제와 교방문화 같은 전통문화가 있고, 우수한 농산물도 풍부합니다. 이런 지역 자원과 전통주를 연결하면 충분히 경쟁력 있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기도 여주는 '임금님표 이천쌀'처럼 쌀 브랜드를 활용한 막걸리 대회를 엽니다. 대회 참가자들에게 지역에서 생산한 쌀을 보내주면 참가자들은 그 쌀로 막걸리를 빚습니다. 그러면 지역 농산물을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고, 대회와 축제를 계기로 사람들이 여주를 찾게 됩니다. 결국 쌀과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함께 높이는 효과를 얻는 것이죠.
진주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농산물과 역사·문화 자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직은 서로 연결해 활용하지 못하는 부분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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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술 마실 때보다 빚을 때 더 행복합니다” 대한민국 창포주 대상 수상자 진주 정촌면 김지현 김지현 씨는 창포주의 핵심 재료인 창포를 손수 재배해 술을 빚었다. 출처 : 단디뉴스(http://www.dandinews.com) |
| ⓒ 단디뉴스 |
"처음부터 완벽한 술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전통주는 기다림의 술입니다. 자연스럽게 실패하고, 다시 만들고, 또 기다리면서 자기만의 술을 만들어 갑니다. 중요한 것은 많이 기록하고 꾸준히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좋은 술은 특별한 비법이 아니라 시간을 들인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친 뒤 그의 도서관 화단에 놓인 창포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직접 키운 창포에서 시작된 작은 실험은 전국 최고 창포주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그 결실을 빚어낸 것은 특별한 비법이 아니라 호기심을 놓치지 않는 마음, 꼼꼼한 기록, 그리고 묵묵히 기다려온 시간이었다.
김지현씨의 말은 전통주만을 향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좋은 술도, 좋은 삶도 서두른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시간을 견디고 기다린 사람만이 자신만의 깊고 고유한 향기를 품게 되는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단디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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