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이 뜨거우면 실적도 녹는다… 패션업계 덮친 폭염 리스크 [GMC]

하선영 2026. 7. 1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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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럽과 아시아를 덮친 기록적인 폭염이 글로벌 기업들의 새로운 투자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기후변화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이슈로 분류됐지만, 이제는 생산 차질과 납기 지연,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며 기업 실적을 직접 흔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누가 더 많이 파느냐'가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누가 더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느냐'가 기업가치를 좌우할 가능성이 커졌다.

12일 블룸버그는 폭염이 글로벌 의류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 조명했다. 의류 생산기지가 몰려 있는 인도와 방글라데시, 베트남에서는 폭염으로 생산 차질이 현실화하고 있으며, 그 여파가 글로벌 패션기업들의 공급망과 실적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 세계 의류산업 규모는 약 1조7000억달러(약 2559조원)에 이른다. 의류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9000만명 이상이며, 상당수가 동남아 생산기지에서 일한다. 지난달 미 뉴욕대(NYU) 스턴 경영대학원은 “전세계 의류 수출의 약 70%가 아시아에서 이뤄지는 만큼 폭염은 일부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의류 공급망 전체의 리스크”라고 분석했다.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생산기지


의류공장은 폭염에 특히 취약한 산업이다. 수백 명의 노동자가 재봉틀과 다림질 설비가 밀집한 공간에서 일하는 데다, 상당수 공장은 단열과 환기시설도 충분하지 않다. 폭염이 이어질수록 결근이 늘고 작업 효율이 떨어지면서 생산 차질과 납기 지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 대부분은 직접 공장을 운영하지 않는다. H&M, 자라(Zara)와 룰루레몬 등 글로벌 패션 브랜드는 생산을 아시아 협력업체(OEM·ODM)에 맡기는 구조다. 이 때문에 인도나 방글라데시, 베트남 공장의 생산 차질은 곧바로 공급 부족과 납기 지연, 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김경진 기자

이 같은 변화는 결국 글로벌 브랜드의 실적으로 이어진다. 패션업계는 코로나19 때도 공장 폐쇄와 물류 대란으로 공급망 충격을 경험했다. 이후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생산기지를 인도와 베트남 등으로 다변화했지만, 이번에는 폭염이라는 새로운 변수와 마주하게 됐다. 생산거점을 분산했지만 새로운 기후 리스크가 등장한 셈이다.

코넬대 글로벌노동연구소(GLI)는 방글라데시·캄보디아·파키스탄·베트남에서 폭염과 홍수가 지속될 경우 2030년까지 의류 수출이 약 650억달러(약 97조원) 감소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는 글로벌 브랜드들의 생산 일정과 제품 공급에도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규모다.


유니클로는 왜 공장에 투자할까


대표적인 사례가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일본 패스트리테일링이다. 이 회사는 협력업체와 수년 단위 계약을 맺는 것으로 유명하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 매년 생산처를 바꾸기보다 장기 계약을 통해 공장이 설비와 작업환경에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폭염 대응 공장도 이런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패스트리테일링은 장기 공급계약을 통해 협력업체들이 냉방 설비와 친환경 시설, 작업환경 개선에 투자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회사는 "장기 계약은 협력업체가 설비 개선과 온실가스 감축, 작업환경 향상에 투자할 수 있는 안정성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이 전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홍콩계 의류 제조업체 에픽그룹이다. 에픽그룹은 유니클로를 비롯해 글로벌 브랜드의 의류를 생산하는 OEM·ODM 업체다. 지난 4월 인도 오디샤주에 폭염을 고려해 설계한 신규 생산시설을 가동했다. 약 16만㎡ 규모 부지에 최대 1만명이 근무할 수 있는 이 공장은 외부 기온이 34도를 웃도는 날에도 내부 온도를 약 28도로 유지하도록 설계됐다. 외부 열기가 유입되지 않도록 설계한 이중 출입문과 대형 공기순환 설비, 단열 성능을 높인 지붕, 산업용 히트펌프 등을 적용해 냉방 효율과 에너지 절감 효과를 동시에 높였다. 초기 생산 물량도 대부분 유니클로 제품이 맡고 있다.

비두라 랄라파나웨 에픽그룹 부사장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기존 산업용 건물은 가장 중요한 자산인 기계를 보호하도록 설계됐지만 이제는 사람을 보호하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치 끓는 냄비 속의 게처럼 변화가 너무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문제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며 의류업계가 폭염 리스크를 과소평가해 왔다고 지적했다.

현장 노동자들도 차이를 체감하고 있다. 신규 공장에서 일하는 마마타 사하니는 "예전 공장은 여름이면 양철지붕이 너무 뜨거워 오븐 안에서 일하는 기분이었다"며 "지금은 땀을 흘리지 않고 일할 수 있어 업무에 훨씬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폭염 대응이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생산성과 품질, 납기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생산기지에 투자한 기업이 웃는다


업계 전반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국의류신발협회(AAFA)에는 랄프로렌과 리바이스 등 1100여 개 기업이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협회는 지난 4월 회원사를 대상으로 "폭염 대응 비용을 협력업체에만 떠넘기지 말고 브랜드도 함께 부담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투자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지점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브랜드 경쟁력과 매출 성장률, 원가율이 핵심 평가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생산기지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투자 판단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협력업체와의 장기 계약, 작업환경 개선, 생산기지 다변화 등이 기업의 실적과 공급 능력을 좌우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업별 대응 전략도 엇갈린다. 아시아 생산 비중이 높은 글로벌 패션기업들은 폭염 대응을 위한 설비 투자와 원가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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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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