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믿고 싹쓸이?" 돈다발 들고 한국 왔다…알짜기업 노리는 외국계 큰손 [PE는 지금]
외국계 PEF 韓 기업 인수에 적극적
올 상반기 당장 쏠 '실탄'만 71조 준비
5000억원 이상 대형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외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단기적으로 환차익 등 경제 환경 요인이 두드러지나 장기적으로는 한국 시장에 질적으로 투자할 만한 기업이 늘었다는 시각도 있다.

13일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 M&A 시장 특징은 ▲대기업의 자회사 매각 및 분할 ▲경영권 인수 후 상장폐지 ▲산업 재편 및 통합 등 세 가지다.
대기업 자회사 매각은 롯데그룹의 롯데렌탈 매각이 대표적이다. 투자금융(IB) 업계에 따르면 미국계 PEF 운용사 텍사스퍼시픽그룹(TPG)은 롯데렌탈 경영권 지분 인수를 위한 단독 실사를 진행 중이다. TPG 이전에도 SK렌터카를 갖고 있던 홍콩계 운용사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가 1조5000억원 가까이 롯데렌탈을 인수하려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결합을 불허해 거래가 이뤄지지 않았다.
밀크티 프랜차이즈 '공차'를 보유한 미국계 운용사 TA어소시에이츠는 대표 토종사인 IMM PE를 제치고 대웅그룹 계열사 시지바이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보다 앞서 칼라일은 국내 생활가전 전문기업 청호나이스와 계열사인 마이크로필터, 엠씨엠 등을 1조원대 초반에 인수했다.

경영권 인수 후 상장폐지의 대표 사례는 EQT의 더존비즈온 인수다. EQT가 경영권 지분을 사들인 후 잔여 지분 확보를 위해 공개매수에 2조2000억원을 추가 투입하며 상장폐지했다.
산업 재편 및 통합 대표 사례는 KKR의 SK 재생에너지 플랫폼 공동 투자다. 이 플랫폼은 SK이노베이션, SK에코플랜트, SK이터닉스 등 SK계열사의 재생에너지 사업과 자산을 모은 통합법인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대형 계약에서도 주인공은 대부분 외국계였다. EQT파트너스가 더존비즈온과 리멤버를, 거캐피털은 코엔텍을, 블랙스톤은 준오헤어를 인수했다.
외국계의 대형 딜 참여가 활발해진 이유로 고환율 환경이 꼽힌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를 오가면서 같은 달러로 과거보다 더 많은 원화 자산을 매입할 수 있게 됐다. 할인된 가격에 인수해 장기적으로 환율이 내려가면 환차익으로 이익을 거둘 수 있다.
드라이파우더(미집행 약정액) 소진 압박도 있다. TPG는 2024년 5월 결성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바이아웃 펀드인 아시아 8호 펀드를 롯데렌탈 인수에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 한국 시장 펀드 투자 비중을 10%로 늘렸다. 이 같은 지역 전용 펀드는 출자자(LP)들이 지역 내로 투자를 제한한다. 운용사는 약정 기간 내 돈을 쓰지 못하면 LP에 자금을 반환해야 하며 운용보수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된다. 이에 집행 압박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외국계들이 한국에 투자해야 하는 펀드를 조성 많이 한 상황"이라며 "조원 단위로 있기 때문에 딜만 있으면 투자를 쉽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시장 자체가 매력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TA어소시에이츠의 경우는 지역 전용 펀드가 아닌 글로벌 메인 펀드를 재원 삼아 시지바이오를 인수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각종 거래를 미국 본사에서 투자심의위원회를 통해 분석한다. 지역 전용 펀드는 해당 지역 내 경쟁이라면, 메인 펀드는 한국 기업보다 규모가 큰 거래가 훨씬 많다. 시지바이오 인수 건은 다른 글로벌 거래보다 가치 있다고 본사에서 평가한 것이다. 그만큼 한국 시장과 기업의 가치가 올라갔다고 볼 수 있다. TPG가 8호 펀드를 조성하며 중국 투자 할당 비중을 25%에서 10%로 줄이고 한국 비중을 10%로 늘린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외국계의 '공습'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대형 운용사들이 올해 상반기에 이미 펀드레이징을 마치며 거래 대상을 탐색 중이다.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PEF 모집액은 473억7000만달러(약 71조원)이며 이 중 85%를 EQT·블랙스톤·베인캐피털이 조성했다. 특히 인플레이션이나 환율 변동 등 리스크로 인해 운용사가 한국에 선별적으로 자금을 집행하는 상황에서 에너지·인프라 분야에 투자가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KKR은 SK 투자 외에도 인도와 호주 등에서 비슷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IB 업계 관계자는 "KKR·EQT·브룩필드 등 외국계 인프라 펀드들이 딜에 목말라 있으며 특히 에너지 분야 관련해 드라이파우더가 많이 남아 있다"며 "발전소·신재생에너지·데이터센터 등 관심이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외국계의 대형 딜 독식이 국부유출이라며 '견제구'를 날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외국계 PEF 기업결합 심사내역을 분석한 후 심사 기간이 짧다며 "최근 수년간 거대 자본과 급등한 환율을 무기로 외국계 PEF가 국내 성장자산 다수를 저평가된 가격에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그 과실은 해외로 이전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법 개정도 추진한다. 강 의원은 EQT가 리멤버를 인수한 사례를 통해 국민 개인정보가 해외로 이전될 수 있다며 개인정보 보유 기업의 M&A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사전 심사를 거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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