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조롱', '5.18 혐오' 대열에 끼지 않은 아이들의 특징
[서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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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 비하 성격을 가진 응원 구호를 외쳐 논란을 일으킨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대표 선수가 6일 전남광주특별시 광주제일고등학교에서 사과문을 들고 있다. |
| ⓒ 공동취재사진 |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자를 조롱하고, 역사적 사실을 버젓이 왜곡하고 폄훼하며 낄낄대는 건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을 수 없는 명백한 범죄다."
이번 사달에 대한 기성세대 대다수의 의견이자, 우리 사회의 보편적 상식이다. 일부 극우 정치인들과 보수 언론이 "5.18이 성역화되었다"며 갈등을 부추기지만, 자신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강퍅한 주장일 뿐이다. 애초 '성역화'라는 말을 끌어다 쓴 것부터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비열한 작태다.
굳이 5.18을 '성역'이라고 표현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사법적 판단이 끝난 사건이므로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폄훼해서는 안 된다는 비유일 테다. 여야 정치인 모두가 5.18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해야 한다고 합의한 것도 그래서다. 아직도 시신조차 찾지 못하는 희생자가 70여 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성역'이라는 낙인은 가당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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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교조, 혐오·역사왜곡 표현 교사·청소년 인식 조사 결과 발표 전교조가 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서비스연맹 회의실에서 '혐오·역사왜곡 표현 교사·청소년 인식 조사' 결과 발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 ⓒ 이정민 |
조롱과 혐오 표현이 놀이로 고착화한 현실의 '시조'격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애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뇌물 받은 게 들통나서 부엉이바위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게 사실상 전부다. 말투가 거칠고 행동이 특이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도 있다.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라면, '말발이 좋다'거나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정치인이라는 것 정도다.
알다시피, 5.18과 노무현은 조롱과 혐오 표현의 '화수분'이다. 마치 신종 바이러스처럼 창궐했다 소멸하는 일베의 신조어들도 대부분 그 두 가지와 연관되어 있다. 5.18이 유신 정권의 갑작스러운 몰락으로 터져 나온 온 국민의 민주주의 열망을 전두환의 신군부가 무참히 짓밟은 사건이라고 답하는 건 시험 때뿐이다. 또, 노무현이 지역주의 타파와 참여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평생을 독재정권과 맞서 싸운 정치인이라는 걸 아는 아이도 드물다.
요즘 아이들에게 5.18이라고 하면, '민주화'와 '전땅크', '북한군', '홍어', '전라디언', '슨상님'이라는 단어부터 떠올리고, 심지어 '피떡갈비'라는 극단적인 혐오 표현까지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에게 '민주화'는 무질서하고, 재미없고, 못생겼다는 의미로 사용되며, 최근엔 혼쭐났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전땅크'는 그들이 전두환을 부르는 '애칭'이다.
'슨상님'은 김대중이 5.18을 주동했다는 식으로 왜곡하려는 의도로 생겨난 그의 호칭이다. 전라도 사투리를 입혀 지역 혐오까지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표현이다. '피떡갈비'는 광주 지역의 특산품인 떡갈비가 5.18 당시 희생자들의 피로 반죽된 고기라고 모욕하는 극단적 혐오 표현이다. 마치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어묵'에 비유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한편, 노무현에 대한 조롱 표현은 아예 아이들의 평소 대화 때 거의 빠지지 않는 '공용어'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성씨인 '노'는 아무 문장이나 삽입되어 쓰이는 어미이고, '운지하다'는 동사 표현은 보편적인 용어가 됐다. '반갑다'를 '반갑노'라고 하면 평서문이고, '먹었니'를 '먹었노' 하면 의문문이 된다. '운지하다'는 떨어진다는 뜻의 일베 용어로, 그들은 성적이 '운지했다'고 하지 '급락했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린다.
