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큰 손' 사모펀드가 하늘 쳐다보는 이유는
정부 ESG 공시 방안, '기후리스크' 반영
"기후, 투자에서 윤리가 아니라 생존 문제"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EQT는 2024년 국내 한 폐기물 처리업체 인수를 검토하면서 재무제표보다 먼저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 회사 사업장이 자연 재해에 얼마나 노출돼 있는지 검토하기 위해서였다. 실사 결과 폭설과 태풍에 의한 위험 요소가 발견됐고, 예방 차원에서 지붕 보강에 쓸 자금을 인수 구조에 별도로 반영했다. 날씨가 딜의 가격표를 바꾼 셈이다.
폭염과 폭우, 변덕스러운 날씨가 PE업계의 투자 핵심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기후변화로 자연재해가 잦아지며 포트폴리오 기업의 보험료와 사업중단 손실 등 요소가 수익률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각국에서 강화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규제 역시 더욱 정교한 투자 셈법을 요구하고 있다.
블룸버그가 최근 세계 12대 대체투자 운용사의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이들 보고서에서 물리적 기후리스크 관련 언급은 1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었다. EQT는 2024년부터 2만3000개 이상의 인프라 자산에서 기후 데이터를 수집했고, 칼라일은 기상이변이 자산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밸류에이션 체계에 반영하는 프레임워크를 만들었다. PE에 '기후 지도'를 파는 비즈니스도 등장했다. 칼라일 등을 주요 고객으로 둔 기후분석업체 주피터인텔리전스는 연간 수십만달러의 분석료를 받는다고 한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기후예측·리스크 평가 시장이 2030년 약 130억달러로 두 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기후 변화는 한국에서도 핵심 투자 요소로 자리잡을 예정이다. 지난 8일 당정이 확정한 '지속가능성(ESG) 공시 제도화 방안'에 따라 2028년부터 연결자산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는 기후 관련 위험·기회와 그에 따른 재무적 영향, 온실가스 배출량 등을 사업보고서로 공시하게 된다. ESG 주제 가운데 국제적으로 기준이 확립된 기후공시부터 먼저 의무화하고, 기후 외 환경·사회·지배구조 정보는 기업이 선택 공시하는 구조다. 공시 대상은 2029년 자산 5조원 이상으로 확대돼 종속회사를 포함해 3000개가 넘는 회사가 범위에 들어오고, 2030년부터는 제3자 인증도 의무화된다.
최종안은 지난 2월 초안(자산 30조원 이상, 거래소 공시)보다 대폭 강화됐다. 중동전쟁을 계기로 에너지 가격 불안정성이 커지며 기후·에너지 리스크 관리가 기업의 핵심 전략과제로 부상한 데다, 의견수렴 과정에서 글로벌 투자기관들이 "공시 대상을 넓히고 재무제표와 함께 볼 수 있도록 사업보고서에 공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점이 반영됐다고 한다. 당정은 "이제 기후를 비롯한 ESG는 더 이상 기업윤리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생존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고 했다.
국내 PE "물리적 리스크 정량평가는 아직"…큰손 잣대는 강화 추세

이번 방안의 직접적인 과녁은 상장사지만, 파장은 비상장 시장과 PE 시장에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PE가 포트폴리오 기업을 상장시키는 순간 공시·인증 의무가 따라붙고, 대기업에 매각하면 인수자의 연결공시 범위에 편입된다. 인수한 기업의 배출량과 기후리스크가 곧 인수자 자신의 공시 항목이 되는 만큼, 관련 데이터가 정비되지 않은 매물은 실사에서 가격이 깎일 수 있는 구조다.
국내 PE들은 이런 파장에 직접 노출된 자산을 대거 보유 중이다. EQT가 실사한 것과 같은 폐기물 처리업이 대표적이다. 매립지·소각장 등 야외 사업장과 대형 설비가 많아 폭설·태풍 같은 물리적 리스크에 민감하고, 매립(메탄)·소각 과정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아 새 공시 체제의 부담도 큰 업종이다. IMM 컨소시엄은 2024년 국내 매립 1위 에코비트를 2조7000억원에 인수했고, 어펄마캐피탈은 2025년 CEK를 약 4000억원에 인수하는 등 관련 섹터 투자가 활발하다. PE 업계 관계자는 "ESG의 중요성에 대해선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인식이 업계 전반에 퍼져있고 별도 ESG팀을 운영하기도 하는 등 글로벌 표준에 크게 미달하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해외처럼 실사 단계에서 폭염·태풍 같은 물리적 리스크까지 정량 평가하는 경우는 아직까진 드물다"고 말했다.
다만 '큰손'의 잣대도 바뀌고 있는만큼 업계 전반에 변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올해 국회에 보고한 업무추진계획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 책임 원칙)를 한층 강화해 이행하겠다"며 인프라·부동산·사모펀드 등 대체자산 전반에 'ESG 통합전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당정 방안에서도 국민연금의 역할이 강조됐다. 향후 스튜어드십코드 점검 시 운용사의 ESG 고려 여부를 공개하고, 운용전략상 ESG를 적극 반영하는 운용사에 'ESG 태그'를 부여하는 내용 등이 담긴 것이다. PE 시장 최대 출자자(LP)의 기후 잣대가 위탁운용사(GP) 평가 기준으로도 반영되는 셈이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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