스스로 'MH(무현) 세대'라고 자칭하는가 하면, 스마트폰의 배경 화면에 노무현을 희화화한 이미지 사진을 올려놓은 경우도 있다.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그의 말투를 소재로 한 노래와 영상까지 만들어져 SNS를 타고 광범위하게 확산 중이다. 그의 서거일인 5월 23일을 '중력절'로 부르며, 당일 오후 5시 23분에 그를 조롱하는 노래를 알람으로 설정해 놓은 아이도 있다. 이유는 단 하나, 재미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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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벅스 가자, 탱크데이" 등 5.18 민주화운동 혐오 폭력으로 논란을 빚은 서울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 6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5.18 민주묘지를 찾아 광주제일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참배하고 있다. |
| ⓒ 유성호 |
당장 5.18을 광주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는 관행부터 타파하면 좋겠다. 5.18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10.16 부마 민주항쟁부터 박정희가 피살된 10.26 사태와 신군부의 12.12 군사 반란을 지나 광주 학살에 이르는 일련의 민주화 과정을 통칭하는 사건으로 이해하는 게 옳다. 범주를 넓히면, 1987년 6월 민주항쟁 역시 5.18의 연장선에 있다.
불의한 전두환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1980년대 민주화운동은 기실 '5.18 알리기'였다. 유가족들의 침묵을 강요하고 지역의 고립과 소외를 획책한 권력의 만행을 성토하며 대학생을 비롯한 시민들은 목숨을 걸고 싸웠다. 6월 민주항쟁 당시 '호헌 철폐', '독재 타도'라는 구호와 함께 '5.18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컸다.
지금 5.18의 공식 명칭에서도 광주는 빠져 있다. 곧,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아니라 '5.18 민주화운동'이다. 당시 유신 독재정권과 신군부의 집권 야욕에 맞선 민주화운동이 마치 광주에서만 전개된 것처럼 오해할 우려가 있을뿐더러 4.19 혁명으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자랑스러운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광주가 독점해서도 안 될 일이다.
한편, 노무현의 경우, 그의 파란만장했던 정치 이력을 참고 자료의 형식을 빌려 교과서에 수록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 현재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는 맨 마지막에 부록처럼 16대 대통령인 그부터 17대 이명박, 18대 박근혜, 19대 문재인, 20대 윤석열까지 '여야의 정권 교체'라는 주제로 당시에 일어난 사건과 업적을 거의 같은 분량으로 무미건조하게 소개하는 서술이 전부다. 물론, 그의 비극적인 죽음에 관한 내용은 없다.
재임 기간 중 그들의 공과에 관한 서술은 사실상 반반씩이다. 정치적 논란을 회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테지만, 정작 교과서만 봐서는 누가 좋은 정치인인지 알 수 없다. '양시론'에 입각한 밋밋한 서술도 문제이지만, 그마저 수업 시간에 다루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하물며 이를 시험에 출제하는 건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격이다.
섣불리 말 꺼냈다간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며 민원이 들끓을 수 있다. 수능과 모의평가에서도 거의 출제되지 않는 내용이니 아예 '패싱'하는 편이 낫다. 지금 우리 학교의 현실에서 교사에게 정치적 중립 의무가 강제되는 한, 대한민국 현대사는 교사에게 영원히 '뜨거운 감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조롱과 혐오의 놀이화는 무지에서 비롯된 병리 현상이다. 경험상, 5.18의 진실과 노무현의 생애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아이들은 조롱과 혐오의 대열에 끼지 않았다. 그들의 숫자가 하나둘 늘어날 때 일베 용어에 길든 아이들의 목소리도 시나브로 잦아들 것이다. 현대사를 공부한다는 건 우리 사회에 팽배한 조롱과 혐오에 맞서겠다는 다짐과도 같다.
이번 사건으로 촉발된 조롱과 혐오의 놀이화에 대한 대책으로 교육부는 민주시민교육의 강화를 첫손에 꼽았다. 노파심에 한마디 얹자면, 교육의 주체는 교사가 아닌 아이들이어야 한다. 그들의 문제 인식과 토론을 통한 자정 작용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민주시민교육이 또 하나의 수험 과목이 되어선 곤란하다는 뜻이다. 현대사 교육 또한 일방적인 강의가 아닌 토론 방식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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